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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Feb 09. 2024

식당을 한다면 이들처럼

세 식당에서 얻은 교훈

 1. 신용산- 홍콩음식점


 두어 달간 신용산에서 매일 점심을 먹 적이 있다. 용리단길(경리단길은 예전 같지 않다지만 여전히 '-리단길'이란 이름은 유효한 트렌드)이라고 부르는 구역에서 유명하다는 식당, 줄 선다는 을 일부러 찾곤 했는데 평일 점심 러시타임 후 브레이크 타임 직전 시간대에는 대부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줄 서는 식당은 하나같이 컨셉이 확실하고 음식도 맛있고 인테리어도 예쁘고 직원도 친절하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장사가 잘 되려면 기본적인 요소는 다 만족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기본만 잘해서도 안 되고 새로운 것에 끌리는 게스트와 변덕스런 사회 트렌드에 맞춰 재빠르게 변하고 선도해야 살아남는 게 현실이다.  

 

 나는 한 홍콩식점에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는데 '치밀하게 조작된 컨셉의 중요성'이다.

 식당은 물론이고 무슨 가게든 컨셉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전성기 때의 홍콩 영화에 나올 법한 노포를 컨셉으로 한 식당은 외관부터 눈길을 끌었다. 그런 당이 용산 원주민 할머니 같은 1층짜리 허름한 건물에 으니 한 3,40년  것 같이 보인다.

 간판은 설명 없이 구룡반도 스타일 서체의 한자 크게 쓰여 있고 입문에는  여자아이 증명사진이 큼직하게 붙어 있었다.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아이의 사진 '30년 전에 잃어버린 딸을 찾습니다' 류의 현수막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다.

  강렬한 간판과 사진 두 가지만으로 의 관심을 끌었다.

 저 한자는 뭐라고 읽는 거지? 중국집인가? 저 여자애는 누구지? 요즘 찍은 사진 같지는 않은데? 의문이 꼬리를 물다.

독특한 입구


 주문을 하고 앉으홍콩에 온 것 같다.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이 혼자 밥을 먹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총알이 난무하는 식당이 이런 느낌이다. 구석에 일부러 쌓아 놓은 종이박스들도 중국 어디 시장 연상케 하고 테이블과 의자, 전등, 수저통, 메뉴판 모든 것이 90년대 홍콩 거리로 돌아가 있다.

 음식은 이름만으로 정확히 어떤 건지 알 수 없다. 직원에게 묻거나 검색을 해야 한다. 나는 식당에 먼저 다녀간 사람들남긴 팁을 찾아다.


 당시에 오픈한 지 얼마 안 던 그 식당은 인근에 있는 다른 인기 음식점 사장님이 차렸다고 한다. 옆 테이블에서 여자 두 명이 커다란 망원경 같은 사진기로 음식을 찍고 있었는데 홍보를 도우러 온 인플루언서들이었다. 내가 밥을 먹 동안 직원이 그들에게 하는 말을 듣고 알았다. 인플루언서의 테이블에는 연달아 새 음식이 서빙되었다.


 이후에 검색해 보니 다들 나와 비슷하게 느꼈고 홍콩 영화 같은 컨셉을 재밌어했다. 데이트 중에 와 봤는데 유덕화좋아하는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오고 싶다거나, 혼밥하고 갔는데 친구와 다시 오겠다는 소감들이 흔했다.

   

홍콩을 구현한 내부


2. 서촌- 카레전문점


 서촌에 놀러 가기로 한 날, 후배가 꼭 거길 가자며 제안한 카레집이 있다. 오픈런을 하지 않으면 한 타임 기다려야 한다고 서둘렀다.

 서촌 자체가 서울 도심과 달리 한갓진 분위기지만 그 식당은 좁은 길로 더 들어주택가에 끼어 있었다.

 오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 정확히 개점 시간에 입구 커튼이 열렸다. 들어가 보니 테이블이 몇 개 안 된다. 오픈 전부터 기다린 인원만으로 한 번에 만석이 되었다.

가게 앞 웨이팅 공간


 주 요리인 카레 두 종류는 그날그날 사장님이 정한다. 한쪽에 놓인 전기밥솥에서 막 지어진 밥은 무제한 리필이라는데 후한 밥 인심 한국인의 정서를 제대로 감동시키면서 사실 흰쌀밥을 많이 먹지 않는 요즘에는 꽤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낼 수 있는 카레의 특성 덕에 모든 테이블의 주문이 거의 동시에 들어갔지만  기다림 없이 서빙되었다.

 카레는 매우 맛있었다. 싱가포르의 리틀인디아후쿠오카에서 감탄하며 먹었던 카레가 떠올랐다. 살짝 달짝지근하며 주재료와 카레의 맛이 골고루 살아있고 식감은 부드러워서 별로 씹지 않아도 술술 넘어간다.   

파티션가리개로 구분한 주방 공간


 그 식당에서 '고객의 불편을 차단하는, 입안의 혀 같은 응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홀 직원이 따로 있는데 그때만 없던 건지, 원래도 한 분이 혼자 운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식당의 모든 일을 한 사람이 했다.

 테이블까지 와서 주문받기, 주방으로 들어가 요리하기, 서빙하기, 손님들 요구 사항 들어주기, 테이블 치우고 다시 세팅하기 심지어 계산까지도 혼자 했다.

 밥을 먹다가 냅킨이나 피클, 물 같은 게 더 필요해도 바쁜 사장님을 부르기가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밥을 먹다 생기는 부가적인 사항들을 손님이 알아서 하기 좋게끔 준비된 상태도 아니었다. 원하는 모든 것을 사장님을 불러 해결해야 했다.

 우리 일행이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해야 하는데, 안에서 요리 중인 사장님을 기다렸을 정도다.


 같이 갔던 우리 셋의 후기는 같았다. "가게도 예쁘고 음식도 참 맛있는데 다른 게 불편하다. 그 점은 여기 다시 오기에 좀 장애물이 되겠다'였다.

 나는 밥을 딱 반 더 먹고 싶었지만 밥솥 주변에 주걱이 없어서 포기했다.


 남에게 말을 잘 붙이는 나조차도 그 분위기에서는 밥을 더 먹겠다고 '사장님, 여기 주걱이 없는데요.'라 하기가 어려웠다.  

'오늘의 카레' 메뉴


3. 우리 동네 삿뽀로 요릿집


 오픈할 때부터 여기저기에서 이름을 많이 들었던 식당이었다. 이름만으로는 종을 추측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대체 뭐 하는 덴지' 전혀 알 수 없다. 왕돈까스집 같은 직관적인 네이밍과는 완벽히 반대에 서 있다고나 할까.  

 한번 먹어보자 작정하고 평일 오픈 전에 가서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주 메뉴는 삿뽀로 현지 음식과 일본식 안주이고 낮 시간에는 밥집, 저녁 이후에는 주점으로 영업한다. 일식당답게 테라스부터 일본 현지처럼 꾸며 놓았다. 음식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모형과 다양한 사진이 걸려 있고, 주인이 삿뽀로에서 일하며 요리를 배웠다는 증거 사진으로 만든 배너가 눈을 끌었다.

 손님들로서는 웬만한 일본 통이 아닌 한, 삿뽀로에 있다는 저 식당과 일본인 사장님이 어느 정도 클래스인지를 알 바 없지만, '삿뽀로에서 유학하며 직접 배운 요리'라는 말이 팩트임을 보여주어 신뢰를 얻는 데는 충분했다.  

 흔한 일식당이지만 메뉴는 흔하지 않았다. 점심에는 닭다리수프카레만 고 닭날개튀김은 사이드 메뉴로 주문 가능하다.

처음 먹어본 닭다리수프카레


 여기는 완벽히 특색 있는 메뉴와 저돌적인 영업력으로 승부하는 곳이다. 지금도 닭날개튀김이 정말 바삭하고 간이 딱 맞고 맛있었다는 생각이 난다.

 전국에 있는 입시 학원 전단지에서 '대치동 경력 몇 년 강사'이라는 문구가 먹히는 것처럼 '삿뽀로 최고 맛집에서 전수받은'이라는 말은 그 집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을 준다.

(사실 대치동에는 1600여 개의 크고 작은 학원이 있고 존망을 거듭한다)


 여기도 우리 동네에서 몇 년 전부터 '대창전골'로 유명한 식당의 젊은 사장님들이 두 번째로 차린 곳이다. 요즘은 개성적인 컨셉을 기반으로 다방면의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 바짝 홍보하면 일단 '맛집'이라는 이름을 달기가 어렵지는 않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신상 맛집'이라는 표현은 이미 익숙한데 대체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식당'을 누가 벌써 맛집으로 인정했나 곰곰 생각하면 의아하다.


 그러나 홍보로 손님을 끈 식당은 맛과 서비스, 매력 등 기본 체력이 든든히 받쳐주지 않으면 금방 관심이 식는다.

 작은딸의 증언에 의하면 1호점인 대창전골 집 영업을 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기 명단에 이름을 고 근처 카페에서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단다.  

 

 이곳 역시 인스타그램으로 고객과 활발히 소통하며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벤트를 많이 한다. 친구 사이인 사장님들은 최근  다른 테마세 번째 식당을 열었고 역시 님이 많다.  

 매출이 높을수록 함께 일한 직원들에 대한 보상과 처우도 비례한다는데 이 점도 배울 만하다.

청조(?)네 집

 


  

  남편은 퇴직하면 조그만 국숫집을 한번 해 보고 싶단다. 그래서 나도 맛집의 안팎에 관심을 갖고 살피게 된다.


 그리고 사실 미래의 계획과 무관하게 어떤 식당에 가면 음식을 먹으면서 그 집의 특색과 장단점을 찾고 분석하면 재미있다.


 평생 입맛이 없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 개성적인 식당과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행복하다.

 애주가 '몸이 아직 건강해서 술을 마실 수 있을 때 즐겁게 마시자'는 궤변인 듯 진리인 듯한 말는데, 나도 먹고 싶은 것먹을 수 있현재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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