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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Feb 02. 2024

라면 먹고 갈래?

라면의 매력

 어젯밤에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었는데 꾹 참고 잤다. 결국 오늘 아침 6시 반에 라면 하나를 끓여 태블릿으로 드라마를 보며 먹었다. 하룻밤을 참다가 먹는 만큼 천천히 즐기며 먹어야지 했지만 평소 식습관대로 허겁지겁 먹어버렸다. 

 라면을 한동안 안 먹으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어느 소설가의 말대로 '라면의 맛이 우리 정서의 밑바닥에 인이 박혀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나마 며칠 전에 장을 볼 때 라면이 똑 떨어진 것을 기억하고 진라면 한 꾸러미를 사 둔 게 참 잘했다. 오늘 아침 같아서는 집에 라면이 없었다면 사러 나갔을 기세였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보다는 확실히 라면을 먹는 횟수가 줄었다. 서글프지만 전보다 소화도 잘 안 되고 면만 건져 먹어도 하나를 다 못 먹기도 한다.

 건강에 좋지 않네 어쩌네 말도 탈도 많지만 라면은 수십 년 동안 꾸준히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다. 동네 마트나 편의점의 커다란 매대를 다 채우고 남을 만큼 시판 제품 종류도 많고, 마누라 없이는 밥을 못 챙겨 먹는 남자들도 라면만은 제 취향에 맞게 해 먹을 줄 안다.

 혼자서 라면을 먹으며 어쩌다가 '라면 먹고 갈래?'가 이성을 유혹하는 말로 유명해졌나 궁금했다. 나는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살아서 실전에서 그 대사를 사용해 본 적이 없고, 남편 대학생 때 자취를 좀 했지만 오래된 여친인 나 모르게 써 봤을 만큼 간이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 하필 라면일까 궁리해 보니 라면 말고 안성맞춤인 게 없다는 결론이 났다.

 일단 라면은 어느 집에나 하나 정도는 있다. 만약 없더라도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적은 돈으로 바로 살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라면을 좋아한다. 전혀 안 먹고 싶다가도 옆에서 누가 라면을 먹으면 한 젓가락 먹고 싶어진다.  

 라면은 봉지 설명대로 끓이는 초간단 조리법부터 양파, 파, 고추, 콩나물, 버섯, 돼지고기까지 냉장고 안의 온갖 재료를 맘대로 활용해서 제법 근사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아빠가 끓이는 라면의 특징'이 냉장고 안 남은 재료를 다 넣는 것이란 농담도 있다.

 라면은 간단한 식사뿐 아니라 출출할 때 야식으로도 좋고 거의 모든 주종에 안주로도 좋다. 어느 경우에든 다목적으로 들이댈 수 있는 음식인 것이다.

 결정적으로 라면은 다 끓여 놓고 어떤 상황상 못 먹고 버리게 돼도 그렇게 아깝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니 친밀감을 단순에 올리고 싶은 상대에게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요?' 만큼 알맞은 멘트가 없다.


     



 한 봉지의 라면을 요리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은 각자 고집이 있다. 수많은 제품 중에서 오로지 한 종류 라면만 먹는 사람도 있고, 푹 익은 면발과 꼬들한 면발의 선호 차이도 있고, 수프를 다 넣는지 덜 넣는지, 계란이 빠진 라면은 용서할 수 없다든지, 깍두기는 안 되고 배추김치를 곁들여야 한다든지, 소한 것 같지만 라면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요건들이다.

 나는 면발이 꼬들한 게 좋고 청양고추 송송 잘라 넣는 게 좋다. 두 가지만 지키면 행복하게 라면을 먹을 수 있다.

 

 특별 재료를 추가해서 더 맛있고 고급스럽게 조리한 라면도 다.

 속초에 놀러 가서 처음 홍게라면을 먹었을 때 충격적이었다. 라면 그릇 안에 게 한 마리가 오롯이 들어 있는 모습도 낯설었고 1인분 가격도 웬만한 식사 값을 넘는지라 이걸 '라면'이라 불러도 되나 싶었다. 라면은 값싸고 간단한 끼니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인의 주방에서는 라면도 흔하고 참치 캔도 흔한데 라면에 참치 캔을 넣는다거나 생선넣는 레시피는 별로 못 보았다. 천하의 라면이래도 어류 쪽과는 맛의 밸런스가 일반적이지 않은 것일까?

   

 맛있지만 저렴한 인스턴트 음식의 상징이다 보니 같은 면이라도 라면을 먹는 게 국수를 먹는 것보다 불쌍해 보인다.

 특히 아이들이 라면을 먹고 있으면 안쓰럽다. 그 나이에는 라면처럼 맛있는 게 없고 엄마가 좋은 반찬을 해 놔도 마다하고 굳이 라면을 두 개씩 끓여 먹는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그렇다.

 '라면만 먹고살았다'라든가 '라면이라도 배불리 먹고 싶었다'라는 표현은 극도의 곤궁함을 뜻한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86년 아시안게임 육상 부문에서 3관왕을  여자 선수가 등장해 세간이  들썩였는데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불우한 스토리가 퍼졌다.

 그가 유독 깡마르고 기운 없어 보이는 이유가 라면만 먹어서인가 그런가 보다고 많은 국민이 울었는데 나중에 그건 사실이 아니라 과장 기사였다고 밝혀진 해프닝이 다.   

 '아무리 맛있어도 라면만 먹고는 그렇게 잘 뛸 수 없다'는 게 본인의 부연 설명이었다.  


 집에서 혼자 라면을 먹었다고 하면 잘 좀 챙겨 먹지 왜 라면을 먹었냐는 말을 듣는다.

 먹고 싶어서 먹고 맛있어서 먹는데 먹는 모습이 외로움을 준다니 라면의 매력이 새롭다.  


 얼마 후에 또 라면이 먹고 싶을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먹을 테다. 

드라마 속에서 형이 끓인 라면을 나눠 먹는 장면은 드디어 화해한 형제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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