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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Mar 29. 2024

밥 해 먹이기 좋아하는 언니들

밥 해 주면 다 언니!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라. 그런 사람이 꼭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집에 불러서 차려 먹이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우리 엄마일 수도, 친구수도 있고 바로 당신 자신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이 세상에 자애를 베푸는 '혜자스런 언니들'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멤버 수도 파악하기 힘든 점조직으로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혜자스'!

 나는 다행히(?) 그 멤버가 아니지만 내 주변인 중에서 몇 명의 얼굴이 곧바로 떠오른다.

 나에겐 그룹 톡방에서 수다를 떨고 수시로 오프라인 만남을 통해 친분을 유지하는 몇 개의 모임이 있는데 그 방에 한 명씩은 혜자가 있다. 내가 속한 모임 멤버들이 거의 '주부'라 그럴 것이다. 20대인 딸들의 단체 톡방에는 분명 미래의 혜자들이 본성을 감추고 잠복해 있다.

 (왠지 우리 작은딸이 이다음에 아줌마가 되면 그럴 것 같기도 하고)

  

 혜자들은 공통적으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음식을 맛있게 잘하고 손이 크다. 또 정리정돈이나 집 꾸미기 등 다른 살림까지 잘하거나 남다른 패션 센스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그녀들에게는 다른 사람을 불러해 먹이기를 즐기는 성향 하나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재능 패키지로 부여되는 건가 싶다.


 S, C, L, 오늘은 나의 그녀들을 하나씩 불러본다.

 



 각 집의 아이들이 같은 초중학교를 다니고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친해진 모임이 있다.

 거기서는 제일 막내 S가 혜자다. 집에 우리를 불러 점심이나 디저트 대접하기를 좋아하는데 우리는 그녀가 만든 감바스 알 아히요, 리코타치즈 샐러드, 하와이안무스비 같이 언제 먹어도 좋은 음식에 취향에 따라 준비해 주는 커피나 (가끔은)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떤다.


 S의 남편과 우리 남편도 아내들을 따라 알게 된 사이라서 몇 번 같이 맥주를 마시러 갔었고, 두어 번은 그녀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 부부가 방문했을 때 그녀는 시그니처 요리 외에도 남편들의 취향에 맞는 메뉴를 준비했다.

 두 남자는 사놓은 술을 한 병이라도 남겨두면 큰일이라도 나는지 다 먹어 치웠다. 술에 관해 조금은 경쟁적인 마음이 있어 보이긴 했다.


 -난 멀쩡한데 거긴 좀 취했더라고.


 아마 그 날 밤에 둘 다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S가 준비한, 두 커플의 저녁



 작은딸의 고등학교 같은 반 엄마들로 만나 친분을 이어가는 모임에서는 제일 언니인 C가 혜자다. 그 언니는 아무도 못 말린다. 우리 같은 친구들 뿐 아니라 애들의 친구들, 남편의 회사 사람들까지 집에 불러서 해 먹이기 선수다. C 언니는 그걸 즐긴다.

 언니네서 먹은 음식들은 일일이 기억하기도 힘들다. 그 집에는 사이즈별, 종류별, 색깔별 그릇들이 가득한 그릇장이 있다. 똑같은 간장 종지가 열두 개는 되는 것 같다.

 

 C 언니는 나와 가까이 사는데 '우리 집에 커피 마시러 와'라고 자주 말한다. 편안한 차림으로 커피를 마시러 건너가면 아침에 직접 구운 빵과 신선한 과일들을 내놓는다.

 진짜로 자주 가고 싶지만 나도 체면이 있어서 자제한다.

C 언니가 집에서 내주는 모닝커피 클라스



 90년대 말 pc통신 시절 주부동호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시작해 20여 년 넘게 친한 모임에서는 사랑스러운 L이 혜자 역을 한다. 직장인인 그녀는 역시 직장인인 딸의 도시락을 매일 싸는데 그 사진을 모아서 책을 내고 싶을 정도다.

 다른 혜자들과 달리 먼 도시에 살아서 그녀네 한번 가기가 어려울 뿐, 만약 이사를 간다면 그 도시로 가서 내 먹을복을 보장받을 생각이다.


 지난 번에 우리들이 방문하면서 힘들게 차리지 말고 배달음식을 먹자고 했는데 또 한 상을 차려 놓았다. 마침 근무하고 온 날이라 음식할 시간이 없어서 마트에서 사 온 것들로 차렸다고 하는데 그 '사 온 것들'을 식탁에 올린 솜씨에 감탄했다.

 

 - 이거 다 o마트에서 산 거예요.

 - 우리가 가는 그 o마트? 거기 이런 게 있었냐...


 마트에서 사 온 것들로 여섯 명이 즐기는 식탁을 휘리릭 차리는 기술은 어디서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제가 배우고 싶다는 뜻은 아닙니다.....

L이 o 마트에서 사서 세팅한 음식들

 



 하긴 집 밖에서 찾을 것도 없다.

 바로 내 남편도 '남 불러서 해 먹이기 좋아하는 혜자스의 남멤버'니까.

 

 두 딸의 친구들도 각각 불러서 차려 먹였고 부모님이 오셨을 때도 나는 밀쳐내고 직접 요리를 했다. 이담에 사위들이 와도 장인이 요리를 하는 상황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맛있는 거 해 줄 테니 당신 친구들도 한번 불러'라고 얘기하는데 내가 거부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 남편 취미는 요리라는 말만으로 나를 향한 주변 주부님들의 눈총과 원성에 온몸이 뜨끔뜨끔하다.

 나는 내 친구들과 오래 잘 지내고 싶다.

남편이 한 갈비찜

  

 

 아무래도, 밥 차려 먹이기 혜자의 원조는 '우리 어머니들'이다.

 엄마 집에 가면서 나가서 맛있는 것을 먹자고 해도, 꼭 밥과 반찬을 해 놓고 기다리신다. 내가 검색한 맛집은 가 보지도 못한다.

 시어머니 댁에 가도 아들이 좋아하고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푸짐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있는 동안 먹고 집에 가져가라고 싸 주신다.  

 어머니의 음식 앞에서, "아, 나 지금 다이어트하는데", "흰밥이 몸에 안 좋다니까!", "아니 요즘 누가 이렇게 많이 먹냐고요" 하며 툴툴대지만 음식은 엄마식 사랑의 표현 방식임을 잘 안다.         


 언제라도 '엄마, 나 오이소박이 먹고 싶어.'라 말하면 엄마는 뚝딱 장을 봐서 소박이를 담가 주고, '어머니, 저번엔 갑자기 도라지무침이 먹고 싶더라구요.'했더니 나는 새콤 매콤한 도라지무침 한 통을 받아오게 됐다.

 나는 요리를 예쁘게 찍고 감탄하며 맛있게 먹는다.


 사람이 음식으로 그리워지고 음식이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나에게 맛있는 것을 해 주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또 불러 달라고 이 글을 쓴다.     

어머니 집의 인삼주병들-이건 전시용이죠? 27년째 보기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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