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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Oct 22. 2024

짧은 가을에 긴 겨울옷 정리

 엄마는 즐겁고도 귀찮은 업무 중

 나의 엑스-전화영어 선생님은 대부분 필리핀 여성이었는데 북미선생님비교해 가성비가 좋았다. 모국어인 타갈로그어 억양과 발음이 거의 없어 필리핀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잊게 하는 분도 많았다.

 여자라는 공통점으로 맞장구를 치다 보면 기본 교재의 내용에서 딴 길로 새기도 했는데 환절기마다 한국 사람들겪는 옷장 정리 스트레스를 무척 부러워했던 분이 기억난. 

 한국의 철이 바뀔 때마다 온 가족 옷을 세탁해서 깊이 수납하음 계절 옷을 꺼내서 입기 좋게 다듬어야 한다고 투덜거렸을 때는 거의, 오 마이갓 쏘 펀, 며 꼭 해 보고 싶은 일이라 했다.

 연중 고온다습한 마닐라 울이라도 우리의 한여름 날씨에 비견한다니, 우리나라 주부들이 마다  뒤집 업무 그에게는 즐거운 인형 로 여겨 보다.


 드디어 가을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기온이 뚝뚝 떨어지더니 거리에 플리스나 초경량 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따로 사는 딸들이 지난번에 가져간 옷은 가을용 정도였기에 부랴부랴 두꺼운 옷을 정리해서 각각 배달해 주었다.

 큰딸, '우리 회사는 냥 상하의만 입고 가면 요'라했지만 날이 추워지면 그 상하의라도 두꺼운 것을 입어야 하니까 말이다.


 아직 코트나 패딩 같은 한겨울 옷들은 가지 않았으니 엄마는 한번 더 배송 트랙을 타야 한다.


두 딸네로 가는 옷가방  




 나는 요즘 틈날 때마다 온 가족의 겨울 옷들을 꺼내 케어하느라 분주하다.

 올 겨울에 계속 입을 만한 옷을 선별하고 상태를 점검한다. 몇 달 이상 보관한 옷들은 옷감과 주름 등 상태에 따라 적당한 방법으로 정돈한다.

 보통은 드럼 세탁기나 건조기의 스팀 리프레쉬 메뉴나 스타일러의 기능들로 정리를 한다. 같은 스팀 리프레쉬라도 세탁기는 옷 표면에 살짝 습기를 머금은 채 끝나므로 따로 말리는 과정이 필요하고 건조기는 스팀으로 주름을 펴고 묵은 냄새를 날린 후 건조까지 돼서 나온다. 티셔츠나 셔츠 같이 접힌 자국이 심한 옷은 아예 세탁기에서 한번 헹굼과 탈수 과정을 거친 다음 물기로 인해 어느 정도 펴진 상태에서 옷걸이에 널어서 자연 건조하는 게 가장 좋기도 하다.

 한 가지 팁을 덧붙이자면 겨울옷의 특성상 검은 옷이 많은데 검은 옷에 희끗희끗한 먼지가 묻었을 때는 건조기에서 '이불 털기'로 돌리면 된다. 그러면 이불을 터는 강한 힘으로 옷을 털어내서 제법 까맣게 손질돼 나온다.

 니트와 모직류는 특히 옷 아랫단과 소매처럼 생활의 마찰이 필연적인 부분에 보풀이 생긴다. 면적이 넓고 옷감이 보풀제거기 쓰기에 적당하면 기구를 이용해 쉽게 제거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작은 가위로 일일이 잘라내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요즘 저녁마다 두 눈은 보풀 찾기에 투입되고 귀로만 뉴스와 드라마를 듣고 있다.

 

손질 전 한겨울 옷-지금 두껍게 느껴지는 옷들도 곧 입겠지



 나는 내년 봄이 되기 전까지 옷을 최대한 벌 이하로 사려고 한다. 도톰한 니트 카디건과 운동용 트레이닝 바지를 샀으니 마지막 한 번의 구입 기회가 남았다.

 내가 웬만하면 옷을 사지 않으려는 이유는, 새 옷을 사든지 있는 옷으로 버티든지 실상은 크게 차이가 없어서다. 사람은 자기 취향이 있어서 늘 엇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산다. 나 역시 무던하고 심심한 스타일로 굳어진 지 오래다. 지인들과 쇼핑몰에 가면, '저거, 언니가 좋아할 만한 옷이네'라고 먼저 알고, 내가 새 옷을 입고 나가도 '이게 새 거라고? 비슷한 거 있지 않았어?'란 소리를 듣는다.

 결국 이번에 새로 산 옷이나, 마흔 이후부터 여태까지 10년 넘게 입 옷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새로 사는 임팩트가 없다.

 그리고 옷값이 비싸도 너무 비싸다
 

 그거 아시는지? 티브이 홈쇼핑은 5060 세대의 구매율이 절반이상이고 특히 여성복 판매 방송은 오전 9시대와 한밤중에 많이 한다. 주부들이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티브이를 틀 때와, 귀가가 늦는 가족을 기다리거나 잠이 오지 않아 살짝 무료한 상태에서 홈쇼핑 채널을 보는 바로  타이밍에 여성의 옷을 파는 전략이 아닐까라는 게 내 추측이다. 심심하거나 짜증이 날 때 홈쇼핑을 보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지난여름에는 가을겨울이 배경인 드라마를 보며 니트에 코트를 겹겹 입은 주인공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요즘은 드라마 제작 전문 프로덕션에서 10회 안팎으로 완결한 드라마를 만든 다음에 방송사에서 한 주씩 방영하는 구조다. 그래서 방영 중에도 촬영을 해서 다음 회를 업데이트하던 시절과 달리 드라마 속 계절은 현실과 따로 간다. 한여름에 티브이 화면에서 멋진 겨울옷을 입은 여자들을 보니 나도 빨리 목도리를 두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이 가고 잠시 시원한 바람이 찾아오더니 곧장 쌀쌀해졌다. 원래도 짧았던 가을이 더 짧아지는 것 같다. 그나마 겨울이 되기 전의 아까운 가을날을 매일매일 발바닥 아프게 나돌아 다녀야겠다고 다짐한다.

 

 냉장고 속 재료가 같더라도 만들어 내는 요리는 사람마다 다르듯이 가지고 있는 옷들만으로도 개인의 창의력에 따라 매일의 코디가 빈곤하거나 다채로워진다.

 내 옷장의 콘텐츠는 불만스럽지만 탄력을 잃고 늘어지는 군살도 옷으로 충분히 커버가 되는 행복한 계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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