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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Oct 14. 2024

재개발 지역의 이웃입니다

우리 집은 재건축뷰

 우리 아파트 주변에서 재개발 공사를 시작한 지 3년이 되어 간다. 이 근처에 지하철역이 없던 1980년대부터 저층 아파트와 근린생활시설이 있던 낡은 구역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

 공사 면적은 크지 않지만 35층짜리 아파트 단지와 새 상가들이 세워지고 그 사이를 흐르는 도로와 지하 인프라를 정비하는 소규모 지역 재개발 사업이다.

 3년 전 여기로 이사 올 때부터 알던 일이었다. 당시에 이미 마흔 살이던 5층 아파트 단지의 이주가 한창이었고 주변 상가도 하나둘 철거 완료를 뜻하는 붉은 X 표시를 남기고 방을 빼는 중이었다.

 이사 온 동네에 익숙해지려고 저녁 산책을 할 때는 점점 줄어드는, 낡은 아파트의 불빛을 세곤 했다. 동네 할머니들이 하루종일 앉아서 낯선 이를 구경하던 큰 평상과 그 옆의 커다란 나무를 뽑는 장면을 장바구니를 들고 지나다 바라보았다.

 건물을 거할 때는 싯누런 장막을 둘렀고 장막을 걷어 낸 자리에 까마득히 높고 넓은 펜스를 치더니 땅을 깊이 파고 철근을 세우고 콘크리트를 부었다. 아파트는 며칠이면 벌써 여러 층씩 높아졌다. 숭숭 뚫린 회색 벽에 유리창을 달고 최신 스타일로 색칠하고 조명을 다는 모습을 우리 집 발코니에서 지켜보았다.

 어느새 다다음 달이면 새 아파트 입주라니 꽤 빠른 진행일 지도 모르겠다.

 

 나는 재개발 지역의 이웃이다.




 새 아파트 터를 둘러싼 기존 아파트 단지들은 일제히 현수막을 내걸었다.

 재건축 소음, 분진, 진동으로 못 살겠다, 아이들의 안전한 통학로를 보장하라 같은 기본적인 문구부터 덩치 큰 공사차량들이 오가며 도로가 다 파손된다며 '길이 여기밖에 없냐'같은 과격한 문장도 나붙었다.

 새 아파트와 정문을 마주하게 될 우리 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현수막을 두 곳에 달았다. 대책위원회에 알뜰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인근 아파트 현수막보다 작은 크기였다.

 

 이웃 아파트들의 아우성과는 상관없이 새 아파트는 쭉쭉 올라갔다.

 생각해 보면 그 아파트와 이 지역 원주민들은 1980년대부터 먼저 살고 있었고 우리 아파트를 포함한 주변 아파트들은 2000년대 이후에 속속 지어졌다.

 이 동네 아파트들이 앞뒤좌우에 지어질 때도 소음과 분진, 진동을 감내했던 사람들이 있던 것이다. 후분양을 받은 사람들은 공사장 옆 이웃의 고통을 직접 겪는 대신 그만큼의 분양가로 대가를 지불한 셈이다.  

 

 새 아파트가 웬간히 모습을 갖추었을 무렵, 새 아파트대표회로부터 각 집에 위로금이 입금되었다. 나는 공지문을 보면서 만약 세입자와 소유자가 다른 집은 위로금을 누가 받았을까 궁금했다.

 나의 의견으로는 3년째 공사 중인 여기에 살면서 일상적 피해를 받은 것은 집주인이 아니라 실거주하는 세입자일 테니 세입자가 받는 게 맞다고 본다.

 만약 내가 여기 살지는 않는 명의만 집주인이었다면 그 돈을 우리 집에 사는 세입자에게 보냈을 것 같다. 그렇게 쿨하게 처리할 만큼 '큰돈이 아니었다'는 뜻도 되겠다.

 아무튼 소소한 위로금을 입금받은 다음 날, 우리 아파트에 내건 현수막이 바뀌었다.


  


   00 아파트의 성공적인 입주를 기원합니다

                       다정한 이웃 **아파트



 돈 몇 푼에 완숙 달걀 프라이 뒤집듯 태세 전환해서는 항의 현수막보다 더 큰 환영 현수막을 내걸었다는 사실이 입주자의 한 사람으로서 조금 부끄러웠다.

 다른 아파트들에는 여전히 강력항의 현수막이 걸린 채 빛이 바랜 걸 보니 아직 위로금 등을 포함한 보상합의가 안 되었나 보다.


 주변에 새 아파트와 새 건물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당연히 불편한 점이 많다.

 나도 이런 공사장 근처에 산 건 처음이었는데 매일 집에 있어 봤지만 걱정보다 소음이나 먼지가 많지는 않았다. 오히려 차량이나 도보 통행시의 안전과 혼잡 문제, 공사장 관계자들의 주차 문제, 동네가 너무 어수선하고 복잡해서 겪는 괴로움과 불편이 더 컸다.

  그러나 공사가 끝나고 자리를 잡으면 신축 지역 바로 옆에 산다는 수혜가 분명 있다.  

   



 며칠 전부터 1층과 엘리베이터에 안내문이 붙었다. 우리 아파트 앞에서 진행 중인 상가 공사현장에 항의를 하러 나가자는 안건이었다.

 첫 회동은 평일 오전이었는데 나도 일이 있었고 나가야 할지 고민이 돼서 넘어갔는데 두 번째 회동이 마침 매우 한가한 토요일 오전이었다.

 바쁜 일도 없고 우리 아파트의 일은 나의 일이라 생각하고 나갔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유모차를 잡은 젊은 부부부터 개를 안은 아저씨, 전동차를 탄 할머니까지 골고루 나오셨다.


 그날의 목적은 아파트 정문 옆 두 동짜리 상가 신축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보상을 촉구하기 위한 집회였다. 처음으로 비상대책위원장님도 보고 여러 이웃들을 만났다.

 지난여름 어느 주말 낮에 아파트 어딘가의 비상벨이 오작동해서 모두들 나와 섰던 해프닝 이래로 그렇게 한 번에 많은 이웃들이 모인 건 처음이다.   

 

 어떤 분이 이번 일과 관련한 이슈를 정리한 보고서를 들고 발표를 하셨는데 놀랍게도 무슨 직책을 맡은 분이 아니라 나 같은 평범한 주민이었다. 그분의 브리핑이 끝나니 이번에는 건축관련한 실무 및 법적 조항을 완벽 패치하신 분도 등장해서 연설을 했다. 청중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는데, 와이프가 당신이 도움이 되지 않겠냐며 나가보라 해서 나온 거라고 부끄러워했다.

 순간 나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황궁아파트 103동 앞 집결 신을 떠올렸는데 영화가 아니다보니 박서준은 없었다.

 현실의 우리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 현장에서는 각자의 주장을 펴는 채널이 서너 개씩 동시에 중구난방이었고 이번 이슈와 무관하게 평소에 하고 싶던 건의 사항(아파트 앞 대로로 나가는 길목에 쪽문을 달자 등)을 내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생존권이 달린 시위도 아니었고 지루해져서 나는, 누구의 설명도 할 때 듣지 않고 각개전투를 하시는 할머니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a: 그니까 저 앞에 아파트에다 항의하자는 거지?

 b: 아냐, 저 아파트는 저번에 각 집에 돈을 줬자나. 그걸로 끝이야.

 c: 그래, 이건 요앞 상가 짓는 데 가서 항의하자는 거지. 저 놈의 공사판에 아주 나무가 다 죽었어.

 b: 에이, 나무는 마이신을 제때 줬어야 안 죽지.

 c: 관리소장이 마이신도 제때 다 줬대. 공사하는 서슬에 다 죽는 거야.

 a: (할머니들의 말을 손짓으로 끊으며) 아니아니, 저번에 무슨 돈을 받았다는 거야? 얼마를?

 c: 오머? 못 받았어? 하긴 세대주라니 아저씨 통장으로 들어갔겠지.

 

 몇 달 전의 단체 입금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할머니 댁의 할아버지는 그날 괜찮으셨을까.      

 

 각자 푯말을 들고 한 바퀴 돈 후 구호를 외치고 오기로 했다. 비상대책위원장님이 앞장서 나가며 뒤쪽을 향해 "누가 사진을 좀 찍어줘요!"하고 외치셨다.

 나는 그거라도 해야지 싶어서 관리소 앞을 출발해 목표 장소까지 걸어가 우리의 뜻을 전달하는 장면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저장했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린 집회가 끝났다.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공동의 이익을 위한 단체행동에 참여했으니 무임승차는 하지 않아 당당하다.

 지역 재개발의 현장에서 정말 고생한 우리 아파트 주민들도 두어 달만 더 버티면 된다.

 앞으로 예전의 낡은 환경 대신 주변 도로도 깔끔하게 개선되고 예쁜 가게들도 많이 들어와서 보다 살기 좋은 동네가 되는 게 정해진 수순이다.

 

 키도 크고 예쁘고 공부 잘 하는 친구처럼 느껴지는 새 아파트의 쭉 뻗은 조명을 바라보며 집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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