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게 가는 일주일
D-7
새로운 식구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우리 가족의 두 번째 반려견이 오는 날에 동그라미를 치고 매일 세는 중이다.
첫 번째 반려견 까미가 떠난 후에 우리는 몇 달 동안 각자의 방식으로 큰 슬픔을 받아들였다.
나는 매일을 함께 하던 개가 없는 일상을 지냈다. 뒤치다꺼리가 줄어든 만큼 몸은 편했지만 착하고 여린 존재만이 선물하는 '인센티브 같은 행복감'이 없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은 딱 알겠지만 개가 주는 기쁨은 가족이나 친구에게서 얻는 것과 다르다.
다시 반려견을 들이겠다는 마음은 분명하니까 어차피 하나의 생명을 책임질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기로 했다.
세상에는 따뜻한 집과 사랑이 절실한 개들이 너무 많다
동물권행동 카라에 입양 신청서를 내고 파주에 있는 보호센터에 다녀왔다.
쾌적한 실내외 공간에 구내 병원까지 운영하는 환경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활동가님들이 단순히 직업을 넘어 애정과 프로 정신으로 동물을 대한다는 것을 느꼈다.
여느 보호소보다 여기에 있는 개들은 행운이지만 이곳에도 수용 한계가 있다. 좋은 가족을 찾아 떠난 빈자리가 생길수록 또 다른 개들이 구조되고 살아날 기회가 많아진다.
따뜻하게 눈을 맞춰주는 개들 중에 한 마리만 결정하는 일은 어렵고 미안했다. 우리는 고심 끝에 눈에 띄지 않고 조용하던 개를 데려오기로 했다.
보호소에서 지어주신 이름은 '니나'였다. 니나는 다른 사설 보호소에서 카라로 옮겨와 대여섯 살로 추정되는 평생 동안 가족 없이 지냈다.
반지르르하고 진한 갈색과 검은색 단모를 가진 순한 눈빛의 니나에게 중성적 네이밍 트렌드에 맞춰 '군밤'이라는 새 이름도 지었다.
새 이름을 꼭 자기가 지으리라는 야망에 찬 작은딸이 꿈을 이뤘다.
거실 벽에 군밤을 환영하는 가랜드와 풍선을 미리 붙였고 포근한 공간도 마련했다. 주로 자고 쉬는 곳과 배변할 곳의 동선도 신중히 설계했다.
혹시라도 마음 내킬 때는 안방에 와서 잘 수 있게 우리 부부의 침대 근처에 놓아 둘 방석을 구입했다.
큰딸은 군밤이가 뭘 잘 먹을지 모른다며 각종 사료와 간식 샘플을 주문했다. 까미가 떠나며 멈췄던 반려견 키우기 통장도 다시 열었다.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즐겁다. 가족들도 그래 보인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더욱 그립다
잘 보이는 거실 한쪽에 있던 까미의 기억 코너를 안전하게 큰딸 방으로 옮겼다.
생전의 모습 그대로 나를 바라보는 까미에게 '동생이 온다고 해서 너를 잊지는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노래가사대로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랑은 옛사랑을 더욱 떠올리게도 한다.
까미는 이랬는데 군밤이는 이렇구나, 까미도 당근을 좋아했는데, 까미도 이런 표정을 지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딱 한 번 만나고 만져보지도 못한 군밤이를 기다리며 어릴 적에 사랑했던 개들을 두런두런 추억한다.
늘 둘이 꼭 붙어 자며 엄마가 주방으로 가기만 하면 번개같이 따라가던 남매 강아지들, 어느 봄날 아침에 새끼를 낳았다고 할머니가 미역국을 끓여다 먹이던 하얀 개, 열 살 정도이던 내가 등에 탈 수 있을 만큼 컸지만 너무 순했던 큰 개가 아플 때는 학교에 다녀오면 개집부터 들여다보곤 했다.
반려견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개가 아플 때 사람 약이라도 사다 먹이면 다행이던 옛날에도 개들은 착하고 사랑스러웠다.
사람도 힘들게 살던 시절에 개는 오죽했을까. 이웃이 놓은 쥐약을 먹고 죽거나 별 것도 아닌 병을 방치해서 죽거나 개장수에게 넘겨지기도 했을 것이다.
어쨌든 개나 사람이나 요즘 태어나는 게 행운인가 보다.
일주일은 금방 지날 것이다.
새로 꾸민 개집에는 사용해 줄 주인보다 먼저, 폭신한 방석과 삑삑이 장난감이 자리를 잡았다. 친구가 입양 축하선물로 보내 준 군밤이용 당근 케이크도 있다.
곧 긴 보호소 생활을 끝내고 우리 집에 올 군밤 양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겠지.
우리 가족과 군밤이 만들어 낼 이야기들은 과연 어떤 제목으로 시작하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