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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후 첫 사흘 보내기

조심대장 군밤이

by 이명선 Feb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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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던 반려견이 왔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그동안 우리 개를 돌봐준 유기견 보호소 분들에게 보낼 떡을 사놓았고 거실 벽에 주렁주렁 매단 환영 장식도 모자라 현관문에도 가랜드를 달았다.

 어서 빨리 보드라운 뱃살을 조몰락거리고 착한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곧 다가올 따뜻한 봄날 오후에 오래오래 산책을 가야지.


 군밤이는 차분한 성격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예상 밖의 조심대왕이었다. 활동가 님이 들고 온 비좁켄넬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센터에서  보드라운 초코 시나몬롤처럼 말아 올렸던 꼬리는 축 쳐졌다.

 입양 확약서를 쓰고 특별히 유기견의 케어에서 주의할 사항을 전달하신 보호소 분들이 떠나려 하자 군밤이는 따라가려고 했다. 저기요, 나를 여기 두고 간다고요? 하는 눈빛이었다. 

 활동가 님이 나에게 배웅하지 말고 중문을 닫으라고 했다.

 

 지금 군밤이는 하루가 저물어갈 때까지 둥그렇게 몸을 만 채 눈만 감았다 떴다 하고 있다.

 함께 온 센터 스태프들을 기다리는 것일까. 이젠 여기가 너의 집인데.


도착 3시간 후-식탁 아래에서 꼼짝 않는 군밤이


 활동가 님은 오늘 당장 군밤이를 혼자 두고 최소 30분 이상 한두 시간까지 집을 비우라고 했다. 낯선 환경을 탐색하고 상황 파악을 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군밤이를 보려고 집에 온 딸들까지 네 식구가 뜻밖의 저녁 외식을 하게 됐다. 주인공 없는 환영회 식사를 하며 휴대폰에 실시간 펫캠을 띄워 놓았다. 식탁 아래 있는 개는 가려서 보이지 않았고 아무도 없는 집안은 정지화면처럼 보였다.

 50분쯤 지나자 갑자기 군밤이가 식탁 아래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뒷다리는 그대로 두고 몸만 늘려 내가 벗어 놓은 슬리퍼 냄새를 얼른 맡고는 다시 식탁 밑으로 사라졌다. 우리가 자리를 비켜준 두 시간 동안의 행적은 그게 다였다.

 

 코 앞에다 그릇을 놓아주면 사료를 아작아작 깨물어 먹고 물도 많이 마셨지만 그 외에는 코를 꼬리에 박은 채 눈으로만 가족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좇을 뿐이었다.

 군밤이는 평생을 다른 개들로 항상 시끌 복잡했던 보호소에서 살았다. 그 익숙한 곳을 떠나 혼자서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불안할 만도 하다.

  

 '반려견 스스로 경계를 풀고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라'는 새로운 미션의 시작이다.

 



 낯선 곳에서의 첫밤이 무서울까 봐 거실에 매트리스를 깔고 군밤이가 보이는 곳에서 잤다. 밤사이 군밤은 가끔 낑낑거렸다. 그 소리에 나도 덩달아 잠을 설쳤다.  


 둘째 날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식탁 아래가 아닌 식탁 다리 옆에 나와 앉아있기도 했고 웅크리고 있다가도 가끔은 상체를 세우고 나를 관찰했다.

 군밤을 교육하신 카라 팀장님의 조언을 기반으로 설쌤, 개통령, 화석 이웅종 소장님 같은 슈스의 가이드뿐 아니라 '유기견의 가정 적응'에 대한 내용이라면 다른 반려인들의 영상이나 포스팅도 닥치는 대로 봤다.

 소심한 개에게는 다가가지 말고 그저 기다리라는 말이 대세인데 나는 대치 상황이 답답해서 가끔 개 앞에서 애교를 부리고 각종 간식으로 통사정을 해 본다. 번번이 리액션은 받지 못했다.

 식탁 밑에서 좀 나오게 하려고 헨젤과 그레텔처럼 간식 징검다리를 놓아봤지만 한두 개 집어먹고는 물러서 버린다. 심지어 삶은 소고기로 유인을 해도 흔들림이 없다.

 우리 개는 반려견계의 서경덕이었다.


 이틀째 날도 잠시 혼자 두고 나갔다.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계속 펫캠을 봐도 개는 자리에서 한번 일어나지도 않는다. 모션감지알림이 울릴 때마다 기대하면서 열어보면 그냥 뒤척뒤척한 것이었다.

 군밤이가 식탁 아래 머물기를 고수하면서 사료와 물그릇, 배변패드까지 식탁 근처로 옮겼다. 여전히 사람이 가까이 가면 피하지만 그래도 애견 방석을 놓고 무릎담요를 깔아주니 냉큼 올라갔다. 

 생각해 보면 큰 발전이다.


 인스타의 동물권 행동 카라 오피셜 계정과 몇몇 봉사자 계정들에서 군밤이의 과거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영상 속에서 군밤이는 트레이너의 리드줄을 따라 계단을 오르내리는 훈련도 하고 친구들과 잔디밭이나 눈밭에서 놀기도 한다. 카라로 넘어오기 전인 강아지 시절에는 보호소 철창 위에 올라가 짖고 있기도 했다.  

 마치 남친의 과거 사진을 훔쳐보는 심정이었다.

 이 쉐키, 이렇게 잘 놀고 활발했구만. 지금 어디서 이중적인 수작이얏!


군밤이의 과거 사진 중에서(카라 홈피) - 이 표정을 언제쯤 볼 수 있을지




 사흘째 날, 외출을 했다 들어오며 이름을 부르니 나를 보는 표정이 달라지긴 했다. 반가워하는 건 아니지만 거부하지는 않는 느낌이다.

 그러나 개는 여전히 식탁 아래에서만 왔다 갔다 하고 내가 식탁 주변으로 가면 놀라서 피한다. 

 아니, 나도 그쪽에 볼 일이 있다고!

 

 군밤이가 나를 보고 몸을 쭉 펴더니 크게 하품을 했다. 강아지가 하품하는 이유를 찾아보니 여러 이유가 있으나 대부분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나왔다. 역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보다.

 성견을 입양하면 성격에 따라 사나흘 정도 사람들을 관찰만 하다가 서서히 바뀐다는 경우가 많지만 스스로 보호자에게 다가오기까지 일주일 혹은 그 이상이 걸린다는 얘기도 있다.

 카라 팀장님께 사진과 함께 현재 상황을 알렸다. 사진 속의 군밤이는 괜찮아 보인다고 하셨고 간식을 여기저기 많이 뿌려주고 모른 척하라고 하셨다.

 '간식을 많이 뿌려두라'는 말을 하도 들으니 오기가 생겨서, 이건 너무 많나? 싶을 만큼 각종 간식을 난사했다. 저녁에 남편이 오면 발 디딜 데도 없겠다.


 그날 밤에 카라 팀장님, 네이버 엑스퍼트 등의 조언을 따라 거실 구석에 마련한 텐트 집으로 군밤이를 이동했다. 식탁 아래는 사방에 낯선 공간이 훤히 보이게 트여 있고 가족들이 자주 오가는 곳이라 불안감을 없애기엔 좋은 위치가 아니다. 좀 더 조용하고 안락한 곳으로 옮겨 주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남편과 둘이 진땀을 빼며 꼬시고 달래고 몰며 이사를 했다. 영문도 모르고 이사를 당하면서 제 나름 스트레스를 받았을 텐데 한 번도 으르렁거리지 않고 도망만 다녔다. 

 그렇게 착한 놈이라 더 마음이 안 좋다. (그래, 무능력한 남친도 일단 착하면 버리기가 힘들잖아.)


 사흘째 밤이 지나고 아침에 펫캠을 돌려보니 네 다리를 뻗고 잠을 자기도 하고 살그머니 나와 응가도 하고 쉬도 하고 들어갔다.

 무려 사흘 만에 똥을 싸 줬다. 변비에 걸린 것은 아니니 걱정 하나는 덜었다.


 앞으로 나흘째, 닷새째, 일주일 후에 군밤이는 어떤 변화를 보여줄까. 

 우리는 앞으로 최소 10년 이상 함께 살아야 하니 지금의 두어 주는 참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사흘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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