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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머리는 뒤에서 볼 수 없다

몽골의 봄

by 이명선

남편과 큰딸은 몽골여행 중이다.

어느 날 큰애가 '나랑 같이 몽골여행 가실 분?'이라 물었고 원래 도시문화파인 작은애와 나는 침묵했지만 자연경관파인 남편이 손을 들었다.

어디 가서 몽골을 다녀왔다고 하려면 거대한 대나무찜기 같이 생긴 게르에 머물며 소박한 공동 샤워실과 화장실을 이용하고 4륜구동 짚차로 초원과 사막을 오락가락해 봐야 한다는데 그 옵션들이 내게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오늘 아침, 낙타의 뒷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나는 낙타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동물원에서 여러 섹터를 지나치며 멀찍이 본 낙타의 무료한 표정이 내 데이터의 전부였다.

낙타의 등에 있는 혹에는 지방이 저장돼 있어서 사막 같은 극악의 환경에 생존할 수 있다는 상식은 안다.

아, 인디 가수 중에 최낙타라는 사람이 있다 정도를 추가하겠다.


큰딸이 보낸 낙타 영상-두런두런 걷고 있는 낙타 무리를 본 것은 혼자서 느지막이 먹은 아침을 막 정리하려던 때였다.

"악! 귀여워!!"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웅크리고 있던 군밤이 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차 바로 앞에 낙타 무리가 이동 중이었다. 초원을 가로지른 도로는 경계에 가드레일이 없어서 무리 중 몇 마리는 풀밭 위에서 걷고 대부분은 도로를 걷고 있었다.

낙타들은 상상한 것보다 매우 컸고 약간 팔자걸음인데 다리와 머리를 칼군무처럼 딱딱 맞춰 터벅터벅 가고 있었다.

내가 두 번째 비명을 지른 것은 그 절레절레 흔들리던 누렁이 털색의 부위가 '머리'가 아니고 '혹'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다.

동영상을 찬찬히 보니 차 안에서 찍은 건 낙타들의 뒷모습이라서 쌍봉 중에도 엉덩이 쪽에 있는 봉우리가 흔들리는 것을 머리라고 착각한 것이었다.

네 다리로 걷는 동물들의 뒤쪽에서도 그 머리가 보이기 마련인데 낙타의 머리는 혹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낙타의 머리를 보려면 옆이나 앞으로 가야 한다. 인생도 그렇다. (캬하~~)


남편이 찍은 몽골의 쌍봉낙타


단봉낙타와 쌍봉낙타는 분포 지역이 구분된다. 더위에 강한 단봉낙타는 아프리카의 사막 지대와 중동 지역에 주로 살고, 추위에 강하며 세계사의 중요 네트워크인 실크로드에서 활약했던 쌍봉낙타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산다.

낙타는 혹이 봉긋하고 단단하고 예쁘면 건강한 상태다. 영양이 부족하거나 지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혹이 쳐지고 힘이 없다. 혹이 무너진 낙타의 사진을 보면 늙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돌봄이 필요한 것이었다.

지금 몽골의 낙타들은 우리 집 군밤이처럼 한참 털갈이 시즌이라고 한다. 곧 다가올 여름을 대비해서 겨울의 묵은 털이 시원하게 빠지는 중이다.

조그만 군밤이가 한 번만 몸을 떨어도 눈썹 같은 검은 털과 새치 같은 흰 털이 화르르 뿌려져서 돌돌이 테이프로 뜯어내느라 바쁜데 몽골 인구보다 많다는 낙타들이 벗어내는 터럭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찍는 듯한 부녀의 실시간 근황을 받으니 우리나라와는 다른 이국의 자연을 누리는 여행도 꽤나 좋겠구나 싶다.

차가 다니는 도로를 함께 이용하는 낙타 무리는 현지의 자연을 입고 마시는 여행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를 보여준다.


오늘 여기는 봄비가 여름비처럼 천둥번개를 치며 오는데 몽골의 초원은 설원이 됐다며 눈이 쌓인 사진을 보내왔다. 여행 두번째날인 오늘은 티브이에서나 보던 몽골의 전통 개 방카르들과 어울리는 경험도 했단다.

마침 큰애는 오늘이 딱 입사 3주년 기념일이고 남편은 작년 말 명퇴 이후 첫 여행이니 외모도 성격도 꼭 닮은 부녀에게 이번 여행은 긴 꼬리를 가진 추억으로 남겠다.


큰애에게서 카톡이 왔다.

- 아빠가 몽골에서 가이드하며 살고 싶대.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거기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라도 들었다니 꽤나 좋은 시간을 보내나 보다.

그나저나 몽골어는 배우기 어려울 텐데.


군밤아, 얘들이 그렇게 귀엽대. 아저씨 뺏기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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