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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훈 Jun 01. 2020

최은영 <쇼코의 미소>를 읽다.

객기(客氣)

소설의 시점은 일본에서 온 쇼코의 호스트 가정의 딸이었던 ‘소유’의 일인칭 시점이다. 이러한 ‘소유’의 일인칭 시점은 쇼코와의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떨리는―‘변화하는’이라는 표현보다 이 표현이 훨씬 잘 어울린다 생각한다― 소유의 마음과 생각의 변화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점으로 그녀들의 관계를 소유의 단편적인 관점에서나마 지켜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소유의 미소가 아닌 쇼코의 미소가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쇼코는 “언젠가는 유두 근처에 애벌레 모양 타투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주변의 여자아이들은 얼굴이 새빨개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행위가 사회적 통념에 대한 반감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린 날의 객기라고만 생각되었다. “쇼코는 부끄러워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부끄럽지 않은데, 그냥 습관적으로 부끄러운 듯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상대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포즈를 취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더불어 “이러한 것에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고 이야기 한다. 


무엇이 그녀를 이러한 행위를 하도록 만든 것일까. 단순 젊은 날의 객기라고 보는 게 맞을까. 아니면 자신을 속박하였던 존재―할아버지와 같은―들로부터 벗어나고자했던 욕망이자 자유를 추구했던 것이었을까. 처음 쇼코는 소유가 자신의 할아버지를 주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소유를 보고 조용히 웃었다. 소유는 그러한 그녀의 웃음을 친절하지만 차가운 미소였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다 커버린 어른이 유치한 어린 아이를 대하는 듯한 웃음이라고 말이다. 이것이 쇼코의 첫 번째 미소였다. 그녀는 이러한 쇼코의 말들에 대해 마을에 분명한 자국을 남겼다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말은 소유가 혼자의 힘으로 교환학생을 준비하고 유학생활을 나아가게 만든다. 모르는 사람과의 눈싸움에서 밀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여자를 쳐다보는 모습과 같은 강해보이는―사실 강해보이려고 처절히 노력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두 번째 쇼코의 미소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대학교 사학년 여름, 쇼코의 집을 직접 찾아갔을 때였다. 그녀는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고 이야기한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 두려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쇼코는 마치 퓨즈가 나가 있는 것만 같아 보인다. 그녀는 그림을 그릴 까, 글을 써볼까 하면서 예의바른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소유는 차갑고 어른스럽게 보이던 그 웃음에서 나약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읽는다. 그녀를 강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던 쇼코에게 이상한 우월감에 휩싸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러한 쇼코의 미소를 본 소유는 자신의 꿈을 통하여 자신이 머무는 세계의 한계를 부술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며, 점차 꿈에 대해 비관적으로 이야기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세 번째 쇼코의 모습을 본 것은 할아버지가 가지고 왔던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쇼코는 눈과 입을 과장해서 활짝 웃는다. 그녀는 도쿄의 법학과 관련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였다. 도립 대학에 다니고, 물리치료 선생이 된다. 그러한 사진과 편지들과 함께 소유는 자신의 할아버지한테 그녀를 위로하는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쇼코는 편지를 통해 자신이 느꼈던 두려움을 고백한다.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릴까봐 무서워 할아버지가 필요했다고 고백한다.


쇼코의 마지막 웃음은 “나는 너를 이제 안본다”고 이야기 까지 했던 그녀와 만났을 때이다. 할아버지가 보냈던 편지를 읽으며 그녀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쇼코는 “우리 이제 혼자네” 라는 말을 하며 예의바른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이러한 쇼코의 미소가 등장할 때마다 쇼코와 소유의 관계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녀들의 관계는 너무나도 불완전하여 마치 시소를 타는 듯한 모습이다. 하나가 부족하면 하나가 넘쳐흐르는, 이러한 관계로도 보인다. 사실은 이러한 모습은 쇼코의 미소를 소유가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그녀들의 관계는 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그 깊이로부터 기인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으로는 부족하여 보인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는 말이 그들의 관계를 나타내지는 않을까. 분명 소설 초반에 나왔던 “나는 이성애자야, 너에게 성적인 관심은 없어, 또 다른 동성들에게도 마찬가지야, 난 남자가 좋아.”라고 했던 이 말이 이곳에서 연결되어 연애라는 감정에 까지 달려가는 것을 방지하는 완충작용을 해주는 것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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