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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빈대디 Jan 09. 2023

'승진이 안 됐다고?' 축하해!

그게 위로할 일은 아니잖아?



한 해가 가고 다른 한 해가 오는 때가 되면 많은 회사나 기관에서 '승진'이란 이름의 진급자 발표가 있다.  어느 시대 어떤 조직 이든 비슷하게 치르는 연례행사이다.


요즘 내가 출근하고 있는 기관에서도 얼마 전 그 연례행사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사무실에도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축하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사람 - 이른바 '승진누락자' - 도 있었다.


그런데 승진자 명단에 들지 못했다고 해서 모두 승진누락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승진할 의지가 분명하고 승진에 필요한 조건을 채운 사람이지만 결과적으로 승진자 명단에 들지 못할 때 비로소 그를 승진누락자라 칭한다. 승진누락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우리 사무실에는 표면적으로는 한 사람의 승진누락자가 있었던 것 같다. 승진 조건을 갖춘 사람이야 그보다 훨씬 많았겠지만, 겉으로까지 승진 의지를 숨기지 않았던 사람만 말한다면 한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아무튼 그 승진누락자는 명단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 꽤나 속상해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승진누락이 과연 슬퍼만 할 일일까?'


승진자는 마땅히 많은 축하를 받는다. 그러나 그 축하 뒤에는 질투와 시기도 함께 숨어있다.


반면에 승진누락자는 위로라는 따듯한 보상을 받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승진에서 누락되었더라도 시간이 지난 에는 언젠가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게 보통이다.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다.


좀 더 정확히 하면,

그는 승진누락자가 아니라,

승진을 뒤로 미룬 '승진지연자'이다.


만약 조직생활에서 승진누락 아니 승진지연을 큰 불편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의 삶은 달라진다. 상사 눈치보기 주변에 잘 보이기 따위에 애를 쓸 필요가 없어진다. 더불어 다음 승진을 걱정하는 진급 스트레스도 더 이상 그의 문제가 아니다. 느긋하게 기다리며 마음을 좇아 생활하면 된다.


승진이란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고비마다 마주하는 오르막 계단과도 같다. 승진을 하려면 그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런데 계단을 오르더라도 속도를 늦추어 쉬엄쉬엄 오르면 별로 힘이 들지 않듯이, 승진도 그렇다. 시간을 길게 늘려 주고 중간중간에 휴식도 끼어 넣으면 승진이란 계단도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결국 승진을 늦추는 '승진지연자'를 택하면 승진은 더 이상 어려운 상대가 아닌 것이다. 


승진 욕심 - 좀 더 정확히는 빠른 승진 욕심 - 을 내려놓으면 내 마음과 내 생각이 내 삶을 주도하게 된다. 흔히들 말하는 워라밸이라는 것어렵지 않게 얻게 된다. 승진이 주는 한 동안의 기쁨과 행복 대신 자기가 결정하는 일상을 얻는 것이다. 승진 욕심을 낼 것인가? 내려놓을 것인가? 는 결국, 남들이 인정하는 행복이냐? 만 만족하는 행복이냐? 둘 중 어느 쪽에 손을 내밀 것이냐의 문제이다.


물론 승진이라는 오르막 길 걸음마저 아예 멈추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숨 가쁘게 서둘러서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목적지에는 도착한다. 조금 늦게 도작하거나, 더 늦어져 날까지 저물면 꼭대기 말고 그 아래 적당한 곳까지만 오르면 된다. 그래도 별반 차이가 없다. 본인만 차이를 크게 느낀다.


인생이라는 세상에는 오를만한 산이 지금 오르고 있는 이 산 말고도 수도 없이 많다. 지금 이 산이 아니더라도, 비탈이 가파르지 않은 편한 산 이든, 계곡이 깊어 여름날에 좋은 산 이든, 아니면 활엽수가 우거져 가을이면 낙엽이 좋은 산 이든, 취향에 따라 오를만한 산은 많다. 지금 오르는 산이 전부가 아니다. 인생이란 세상은 생각보다 길고 오를만한 산도 많다.



승진자 발표가 있고 며칠이 지난 후 나는 사무실에서 승진지연자, 그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굳이 위로드린다면 조금 늦어진 것뿐입니다.

 기다리면 되게 될 테니까요.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물론 지나온 자의 생각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 진짜가 보이는 경우도 많다. 


'살다가 승진누락을 만나면,

 그냥 가볍게 받아주면 된다.

 단지 승진을 미룬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결국 '어디를 보느냐' 그것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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