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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로미 Jun 14. 2020

직장 동료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소공녀(2020) 1호

"쌤, 저 하루만 재워주시면 안 돼요?"

"오 당연히 되죠! 좁아서 불편할 수도 있을 거예요."


처음으로 기꺼이 내 부탁을 들어준 사람.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밝고 둥글둥글한 사람이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 3년이 지났지만 난 그녀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녀를 대학교 어학당에서 처음 만났다. 난 당시 처음으로 대학 정규과정 강의를 맡았기 때문에 굉장히 긴장됐다. 특히 나의 모교였기 때문에 보는 눈이 많아서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감도 지울 수 없었다. 


개강 전날 전체 강사 회의가 진행되었고 당장 그다음 날부터 수업을 해야 했다. 오전에 회의가 끝난 후에야 어떤 급을, 언제 수업하는지 알 수 있었고 그 당시 나는 새 교재를 들고 어찌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나와 같은 급, 같은 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누가 먼저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우린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나만 내일부터 바로 수업을 시작해야 했고 그녀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곧장 집으로 가서 쉬어도 되었지만 그녀는 아직 초보 선생님인 나를 극진히 도와줬다. 함께 수업 내용을 확인하고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 같이 고민도 해 주었다. 심지어 강의실도 함께 가서 컴퓨터가 잘 작동되는지 교구는 충분한지 확인도 했다. 나는 원래 선생님이란 직업 특성상 모든 선생님이 이렇게 친절한 줄 알았다. 하지만 여러 해가 지나고 그녀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임시 강사였다. 다시 말해 정식 채용은 아니었고 학생 수에 따라서 일을 할 수 있는 신분이었다.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직장에 정을 두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하고 친해지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녀와는 연락을 주기적으로 하고 가끔 밥도 같이 먹었다. 같은 반에 들어갔기 때문에 수업 내용과 특이 사항 등을 공유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친한 사람이 없는 삭막한 강사실에서 그녀가 환하게 인사를 건네면 갑자기 세상이 밝아지는 것처럼 따뜻한 기운을 받았다. 


"쌤, 약식 좋아해요?"

"약식? 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왜요?"

"진짜요? 엄마가 쌤이랑 같이 먹으라고 싸 줬는데."

어머니가 손수 만든, 포크 두 개까지 정갈하게 싸온 간식을 수줍게 내밀었는데 나는 방금 내뱉은 말이 부끄러워졌다. 이미 차갑게 다 식어버렸지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약식을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과장을 보태자면 지금까지 먹은 음식 중에 어떤 음식이 가장 맛있냐고 묻는다면 그때 그 회의실 구석에서 함께 먹었던 약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치 여고생처럼 붙어 다니는 우릴 보며 다른 선생님은 같은 학교 동기나 원래 친구가 아니었냐고 묻기도 했다.


우리는 그 이후 같은 급에 들어가거나 같은 요일에 수업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음 학기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한 감정을 공유했기에 더 단단한 사이가 되었다. 방학 기간에는 예쁜 카페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맛집, 평일에 다소 한산한 놀이공원 등을 같이 가면서 불안감을 덜어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없기 때문에 조금 더 여러 길을 갈 수 있도록 박사 진학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박사 과정이 시작되면 시간적 여유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함께 여행도 다녀왔다. 오랜 친구 사이라도 여행지에서 싸우는 일이 많아서 혹시 싸우진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우고 알아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내가 하는 일에 무조건 오케이를 하는 그녀와 싸움이 일어날 리 만무했다. 또한 내가 잘 못하는 길 찾기나 벌레 잡기 등 여러 가지 일을 그녀가 해 줘서 정말 즐겁게 다녀왔다.


박사를 하면서도 일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후로도 많은 대학교에 지원서를 냈다. 어쩌면 경쟁 상대가 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묻지마' 지원을 하지 않고 서로 정보를 공유했다. 계속해서 같은 직장에서 일하면 서로에게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업계는 보통 합격한 사람에게만 연락이 가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그 기다림의 시간도 참 쉽지 않았다. 불합격 문자라도 연락을 주면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한 학교에서 발표가 났고 우린 서로 다른 결과를 받았다. 


"쌤, **대 떨어졌네요."

"진짜요? 전 연락 못 받았는데, 스팸 처리됐나?"

"오 진짜요? 쌤은 합격 아니에요?"

정말 그녀의 말처럼 나는 합격 문자를 받았고 마냥 기뻐하기도 미안했다. 그 이후 면접까지 통과해서 내가 먼저 불안감을 청산하게 되었을 때도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 나는 그때 그녀가 얼마나 힘든지 알았기 때문에 더 고마웠고 미안했다. 내가 힘들 때 타인의 행복에 축하해주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그녀에게 더 감사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녀가 다른 학교에 합격했을 때도 정말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내 일처럼 기뻤다. 


당연히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고 다른 길을 걷게 되면서(나는 박사 진학을 포기했고 그녀는 박사를 하면서 일을 하게 되었다.) 전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그 이후로도 시간을 쪼개어 만났다. 불안정한 삶을 살 때보다 더 마음 편하게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제 더 이상의 불안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실직을 하게 되고 난 후에는 선뜻 연락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가진 우울감을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그 누구에게도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을 혼자 보내고 문득 그녀의 생일이 봄이었다는 기억이 났다. 미처 봄이 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뒤늦게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서로의 근황을 물으면서 자연스럽게 학교를 나오게 된 것을 이야기했고 그녀가 왜 힘들 때 연락하지 않았냐며 당장 얼굴을 보자고 해서 그때도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소 황당하고 어이없는 나의 부탁에도 흔쾌히 응해줘서 더 고마웠다. 


그녀가 사는 원룸은 침대 옆에 작은 상을 펼치고 두 사람이 앉으면 꽉 차는 공간이었지만 우리는 포장해 온 만두전골, 스콘과 케이크, 딸기, 와인 등을 잔뜩 늘어놓고 참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 다시 불안해지고 힘든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해서. 나는 야행성이 아님에도 새벽까지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다음 날 아침에도 손수 수박 주스를 갈아주고 단호박을 쩌 주는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은 편지 한 통을 두고 나왔다. 


보통 사람들은 직장에서는 친구를 사귀는 건 아니라고 직장 동료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나오는 '설명숙' 같은 사람으로 대표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직장 동료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오히려 나의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고 함께 고민하고 응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함께 일한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경쟁자가 아니라 여러 정보를 공유하면서 서로의 삶을 응원해주고 있다. 사실 지금 너무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그녀에게 좋은 일이 생기고 나보다 훨씬 잘 된다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오래전 그녀가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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