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가 태어난 지 80일이 넘어갑니다. 나는 정말로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될 줄이야... 나의 오래된 친구들과 친정엄마도 놀라시지요. 무척 자유롭고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장난기 많은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될 줄이야. 적응이 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세 아이의 엄마"라는 자리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셋째를 안고, 양쪽에 아이 둘의 손을 잡고 있으면 많은 분들이 쳐다보시고 여러 이야기도 해주십니다. 대부분 "다복하네~ 고생 많네~ 애국자다." 하는 말들입니다. 그중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애국"이라는 말인데, 저는 좀 불편합니다. 애국하기 위해서 아이를 낳은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지요. "아이들도 엄마도 지금 힘들어도 커서는 좋을 거야"라는 말도 종종 듣습니다. 감사하지만 나는 '지금도 좋고 싶다'라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아이들도 나도 그리고 우리 남편도 지금 즐겁게 지내길 바랍니다. 나는 행복한 매일이 모여 행복한 미래를 만들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재밌게 지낼까?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즐거운 시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자주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춥니다. 나는 춤을 잘 못 춥니다. 내 춤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무척 부끄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렇게나 춤을 춥니다. 그 춤이 잘못됐다, 잘됐다 평가 자체를 하지 않지요. 아이들의 그런 모습이 참 멋져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아무런 눈치 보지 않고 무근본 댄스를 방출합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춤을 추면 더 흥이 올라 맘껏 춥니다. 춤을 추다 보면 37년 동안 잘 느껴보지 못한 자유 혹은 쾌감 같은 것을 느낍니다. 부끄러워서 오랫동안 숨겨왔던 내 안의 무언가를 꺼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항상 찌뿌둥했던, 쭈그리 관절 하나가 곧게 펴지는 느낌이랄까요?
엄마라는 역할을 하면서 힘든 이유는, 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이 앞에서 부끄러운 어른이 되기 싫었습니다. 어떤 엄마든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싶습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 지금의 내 모습을 바꾸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과하면 무겁고 부담스러운 것이 됩니다. 나는 그 과정을 참 오래 겪었습니다. 첫 아이를 낳고서 정말 잘 키우고 싶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성격 개조를 해서라도 아이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럼에도 나는 노력했습니다. 현재의 나를 부정했고, 나를 잘 키우지 못한 부모님께(그때는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아이를 잘 키우는지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내가 가진 많은 장점들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나의 최대 장점인 유쾌한 유머는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항상 몸과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어요. 내 모습을 숨기고 나에게 맞지 않는 가면을 써야 했으니까요.
내 마음, 내 행동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특히 아이의 울음과 짜증 앞에서 육아 서적에 쓰인 대로 되지 않을 때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면 폭발을 하게 되지요.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그간 가면을 쓰느라 힘들었던 것들이 한 번에 올라왔습니다.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고 나면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 옵니다. 아이를 안고 펑펑 울며 미안하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아이에게가 아닌 나에게 사과를 했어야 합니다. 억지로 가면을 쓰고 고통을 받고 있는 진짜 나에게 말이지요.
5년 동안 아이 셋을 낳고 키우고 있습니다. 5년이라는 육아의 시간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를 아끼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매일 무릎 나온 레깅스에 아이의 침이 뭍은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 간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든 간에 나는 있는 그대로 괜찮습니다. 매우 흔한 말인데, 나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장점뿐만 아이라 단점도 인정하는 것이 나에게는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습니다. 단점은 어떻게든 고쳐야 하는 것이라고 여겼거든요. 아이를 낳는다고 찐 살들, 임신 중에 생긴 기미들, 내가 뭘 먹고싶은지도 모르는 결정장애, 아이 키운다고 생긴 경력단절... 생각해보면 끝없이 떠오르는 나의 단점과 불안한 상황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쉽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왜 나의 단점까지 인정하게 되었을까요?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단점을 수없이 많이 직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단점도 직면해야 했지요. 그럴 때마다 자책의 연속이었습니다. 내가 이래서 우리 아이도 이렇구나... 하는 절망에 빠져서 어떻게든 다른 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아이는 완벽하게 잘 자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착각이었지요.
부정적인 생각만큼 나를 강력하게 끌어들이는 것은 없습니다. 부정할수록 미워할수록, 그것은 나와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벗어날 수 없게 되고 나는 더욱더 고통받게 됩니다.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나의 단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내가 실수를 하면 "그래 괜찮아.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내도 "괜찮아. 화내는 감정도 소중해. 충분히 그럴만했어."라고 생각하고 나를 토닥였습니다. 연습했습니다. 나를 자책하는 것보다, 아이가 나로 인해 잘못될 거라는 생각을 갖는 것보다는 덜 고통스러웠습니다.
나의 단점까지 인정하는 연습을 하면서, 나의 어떤 모습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점점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고통스럽지 않고 편안했습니다. 거북했던 사람들의 칭찬 앞에서 당당하게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나의 단점 혹은 실수가 남들에게 보일까 봐 전전긍긍하지도 않습니다. 제일 큰 변화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해진 것입니다. 아이들이 이유 없이 떼를 써도,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을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거웠던 좋은 엄마의 가면을 벗고,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활짝 웃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화도 덜 내게 되었지요. 되돌아보면, 아이에게 내는 화는 나에게 냈던 화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 오늘의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오늘이 모인 미래의 나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한계, 내가 가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덤덤히 받아들이고 잘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제 나에게 큰 짐과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버려야 하고 벗어나야 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피하고 안 보이는 척했지만 사실, 그것 또한 나입니다. 나를 잘 알면 알 수록 나는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짜 내 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에게만 물었던 질문을 이제 나에게도 합니다. "지금 기분이 어때?", "뭐 먹고 싶어?", "무슨 색깔 좋아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도 못했던 시절, 나의 진짜 꿈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은 당연합니다. 나의 단점을 고치는데 에너지를 쏟으니 매일 지쳐있던 것이 당연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좋은 엄마 가면을 써야 하니 아이들과 진심으로 웃을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합니다. 이제는 나의 에너지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쏟습니다. 나를 아끼게 되니 아이들을 진심으로 아끼게 됩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와 함께 춤을 추는 것과 같습니다. 잘 못 춰도 괜찮습니다. 그저 노래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거지요. 계속 추다 보면 점점 나만의 방식으로 좀 더 편하게 추게 될 겁니다.
모든 육아는 많이 힘듭니다. 육아가 힘들수록 나에게 "잘 못해도 괜찮다"라고 말하길 바랍니다. 우리 사회도 엄마 아빠들에게 "서툴러도 괜찮아요"라고 말해주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지금 육아를 노래에 빗대어 본다면 무엇일까요?(예: 비투비의 아름답고도 아프구나, 워너원의 에너제틱)
육아를 하며 여러분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