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에 대해 종종 생각합니다. 아이 셋을 키우며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내 마음대로 할수 없다"이기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렬한 욕구는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이지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힘든 이유는 상사를 마음대로 할 수 없기때문이고, 다이어트로 힘들어하는 것은 몸무게가 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기때문이고, 시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려운 이유도 내 마음대로 말할 수 없기때문입니다. 우리는 내 삶이 내 마음대로 되길 항상 바랍니다. 의식으로든 무의식으로든.
육아는, 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하루종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과 대면하는 일입니다. 아이에게 "순하다"라는 말을 하지요. 사실 이 말은 엄마 말을 잘 듣는다를 순화한 표현입니다. 엄마가 원하는대로 잘 자고 잘 먹고 친구를 때리지 않고... 등등 엄마가 원하는 것을 많이 들어주는 아이를 "순하다"라고 표현합니다. "순한 아이"의 존재는 인터넷이나 친구의 친구의 아들딸들 ... 등등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일 뿐 직접 체험한 바가 나는 없습니다. 셋째가 낯도 안가리고 잠을 잘 잤는데(우리 아이들 중 유일했고 그러나 그런 시기는 아주 잠깐 이제는..... 더이상 말하지 않겠어요. 눈물 날듯), 그 모습을 보고 친구가 "참 순하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나는 그때 0.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엄마에게 순한 아이는 없지."라고요. 나의 말에 그 친구는(그 친구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아무말 없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이 셋을 키운다는 것은 정말 잘 키우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착착착 키우고 싶은데) 내가 이때동안 만난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보다도 가장 최고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존재 TOP3와 24시간, 몇년을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화가 많이 나는 지점이 그것입니다. 밥 먹으라면 밥 좀 먹고 사이좋게 지내라면 사이좋게 좀 지내고 잠 자라고 하면 잠 좀 자고...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이 기본적인 것조차도 도대체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다. 내 마음대로 안되는 그 존재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존재와 일치한다는 그 지점에서 엄마들은 자아분열을 경험합니다. 낮에는 화내고 밤에는 잠든 애 옆에서 통회의 눈물을 흘린 경험이 없는 엄마는 드물 것입니다.
엄마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책도 읽고 강의도 많이 듣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가 생각하는 방향과 참 다르게 성장합니다. 그 간극이 엄마를 미치게도 만들고 졸도하게도 만듭니다. 수없기 미쳐도 봤다가 졸도도 하게 되면... 그 시간이 쌓이고 쌓여 내공이 쌓입니다. 그래,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구나....를 온 몸으로 체험하다보니 "겸허"라는 덕목이 저절로 생겨있습니다. 스트레스와 소화불량과 불면증과 주름살도 더불어 생겨있는 부작용이 있긴하지만요.
가장 사랑하고 귀한 자식도 내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배우며 이것이 확장됩니다. 내가 할 일은 아이가 잘 자랄 것을 믿어주는 것. 동생 때리지 말라고 어루고 달래고 화내고 회유하고 협박해도 고쳐지지 않을 때, 엄마는 겸허의 덕목이 쌓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구나.... 이것도 이 아이의 삶의 과정임을 믿어줄 수밖에 없게됩니다.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으로 가득한 삶을 살면 겸허와 함께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을 간절하게 찾고 싶어지니까요. 내가 그나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 엄마들이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맥주 한잔하는 것이 바로 그 맛일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맥주 한캔이 생명수처럼 느껴집니다. 육아연차가 쌓이고 내공이 쌓이고 맥주를 마시다 마시다 마시다 보면, 뱃살과 함께 내 안의 간절함이 커져있음을 어느 순간 깨닫습니다. 맥주 말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싶다고. 진짜 나를 만나고 싶다고.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열정적으로 찾게됩니다. 아이 셋이 없는 시간, 나에게 주어진 한정적이지만 우주같이 깊고 무한한 그 시간에 나는 간절하게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엄마가 되고 성숙해지는 것, 엄마가 되고 억척스러워지는 것은 그러해서가 아닐까요.
부모가 되어야 어른이 된다는 말을 아마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 존재들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기기때문이 아닐까요? 말 안듣는 내 자식도 사랑으로 품다보면 엄마이기 이전보다 더 많은 존재를 품게 됩니다. 나보다 화장을 더 잘하는 여중생을 만나도 내 딸이 크면 저렇게 되겠지. 여자친구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남고생을 만나도 내 아들이 크면 저렇게 되겠지... 하게 되면서 다 예뻐보입니다.
엄마로 태어나게 해주어서, 마음의 품을 넓혀줘서, 간절함이 무엇인지를 알려줘서,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어서 우리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난 이것을 배우기 위해 아이 셋을 낳고 키우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