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둘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는 중간방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방학 시작하기 3일전에, 중간방학의 존재를 알았지요. 허허허. 입학설명회때 나눠준 일정에 떡하니 나와있는데도 예사로 넘겨버렸네요. 아무튼 아이들의 일주일간의 중간방학을 어찌 보낼까 걱정이 많을 했습니다. 최근 많이 힘들었거든요. 엄마로서 코치로서 강사로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시기였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 아이 셋과 지낼 방학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런 나를 보는 남편이 아이들을 시댁에 맡기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나를 생각해주는 남편이 고맙고, 아이들을 맡아주신다는 시부모님께도 감사하고... 하지만 아이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엄마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엄마로서 잘하고 싶었습니다.
올해초 일년을 계획하며 나는 2019년 12월 31일에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있습니다. "나는 아이셋을 키우면서도 생기 넘쳤으면 좋겠다. 엄마로서도 강사로서도 빛이 나길 바란다."라고 적었지요. 하지만 아이 셋을 키우는 일은 나의 한계를 매일매일 마주보게 했습니다. 꽉막힌 벽 앞에서 어쩔 줄 몰라 서럽게 눈물 흘리는 날이 많았습니다. 생기는 커녕 숨쉴 기운도 없었지요. 육아에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니 강의도 코칭도 모두 자신이 없었습니다. 실패할까봐 두려웠습니다. 나 때문에 아이들이 잘못될까 무서웠습니다. 두려움과 무서움은 나의 에너지를 더욱 고갈시켰지요. 신년계획과 전혀 다른 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서러웠습니다. 내가 싫고 미웠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사랑하세요! 자신을 믿으세요!! 라는 말을 하기 부끄러웠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신을 믿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깊게 생각해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길 바랍니다. 자존감이 높아지길 바라지요. 그러나 내가 아무것도 아닐 때, 내가 못나보일 때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 힘듭니다. 잘하고 성공하는 나는 받아들이기 쉽지만 그렇지 못한 나를 받아들이는 일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셋째 아이가 몇주전부터 뒤집기를 시작했습니다. 뒤집기는 가능하나 다시 뒤집지 못해 힘들다고 하루종일 징징거렸지요. 그럼 나는 얼른 달려가 등이 바닥에 닿게 뒤집어주었습니다. 그러면 셋째는 다시 뒤집고 울고를 반복했습니다. 나는 셋째의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습니다. 사랑스러웠습니다. 못하고 울어도 사랑스러웠습니다.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왜 나에게는 관대하지 못할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어있는 갓난쟁이를 보면서, 그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미워하거나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뒤집기는 가능하나 되집기를 못하는 아이를 보며 화내거나 그 아이를 탓한 적은 없습니다.
엄마의 역할과 강사와 코치의 역할... 수많은 역할을 하며 힘들어하는 나를, 제대로 사랑해주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힘든지 알아주지 못했습니다. 더 잘해야한다고, 더 노력해야한다고 나를 몰아부쳤습니다. 나도 세 아이의 엄마가 처음입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코치와 강사까지 하는 것은 더욱 처음입니다. 뒤집기가 처음인 우리 셋째처럼 나도 처음입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나임에도 나라는 존재를 바라봐주고 믿어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잎이 피어나게 햇빛을 쬐어주고 물을 주기 위해서는 내 안에 씨앗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것은 씨앗에 물도 주지 않고 햇빛도 쬐어주지 않았으면서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어떤 강사 어떤 코치가 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무기력하고 삶의 의욕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런 나를 안아주려고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씨앗을 품고 무서워서 심지 못하는 나를 가만히 안아주려고 합니다. 지금은 그런 시간이 필요한가봅니다.
시댁에 가있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니 다짜고짜 짜장면을 먹었다고 자랑을 합니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은 없습니다. 서운하지만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바라보며 안아주는 시간을 준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장난감방에 가니, 둘째가 입고 싶다고 했던 발레복이 보입니다. 외출할때마다 입고 싶어했는데 화장실 가기가 불편해 집에서 입자고 해놓고 밀양에 간 둘째입니다. 그 옆에는 첫째 아이가 애지중지하는 터닝메카드가 보입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 자신을 사랑하고 믿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엄마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도 자신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존재만으로 가치있는 사람임을 느끼길 바랍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성장의 원동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