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

by Robin

아이를 재우다 8시반에 잠이 들었습니다. 셋째가 깨서 수유를 한다고 3시반에 깨었어요. 핸드폰을 들여다봅니다. 내가 잠든 7시간 반동안 세상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박보검과 송혜교는 어떻게 되었나, 홍탁집 아들은 정신을 차렸나...를 보다가 핸드폰을 이제 적게 쓰기로 했던 것이 번뜩 떠올라 얼른 집어넣습니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을 때, 내가 겪고 있는 일을 잠시나마 잊고 싶을 때 나는 각성제를 복용하듯 핸드폰을 봅니다.


9시도 되기 전에 잠든 것은 참 오랜만입니다. 내 몸이 많이 피곤했다는 뜻이겠지요. 첫째 둘째가 수족구에 걸리고 백일 안된 셋째가 감기에 걸렸어요. 덩달아 나도 감기가 왔지요. 아이 셋을 데리고 병원 투어를 하고, 아이 셋을 하루종일 보며 아이 셋을 키우는 일이 참 벅찬 일임을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아직 5살, 3살밖에 안된 아이들은 자주 싸우고 자주 웁니다. 아이들의 싸우는 소리, 우는 소리는 엄마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아이들과 나는 아직 마음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기때문이지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순간순간 격한 감정이 올라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반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순간의 감정에 의해 나오는 말은 나와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라고 항상 후회하는 말은 그럴 때 뱉어냈던 말입니다.


순간의 치밀어오르는 감정으로 소리치고 싶고 화내고 싶을 때 ‘이건 내 감정이 아니다. 곧 지나간다.’는 말을 마음 속으로 되뇌이며 심호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첫째 아들이 “엄마 사랑해”라고 말합니다. 예전에, 첫째 아들에게 “엄마가 화나있을 때 사랑한다고 말해줄래? 그럼 엄마 마음이 많이 좋아질 것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아들은 엄마가 조금 기분이 불편해 보이면 “엄마 사랑해”를 애교 넘치게 말합니다. 그런 아들을 보며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엄마가 넓은 마음을 가졌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이들이 우는 소리, 싸우는 소리에도 웃는 엄마였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육아 5년동안 배운 게 있다면 나는 자주 화나고 자주 우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종종 내 화가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에 나의 화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고민했었습니다. 각종 블로그와 육아서적을 읽어보며 엄마의 화를 어떻게 다뤄야할지 찾아봤지요. 애석하게도 그들 중엔 아이 셋을 키운 사람은 없었다는 것, 나보다 심신이 미약하지 않은 사람이 쓴 글은 없었다는 것... 결론은 나에게 맞는 방법은 없었다는 겁니다. 흑... 읽고 나서 죄책감만 잔뜩 쌓였지요.


내가 좋아하는 서천석 선생님은 아이들이 우는 소리에 엄마의 감정이 동요되는 것은 당연하고, 그럴 때 귀에 이어폰을 꼽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어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나는 이어폰으로 노래 듣는 방법이 크게 효과가 있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우는 소리에 엄마의 감정이 동요되는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큰 위로가 됐습니다. 나만 그런게 아냐!! 다들 그래!!


나에게 맞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어쩌겠어요. 나만의 길을 찾아야겠지요. 8시반에 잠든 나를 보며 알았습니다. ‘내가 무척 지쳐있구나. 내가 정말 힘들구나.’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 나만의 길을 찾는 시작점입니다. 내 몸이 지친 줄도 모르고, 나를 돌보지 않는 엄마가 좋은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자기를 아끼지 않는 어른이 되는 걸 바라지 않아요. 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자기를 아끼는 마음입니다. 엄마인 나부터 자신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이 셋을 키우며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아끼는 법인지 계속 찾는 중입니다.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겠지요. 생고생하겠지요. 넘어지고 무릎이 까지고 눈물 흘리겠지요. 나는 기꺼이, 눈물 질질 흘리고 절뚝거리며 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기꺼이 고생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융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고생은 의사도 마술도 필요 없는 치료 마법” 나의 무엇을 치료하기 위해 아이 셋이 왔을까요?

오늘은 핸드폰 대신 힘든 나의 마음을 바라봐주는 날이길 바랍니다. 박보검과 송혜교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나의 삶을 더 궁금해하는 날이길 바랍니다. 아이들에게 내가 먼저 “사랑해”라고 말하며 꼭 안아주는 날이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정신적 유산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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