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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난희 Oct 20. 2021

제비쑥떡

여고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경복궁역에서 만나 서촌 골목을 돌아 인왕산 수성계곡에 가기로 했다. 전날 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계곡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궁리했다. 마침 냉동고에 잠들어 있는 생 옥수수와 쑥떡 한 덩이가 생각났다. 옥수수는 아침에 바로 꺼내 찌면 될 터이고 돌덩이가 되어 있는 쑥떡은 꺼내 놓았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옥수수는 물에 소금과 뉴 슈거를 넣고 삶았다. 쑥떡은 전기밥솥에 넣어 재 가열을 두 번이나 눌러 알맞게 쪘다. 밥솥에 눌어붙지도 않고 덩이째 똑 떨어졌다. 내 고향에서는 쑥 인절미를 쑥떡이라 한다. 쑥떡에 노란 콩가루를 올리고 곱게 단장을 시켰다. 길게 잘라 콩가루에 굴려 주고, 가위로 작게 잘게 잘라서 콩가루 속에 묻었다. 까만 돌덩이 같던 쑥떡이 노란 옷을 입은 쑥 인절미가 되었다. 기분 좋은 소슬한 바람과 함께 찐 옥수수와 쑥 인절미를 등에 지고 집을 나섰다. 

   

한 친구가 며칠 사이 응급실을 두 번이나 들락거렸다고 파리한 얼굴로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다 같이 

"계곡은 안되겠다잉. 여기서 놀자아!" 했다. 

그리하여 수성동 계곡에서 먹으려던 나의 야심 찬 간식거리는 경복궁 옆 늙은 은행나무 아래 벤치에서 먹게 되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여름의 열기는 내 등줄기에 땀을 고이게 했다. 백 팩에 매고 온 뜨끈한 옥수수와 쑥떡이 한몫을 더 했다.     

가방에서 간식거리를 꺼내며 

"얘들아, 따뜻할 때 얼른 먹자"

"와아, 나 옥수수 좋아하는데, 나도, 나도"

안 좋아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쑥떡도 꺼냈다. 아침 든든히 먹고 왔다던 친구는 한 손엔 옥수수, 다른 한 손에 쑥떡을 먹으며 행복해했다. 


"으음 쑥 향이 진하다, 진짜 쫀득쫀득 맛있다. 역시 시골에서 온 것이라 맛있다아." 다들 한 마디씩 했다. 그날 우리는 근처의 TV드라마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 촬영 장소였던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고는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드나드는 은행나무 아래로 다시 돌아왔다. 친구들은 스테이크보다 쑥떡이 훨씬 더 맛있다며 아껴 둔 쑥떡을 다시 꺼내 아끼고 아껴서 먹었다. 콩고물까지 마셨다.  

    

  우리 어머니, 길심씨의 쑥떡은 특별하다. 일반 쑥만 넣어 만든 것이 아니니까. 떡쑥이라고 일명 우리 시골에서는 제비쑥이라고 부르는 쑥을 넣어 쫀득쫀득하고 찰지기가 피자치즈는 저리 가라다. 식으면 탱탱해지고 쫄깃쫄깃해져 식감이 더 좋다. 이렇게 쫄깃한 식감은 제비쑥 덕분이다. 귀여운 노란 꽃을 수줍게 피우는 제비쑥은 잎이 회백색으로 잔털이 부스스하다. 할미꽃을 닮았다. 꽃만 빼면. 땅에 붙어 자라다가 어느 순간 뜯을 수 없을 만큼 성큼 자라 노란 꽃을 뽐낸다. 그 꽃을 보면 한없이 정겹다. 아주 어릴 적엔 제비쑥이 들에 지천이었는데 농약 사용이 잦아지면서부터 농촌 들녘의 논둑, 밭둑도 알게 모르게 오염되어 이제 흔하지는 않다. 길심씨가 누구인가 그녀는 제비쑥을 캐다가는 텃밭에 많이 번식을 시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심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친구들이랑 엄마 쑥떡을 먹었는디 다들 맛있다고 하드만" 

"그래야. 제비쑥을 많이 넣어야 맛있제. 그렇다고 제비쑥만 넣으면 고무처럼 질기당께. 쑥도 쪼끔 넣어야 맛있제. 그라고 꼭 찹쌀로 해야 맛있어. 다들 우리 떡이 맛있다고 하제. 제비쑥 덕분이여. 입 짧은 느그 아버지도 맛있다고 하드만. 작년에는 뒷곁에 제비쑥을 옮겨 심었더니 죽어부럿어야" 

자화자찬 삼매경에 빠진 엄마의 입에서 제비쑥떡 레시피가 끊이지 않고 줄줄 나온다. 

   

엄마의 레시피도 세월과 함께 진화한다. 어린 시절 먹었던 쑥떡은 지금처럼 쫄깃거리지 않았었다. 콩고물 무쳐 접시에 담은 쑥떡 크기도 손바닥만큼 큼지막했다. 지금은 인절미처럼 한 입 크기이다. 최상의 쫄깃거리는 제비쑥과 쑥의 비율도 찾았다. 냉동 보관용 쑥떡 덩이도 못생긴 돌덩이 같았는데 어느 해부터인지 네모 반듯한 두꺼운 타일 같다. 밤낮없이 바쁜 농사일과 남편 봉양에도 불구하고 늘 연구하는 길심씨다. 매사 이리도 해보고, 저리도 해 보며

"사람은 늙어 죽을 때까지 공부하면서 연구해야 하는 것이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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