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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난희 Oct 21. 2021

봄비 속의 부꾸미

봄비 속에 제비쑥 부꾸미가 왔다. 택배 상자를 열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크게 만든  부꾸미가 열 개가 넘는다. 거기에 상추, 취나물, 시금치, 쑥, 부추, 쪽파 등 영암의 봄을 서울로 옮겨 온 듯 봄내음까지 가득 실려 왔다. 병원 진료 차 서울에 왔던 길심씨가 내려간 지 이틀 만이었다. 얼마나 동분서주했을지 안 봐도 훤히 보인다.‘아이고, 우리 엄니를 누가 말리겠어.’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얼른 부꾸미부터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다. 연한 제비쑥 향이 목으로 넘어간다. 한 입 더 베어 먹으니 가운데 몽글몽글한 팥소가 떡과 어우러져 금세 어린 시절 봄비 속으로 달려간다.      


내 유년 시절 길심씨는 봄비가 내리는 날엔 쑥부꾸미를 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부꾸미 지지는 냄새가 굴뚝에 연기 오르듯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음식 만들기를 좋아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사일에도 시간만 나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봄에는 부꾸미, 여름에는 콩국수, 가을에는 햇고구마 튀김, 한가한 겨울에는 아침마다 콩을 삶아 믹서기에 갈아 뜨거운 콩물을 끓여주었다. 일종의 두유였다. 얼마나 고소하고 맛나던지. 이밖에도 많은 간식을 해주었다. 동네 친구들은 집안에 큰 행사나 있을 때 먹었을 음식들을 우리는 자주 먹을 수 있었다. 길심씨의 음식 솜씨와 부지런함 때문이었다.   

  

원래 부꾸미는 찹쌀가루 익반죽하여 동글납작하게 빚어서 식용유를 두른 팬에 지지다가 팥소를 넣고 한 번 접어서 반달 모양으로 지진 것이다. 수수가루를 반죽하여 만들면 수수부꾸미가 되고, 일반쑥을 넣어 만들면 쑥부꾸미, 길심씨처럼 제비쑥을 넣어 만들면 제비쑥 부꾸미가 되는 것이다. 다만 길심씨 부꾸미는 반달 모양은 아니다. 떡을 지지다가 팥소를 넣고 양쪽에서 한 번씩 두 번 접었다. 이것이 길심씨 부꾸미다. 길심씨의 자식에 대한 애정처럼 부꾸미가 크고, 쫀득하고, 팥소가 터질 듯이 배가 불룩하다. 한 개만 먹어도 속이 든든하다.     


딸내미들을 불러서 이것저것 시킬 법도 한데 예나 지금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준비하고 만들었다. 작은 종지에 부은 콩기름에 길쭉하게 자른 무나 당근 토막에 묻혀서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식용유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 기름을 아끼기 위한 방법이었다. 준비한 삶은 제비쑥과 빻은 찹쌀가루를 익반죽 하여 동그랗게 만든 다음 프라이팬에 올린다. 지지직 소리 나는 반죽을 눌러 돌려가며 얇게 편다. 뜨겁지도 않은지 손으로 늘려가며 익힌 다음 뒤집어 한 번 더 익히고 만들어 놓은 팥소를 한 수저 올린다. 이제 양쪽으로 한복 치마 여미듯 양쪽에서 여민다. 완성된 부꾸미를 손으로 집어서 대바구니에 꺼낸다. 부꾸미를 만들 때 어머니 손은 무쇠로 되었나 보다 생각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뜨거운 프라이팬 위의 반죽도 꾹꾹 눌러 펴주고, 뒤집고 또 뒤집고 꺼낼 때도 뜨거운 기색도 없이 들어다 바구니로 옮긴다. 뒤집게도 필요 없었다. 그 손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했을까. 손이 한시도 쉰 적이 없었다. 무뎌지고 두꺼워진 손바닥은 뜨거운 열에도 끄떡없었다.     


점심을 먹고도 부꾸미 한 개를 다 먹는 걸 보더니 남편이 놀란다. 오랜만에 그리운 맛이라 사실은 한 개를 더 먹을 수도 있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남편과 아이들은 맛있다고 하면서도 반쪽으로 만족한다. 작은딸은 부꾸미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는데 이름이 재미있단다.‘부꾸미’라는 이름이 나도 좋다. 그 맛을 알기에 입에 더 달라붙는다. 저녁에는 식구들은 공기에 밥을 담아 먹는데 나는 밥 대신 접시에 부꾸미를 담았다. 부꾸미만 먹으면 분명히 내 머리가 밥을 난 안 먹었다 인식할 것 같아 밥으로 생각하며 반찬과 함께 밥처럼 먹었다. 부꾸미가 탄수화물 덩어리에 기름에 지진 거라 은근히 열량이 높을 것 같은데 너무 맛있어 자꾸만 먹고 싶다. 남편과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음식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추억으로도 먹는 것이니까.      


갑자기 추억 속의 흰 부꾸미가 떠오른다.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시향(시제)을 지낸 날이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책가방을 집에 던져버리고 손수건을 들고 문각으로 내달았다. 집성촌이던 우리 동네는 다 같이 묘소에 모여 윗대 조상님네들 제사를 지내고 나면 문각으로 음식을 가져와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손수건을 들고 문각의 큰 서까래 기둥 옆에 줄을 서서 떡을 받았다. 비닐봉지도 없던 시절이라 손수건을 들고 집을 나선 것이었다. 떡이 떨어지면 혹시 못 받을까 봐 연신 기웃거리며 차례를 기다렸다. 한 다리 건너면 사촌이요, 오촌 당숙이요, 하네(할아버지), 할머니, 온 동네가 친척이라 떡을 못 받은 아이는 없었지만 간식이 귀하던 시절이라 조바심이 났었다. 지금 생각하면 하얀 손수건이 누런색으로 변했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서 나누어준 인절미, 부꾸미 등을 받았다. 제사상에 오른 부꾸미는 하얀색이었다. 치마 말기처럼 잘 말아 붙인 그 속에는 껍질을 벗은 얌전한 동부 앙금이 들어 있었다. 손수건을 들고 친구들과 같이 먹기도 하고 집으로 가져오기도 했었다. 그때 먹었던 인절미, 부꾸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름까지 이쁜 부꾸미는 더 생각이 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잠깐의 보석 같은 휴식시간에 부꾸미를 지져주는 엄마가 좋았다. 한가해 보여서 좋았고, 옆에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쑥이 나오는 철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쑥버무리가 생각난다지만 나는 부꾸미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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