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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인 척한 고냥이 Feb 20. 2022

귀부 와인

귀할 귀(貴), 썩을 부(腐), 귀부(貴腐) 와인.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귀하게 썩은 와인이라는 뜻이다. 아니, 썩었으면 썩었지 귀하게 썩은 건 또 뭐란 말인가. 물론 음식 중에도 푹 삭혔거나 부패에 가깝게 숙성한 음식을 진미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가깝게는 홍어회가 그렇고 멀게는 사르데냐 섬에서 파리 유충(!)과 함께 숙성시키는 치즈인 카수 마르주(Casu Marzu), 북극에 사는 이누이트 족이 바다표범과 새를 이용해 만들어 겨울 별미로 즐기는 키비악(Kiviak) 같은 음식도 있다. (독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귀부 와인은 이런 것들과는 경향이 좀 다르다. 귀부 와인은 꿀처럼 달콤하고 꿈결 같이 부드러우며, 복합적인 풍미를 갖췄다. 어느 누구나 납득할 만한 맛과 품질, 품격을 갖췄다. 그런 만큼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서 '귀하게 썩었다'는 표현이 사용된 것 아닐까. 


[ 귀부화 된 포도 사진 (출처: bordeaux.com) ]

사실 귀부 와인에서 썩은 것은 와인이 아니라 포도다. 진짜로 썩은 건 아니고 마치 썩은 것처럼 곰팡이가 피고 심하게 쪼그라든 것이다. 영어로는 노블 롯(noble rot), 프랑스어로는 푸리튀르 노블(pourriture noble)이라고 한다. 이렇게 포도가 쪼그라드는 건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라는 일종의 회색 곰팡이 때문이다. 이 곰팡이가 포도에 달라붙어 껍질에 미세한 구멍을 만들면 수분이 증발하면서 포도의 당분이 농축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균의 작용이다. 보트리티스가 포도에 번식하면서 특유의 풍미가 생성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스위트 와인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와인이 탄생한다. 그냥 달기만 한 와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보트리티스가 번식하기 위해서는 습한 환경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포도가 채 다 익지 않은 상태에서 보트리티스의 공격을 받거나, 습한 날씨가 필요 이상 지속되면 포도는 그저 썩어버릴 수도 있다. 포도가 알맞게 익었을 때 습한 날씨가 조성되어 보트리티스가 적절히 번식하고, 이후 건조한 날씨와 충분한 햇볕으로 포도가 부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쪼그라들어야 귀부 와인 양조에 적절한 포도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되는 지역이 흔치 않다는 데 있다. 이런 환경은 보통 따뜻하고 느리게 흐르는 강의 본류에 빠르고 차가운 지류가 합류하는 지역에서 주로 발생한다. 대표적인 예가 주류인 가론(Garonne) 강에 지류인 시론(Ciron) 강이 합류하는 보르도의 소테른(Sauternes) 지역이다. 이와 유사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그때그때 변화하는 날씨의 우연에 기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수확기 근처에 비가 내린 후 건조한 날씨가 쭉 이어지는 경우다. 수확기에 비가 예상되는 경우 포도밭 관리자들은 보통 수확을 서두르지만, 귀부 와인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일부 포도를 남겨 두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최고의 디저트 와인을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 포도로나 귀부와인을 만들 수는 없다. 일단 레드 품종으로는 귀부 와인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껍질의 페놀 성분이 보트리티스와 반응해 좋지 않은 풍미가 생성될 수 있고, 컬러 또한 망가지기 때문이다. 귀부화가 쉽게 되는 포도는 주로 껍질이 얇고 송이가 촘촘하게 열리는 화이트 품종이다. 포도가 촘촘하면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보트리티스가 번식하기 쉽고, 껍질이 얇으면 쉽게 구멍이 뚫려 잘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세미용(Semillom) 품종이 대표적이며,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슈냉 블랑(Chenin Blanc), 리슬링(Riesling), 게부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 푸르민트(Furmint)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품종들이라고 해도 귀부 와인을 만드는 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빈티지에 따라, 개별 포도밭의 미세 기후에 따라 생산량이나 품질의 편차가 크다. 게다가 포도알마다 보트리티스의 영향을 받는 정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여러 번에 걸쳐 적당한 포도알만을 세심하게 골라 수확해야 한다. 게다가 포도는 쪼그라들었기 때문에 일반 포도에 비해 동일 면적 당 수확량이 10~20%에 불과하다. 와인 생산량 또한 현저히 적어질 수밖에 없다. 그뿐인가. 보트리티스의 영향과 높은 당분 함량 때문에 발효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발효 기간이 길고 불안정하다. 이렇듯 만들기 어렵고 생산량 또한 적기 때문에 '귀하다'는 표현이 붙은 것이다.


흔히 3대 귀부 와인으로 프랑스의 소테른(Sauternes), 헝가리의 토카이(Tokaji), 독일의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 TBA)를 꼽는다. 하지만 이는 명확하지 않은 구분이다. 토카이의 당도 등급은 다양하며 최근에는 드라이 와인도 나온다. 소테른에도 그랑 크뤼부터 대중적인 소테른까지 다양한 와인이 있다. 반대로 독일에는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 외에도 일부 베렌아우스레제(Beerenauslese), 아우스레제(Auslese) 등도 보트리티스의 영향을 받은 포도를 일부 사용해 만드는 경우가 있으며, 그중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는 극소량만 생산하는 슈퍼 프리미엄 와인이다. 이런 식으로 일반화하기에는 카테고리 기준이 잘 안 맞는다는 얘기다. 게다가 프랑스의 루아르(Loire), 알자스(Alsace), 오스트리아의 노이지들러 호수(Neusiedler See) 부근 등 다른 지역 중에도 수준 높은 귀부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 많다. 그러니 3대 귀부 와인을 따지는 것보다는 자신의 취향과 상황에 맞는 귀부 와인을 고르는 것이 좋다. 


[ 로크포르 치즈 ]

귀부 와인에는 무엇을 곁들이는 것이 좋을까. 가장 클래식한 페어링은 블루 치즈 계열이다. 로크포르(Roquefort) 치즈와 소테른을 마시는 것이 대표적이다. 거위 간 요리인 푸아 그라도 클래식 페어링이다. 그러나 최근엔 동물 학대 이슈 등으로 꺼리는 경우도 많다. 어쨌거나 전통적인 페어링의 경우 특유의 감칠맛과 짭조름한 풍미를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른바 '단짠 조합'이다. 여기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짭짤한 맛이 강한 치즈나 햄을 사용한 샤퀴테리, 솔티드 캐러멜 등 단짠 계열 디저트 들과 전반적으로 좋은 매칭을 보인다. 주의할 점은 디저트의 당도가 귀부 와인의 당도를 넘지 않는 게 좋다는 것. 디저트가 아니라 식사와도 곁들일 수 있다. 트러플 오일을 곁들인 감자튀김과 로스트 치킨은 샤토 디켐의 브랜드 매니저가 추천한 조합이다. 일반적으로 단맛은 매운맛을 완화시켜 주기 때문에 매콤한 스파이스를 많이 쓰는 아시안 푸드와 함께 마셔도 의외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귀부 와인만 한 잔 따라 놓고 겹겹이 피어나는 풍미와 끝없이 이어지는 단맛을 음미하는 것도 좋겠다.



소테른(Sauternes)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귀부 와인은 단연코 소테른이다. 세미용, 소비뇽 블랑, 그리고 약간의 뮈스카델(Muscadelle) 품종을 사용해 명성 높은 귀부 와인을 만든다. 생산 지역은 보르도 남쪽으로 가론 강과 합류하는 시론 강을 사이에 두고 서쪽은 바르삭(Barsac), 동쪽은 소테른으로 크게 구분된다. 바르삭 지구에서 생산하는 귀부 와인은 AOP 명칭을 소테른 혹은 바르삭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동쪽의 소테른 지구는 소테른, 프레이냑(Preignac), 파르그(Fargues), 봄므(Bomme) 등 네 마을로 나뉘지만, AOP 명칭은 소테른 만 사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바르삭 지구의 와인이 소테른에 비해 조금 더 신선한 느낌이 두드러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쨌거나 두 지구 모두 시론 강에서 발생하는 물안개에 의해 보트리티스가 확산되고 귀부화가 진행된다.


소테른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1855년 제정된 등급 분류다. 보르도 등급분류는 보통 메독(Médoc) 지역의 레드 와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유명하지만, 실은 소테른 부근의 스위트 와인도 별도로 평가됐다. 당시 21개(현재는 분리되어 27개)의 샤토가 특 1급, 1급, 2급 등 3개 등급으로 분류됐는데, 샤토 디켐만 특 1급(Premier Cru Supérieur)의 영예를 안았다. 이는 1855년 등급을 받은 전체 샤토 중 유일무이한 것이다. 소위 '5대 샤토'라고 불리는 레드 와인들도 그저 1급일 뿐, 특(Supérieur)이라는 수식어를 얻진 못했다. 그만큼 샤토 디켐이 특별하게 취급되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재 소테른 와인의 인기는 그리 신통치 않다. 단맛을 선호하지 않는 최근의 트렌드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일단 '달다'는 말에 손사래부터 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귀부 와인의 달콤함과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들큼함(sugary)은 완전히 다르다. 신맛이 동반돼 깔끔하면서도 다층적이고 복잡한 풍미를 드러내는 소테른은 달콤한 맛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와인이다. 한 번 마셔 보면 그 매력을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소테른 주변 지역에서도 귀부 와인을 생산한다. 세론(Cérons)을 비롯해 루피악(Loupiac), 카디약(Cadillac), 생트-크루아-뒤-몽(Sainte-Croix-du-Mont) 등인데 모두 소테른에 비해 풍미의 밀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가성비가 좋아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지역이다. 



루아르(Loire), 알자스(Alsace)

루아르의 스위트 와인 산지는 중심부인 앙주(Anjou) 부근에 모여 있다. 모두 슈냉 블랑 품종만 100% 사용해 개성 넘치는 와인을 만든다. 루아르 강과 합류하는 지류인 레이옹(Layon) 강 주변에 길게 펼쳐진 꼬또 뒤 레이옹(Coteaux du Layon)은 보트리티스의 영향을 받기에 좋은 입지다. 게다가 남서향 언덕은 일조량이 좋으며 바람이 포도의 당분과 풍미를 농축시키기 때문에 질 좋은 귀부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특히 독립 AOP인 까르 드 숌 그랑 크뤼(Quarts de Chaume Grand Cru)와 본조(Bonnezeaux)의 귀부 와인은 세계 수준의 품질을 자랑한다. 문제는 까르 드 숌 그랑 크뤼의 면적은 30 헥타르, 본조의 면적은 80헥타르로 매우 작다는 데 있다.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데다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 다행히도 일반적인 꼬또 뒤 레이옹의 가성비는 매우 훌륭하다. 풍미의 밀도는 조금 떨어지는 대신 깔끔한 여운이 훌륭하며, 숙성 잠재력 또한 갖추고 있다. 꼬또 뒤 레이옹 북쪽에 위치한 꼬또 드 로방스(Coteaux de l'Aubance)의 가격은 더욱 저렴하지만, 귀부화 된 포도를 사용하지 않는 와인들도 있으므로 잘 확인할 필요가 있다. 


동쪽으로 독일과 경계를 이루는 알자스에는 두 종류의 스위트 와인이 있다. 방당주 타르디브(Vendange Tardive)와 셀렉시옹 드 그랭 노블(Sélection de grains nobles)이다. 둘 다 알자스에서 고급 품종으로 받아들여지는 리슬링, 게부르츠트라미너, 피노 그리(Pinot Gris), 뮈스카(Muscat) 품종으로 만들어야 하며 품종 별로 최저 당도가 정해져 있다. 방당주 타르디브는 말 그대로 늦수확해 당도가 높은 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때문에 귀부화 된 포도보다는 과숙한 포도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셀렉시옹 드 그랭 노블은 그냥 수확을 늦춘 과숙 포도만 가지고서는 기준 당도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귀부화 된 포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게부르츠트라미너와 피노 그리는 리터 당 306g(혹은 잠재 알코올 18.2%), 리슬링과 뮈스카는 276g(혹은 잠재 알코올 16.4%)를 넘어서야 하는데, 이는 귀부화 된 포도를 일부라도 사용하지 않고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당도이기 때문이다. 이름부터 '좋은 포도알을 골라 딴다'는 의미이니, 독일의 베렌아우스레제(Beerenauslese)와 유사한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셀렉시옹 드 그랑 노블 쪽이 조금 더 알코올 함량은 높고 단맛은 살짝 낮다. 특히 게부르츠트라미너로 만든 셀렉시옹 드 그랑 노블은 이국적인 향과 함께 놀랍도록 깔끔하고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는 개성적인 와인으로 꼭 한 번 마셔 보길 권한다.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화이트 와인 카테고리 중 당 함량이 가장 높은 등급을 의미한다. 단어 자체가 너무 길기 때문에 TBA라는 약자로 자주 사용되는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는 의미 자체가 '건조된 포도알만 골라서 수확한다'는 뜻인 만큼 귀부화 된 포도만 세심하게 골라 사용한다. 당도 기준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다. 생산 지역 및 품종에 따라 기준이 조금 다르지만 최소 150 왹슬레(Oechsle)를 넘어야 하는데, 이는 보통 잠재 알코올 20%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게다가 수준급 생산자들의 와인 중에는 이 최소 당도 기준을 훌쩍 넘어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완성된 와인의 알코올 함량은 소테른이나 토카이 등 다른 귀부와인들보다 훨씬 낮다. 10%를 넘는 경우가 극히 드물며, 6~7% 정도인 경우도 많아 다른 귀부 와인의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신맛 또한 강하기 때문에 꿀처럼 진한 단맛과 절묘한 균형을 이루어 훨씬 신선하고 가볍게 느껴진다. 때문에 여러 잔을 마셔도 부담이 없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규정된 와인 산지라면 어디서든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를 만들 수 있다. 유명한 곳을 꼽자면 독일은 모젤(Mosel), 라인가우(Rheingau) 등이지만 이외의 산지에서도 최고급 와인들이 많이 나온다. 오스트리아는 부르겐란트(Burgenland)의 노이지들러 호수 부근에서 수준급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를 생산한다. 리슬링 품종이 가장 유명하지만, 쇼이레베(Scheurebe), 샤르도네(Chardonnay), 게부르츠트라미너, 그뤼너 펠트리너(Grüner Veltliner) 등 다른 품종들도 많이 사용한다. 어쨌거나 모두 귀중하고 값비싼 와인들이다. 자연의 도움이 없이는 만들 수 없으며, 노동력 또한 많이 들기 때문이다. 여러 잔 마시기에 부담 없는 맛임은 틀림없지만, 주머니 사정에는 큰 부담을 주는 와인인 것 또한 틀림없다. 그나마 오스트리아로 눈을 돌리면 아직 괜찮은 가격대의 와인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다.



토카이(Tokaji)

토카이(Tokaji)는 헝가리 동북쪽에 위치한 와인 산지 토카이(Tokaj)에서 만드는 와인이다. 자세히 봐야 한다. 지명에는 i가 없고, 와인 이름에는 i가 있다. 본류인 티서(Tisza) 강과 지류인 보드로크(Bodrog) 강이 합류하며 안개를 일으키기 때문에 보트리티스의 영향을 받기 쉬워 예로부터 귀부 와인이 유명했다. 한 마디로 귀부 와인 원조집인 셈이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토카이를 맛보고 '와인의 왕, 왕의 와인'이라고 했을 정도. 때문에 예전에는 토카이라고 하면 의례 스위트 와인을 의미했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좀 바뀌었다. 드라이한 토카이와 스파클링 와인이 활발하게 생산되며 전면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스위트 토카이는 토카이 에센시아(Tokaj Eszencia), 토카이 아수(Tokaj Aszú), 사모로드니(Szamorodni)로 구분한다. 이 중 사모로드니는 귀부 포도가 아닌 늦수확한 포도로 만들기 때문에 귀부 와인이 아니다. 토카이 에센시아는 귀부화 된 포도만 사용해서 만든 와인인데, 당도가 너무 높아 거의 발효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알코올 함량은 2~5%에 불과하다. 엄청나게 밀도 높은 풍미와 진한 단맛이 벨벳 같은 질감에 실려 오는 이 와인은 종종 천상의 음료에 비견된다. 매우 희소하고 값도 비싸기 때문에 만나기 어렵다. 


토카이 귀부 와인의 대표주자는 토카이 아수(Aszú)다. 아수는 헝가리어로 귀부화 된 포도를 의미하므로, 토카이 아수는 귀부 포도를 사용한 토카이 와인이라는 뜻이다. 당도 등급으로 푸토뇨스(Puttonyos)를 사용하는데, 과거에는 3~6 푸토뇨스로 나뉘다가 2014년부터 3, 4 푸토뇨스는 제외되고 5~6 푸토뇨스만 남았다. 푸토뇨스는 원래 귀부 포도를 담는 바구니를 의미하는데, 이 바구니가 당도 등급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당도가 높은 귀부 포도는 발효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귀부화 된 포도를 으깬 후 일반 드라이 와인과 섞어 발효하면서 단맛과 풍미를 추출했다. 보통 푸토뇨스에 대략 20리터 정도의 귀부 포도를 담을 수 있는데, 이 포도를 140리터 발효통에 몇 번 넣었는지를 표시하던 것이 등급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5 푸토뇨스라면 140리터 발효통에 귀부 포도 5 바구니(100리터)에 일반 와인이 40리터 정도 함께 발효되는 셈이다. 이런 독특한 양조 방식 덕분에 귀부 포도에서 폴리페놀계 화합물이 충분히 추출되고, 토카이 아수만의 촘촘한 질감과 독특한 풍미가 형성된다고 한다. 요즘은 실제 바구니를 이용하지는 않고 해당 기준에 맞는 리터 당 잔당 함량으로 등급을 나눈다. 주요 품종은 푸르민트(Furmint), 하르슬레벨루(Hárslevelű)이며, 뮈스카 오토넬(Muscat Ottonel), 제타(Zéta), 카바르(Kabar) 등도 일부 사용한다. 



기타 생산 지역

보통 귀부 와인 생산지는 서늘하면서 수확 철에 습한 날씨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건조한 지역에서도 귀부 와인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한정된 지역에 적용되는 미세기후(microclimate) 때문인데, 노블 원(Noble One)을 생산하는 호주 뉴 사우스 웨일스의 리베리나(Riverina) 같은 지역이 대표적인 예다. 이외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확 철에 비가 온 후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는 경우에도 귀부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혹은 배양한 보트리티스를 수확철 포도에 살포해 인위적으로 귀부화를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자연에 의존하는 방법이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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