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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초 Joe Cho Feb 15. 2024

미스터 초밥왕이 만들어준 스시

2018년 1월 홋카이도 로드트립 ep.2

한겨울 삿포로 시내 도롯가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밤새 제설차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쌓아 놓은 눈이다. 덕분에 아침 출근길이 원활해 보였다. 본격적인 로드트립을 위해 우선 렌터카부터 빌렸다. 든든한 길동무가 되어줄 녀석은 혼다 피트. 작지만 나름 네바퀴굴림에 윈터 타이어까지 끼워져 있었다. 이 차를 타고 폭설을 뚫고 오호츠크해와 맞닿아 있는 시레토코까지 다녀왔다.


렌터카의 운전대를 잡고 첫 번째로 향한 곳은 삿포로에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오타루였다. 오타루는 홋카이도 개척 시대 때 바다 가까이에 탄광이 있어서 과거에 나름 큰 도시였다. 지금은 삿포로의 베드타운과 위성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보통 삿포로에 머물다 하루 정도 시간을 내서 둘러보는 소도시다. 우리나라에는 영화 <러브레터>와 조성모 뮤직비디오 <가시나무>의 촬영지로 많이 알려졌었다.


하지만 나에겐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배경으로 익숙하다. 원작의 제목은 <쇼타의 초밥, 将太の寿司>이다. 이 만화를 안 본 이들도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제목은 알 정도로 1990년대에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 지금도 가끔 보면 흥미진진하다. 이 만화를 보고 나면 꼭 초밥이 당긴다. <슬램덩크> 보고 나면 농구가 당기듯.


오타루엔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데라사와 다이스케가 작품의 영감을 얻은 초밥집이 있다. 바로 '마사즈시'라는 식당이다. 작품의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기보다 이곳에서 초밥을 먹고 오타루의 초밥 거리를 상상하면서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마사즈시는 2018년 방문했을 당시 80년이 됐었다. 지금은 창업자 나카무라의 두 손자가 가게를 경영하고 있다. 신선한 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수산물 유통점도 직접 운영 중이다. 모든 식재료는 오타루와 삿포로의 시장에서 한 번에 공급 중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어업 수역 규제 때문에 스시 업계도 큰 타격을 입었었다. 당시 오타루는 해산물이 풍부했지만, 그 자원을 잘 활용하질 못했다. 마사즈시의 2대 사장은 생각을 바꾸어 초밥의 대중화를 꾀했다. 단골손님을 만들기 시작했고, 메뉴와 가격을 보기 좋게 꾸몄다. 그러자 건물의 높이도 높아졌다. 물고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창업주의 신념에 따라 지금도 물고기 공양 행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 오타루 초밥집 거리 위원회를 만들어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 게다가 사내 스시 기술 대회 등 자체 프로모션도 진행 중이다. 마사즈시의 이러한 노력은 이 지역의 스시 대중화를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오타루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본점 입구를 보자 벌써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당시 이곳 외에도 오타루 운하 근처와 도쿄 긴자, 도쿄 신주쿠 타임스 스퀘어에도 분점을 운영 중이었다. 삼대째 가업을 이으면서 분점도 내고 건물도 증축하면서 계속 유명해지는 중이었다. 건물 안쪽 좁은 길을 따라 입구에 들어서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돼 있어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1층은 바로만 구성돼 있고, 2~4층은 연회장과 홀이 마련돼 있다.


식당 안은 꽤 조용하다 못해 고즈넉했다. 스시를 만드는 장인들의 움직임만 분주했다. 한국어로 적힌 메뉴판이 있어 주문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추천 메뉴인 4,320엔짜리 세트를 주문했다. 영롱한 빛깔을 뽐내는 스시 10개 모둠 세트였다. 서빙하는 스태프는 사진을 찍어 소셜 네트워크 계정에 올려주면 스시 하나를 더 준다고도 했다. 주방장은 캐나다 근해에서 잡은 참치와 특대 작약새우를 추천해주었다.


마사즈시의 '미스터 초밥왕'이 만든 스시의 맛은, 당연히 맛있었다. 그런데 맛이 기차게 있다거나 독특하다거나 그렇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그냥 평이하게 맛있는 정도였다. 맛이 그 어떤 스시보다 탁월하다기보다 장사를 잘한 것 같다. 작은 성게알 덮밥도 맛있었다. 사실 초밥 하나에 4,000~5,000원꼴이라고 생각하고 하나씩 천천히 음미하면 어떤 걸 먹어도 맛있다. 가격이 비싸니까 저절로 거부할 수 없이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어야 했다. 특히, 소고기 같은 참치 초밥의 맛은 아직도 혀와 뇌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당시 환율로 밥값이 거의 4만 5,000원인데 맛은 당연히 있다. 하지만 이 돈이면 웬만한 회전초밥집에서 배불리 먹을 수도 있다. 솔직히 다 먹고 나니 그런 아쉬움이 들긴 했다. 그래도 살면서 한 번은, 아니 몇 번은 유명한 식당에서 비싼 음식도 먹어봐야 하지 않을까? 유명세라는 비싼 세금을 치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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