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함께 살면 좋은 점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좋은 점은 단연코 경제적인 부분이다. 혼자 살면 모든 것이 더 좋을 줄 알았지만, 그건 나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독립했을 때 처음엔 정말 행복했다. 내 공간을 꾸밀 수 있다는 설렘에 이불은 최고급으로, 거실에 둘 러그는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맞췄다. 소파도 마음에 꼭 드는 디자인으로 장만했는데, 현실은 소파 위에 드러누울 여유도 없이 매일 출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출 이자를 생각하면, 집에서 몇 분이라도 더 쉬기보다는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이 더 컸다.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은행 계좌에 돈이 들어오자마자 빠져나가는 이자에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대출 이자라는 녀석, 처음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낮은 금리 덕분에 처음에는 좋아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금리가 두 배로 뛰면서 장점이 무색해졌다. 그때부터는 한 달 한 달이 살얼음판이었다. 통신비, 관리비, 식비 등등, 이런저런 고정 지출이 생각보다 많아졌고, 결국 따로 돈을 아낀다고 약속도 줄였다. 혼자 먹는 밥이 맛이 있을 리 없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세상 맛있는 배달 음식도 쓸쓸한 혼밥이 되니 그리 맛있지 않았다. OTT 이용료나 휴대폰 요금도 가족과 여럿이 묶어서 내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사실을 그때야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러나 경제적인 부담만이 아니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외로움이었다. 혼자 사는 삶이 자유롭고 멋질 거라고 믿었지만, 그건 외로움을 덜 타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혼자 살면서 외로움에 몸서리를 친 에피소드가 한둘이 아니다. 어떤 날은 집에 들어가는 길이 유난히 서글펐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문을 열면 아무도 나를 맞이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현관을 열었을 때 반겨주는 사람 없이 텅 빈 집에 들어가는 그 공허함이란… 하루 종일 사람들과 부딪치며 일했어도, 집에 오면 갑자기 뼛속까지 한기가 찾아왔다. 집은 편해야 하는데, 나에게는 점점 더 외로운 공간이 되었다.
금요일 밤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주말에 친구들은 하나둘 약속이 있거나, 연애를 하느라 바빴다. 나는 약속 없는 주말이 다가올 때마다 두려웠다. 금요일부터 이미 마음이 쓸쓸해졌다. “혼자라도 멋지게 보내자”며 와인을 꺼내 들고 혼술을 해봤지만, 두 잔 째부터는 알코올이 오히려 외로움을 부추겼다. 혼자 취해 울컥하기도 했고, 결국 술에 힘입어 친구들에게 외로움을 호소하는 톡을 보낸 적도 많다. 홀로 한참을 침대에 뻗어 있었던 그 밤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결국 돈과 외로움이 나를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지금, 만족도가 생각보다 꽤 높다. (물론, 부모님께도 한번 여쭤봐야겠지만.) 아침에 출근할 때 방문 너머로 누군가 자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는 게, 퇴근 후 현관에 다른 사람의 신발이 놓여 있다는 게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된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이렇게 고맙게 느껴질 줄 몰랐다. 가끔 부모님이 하시는 잔소리도 반갑게 들린다. “또 늦게 들어왔네?” 하는 말이 이제는 그리 싫지 않다. 누군가 나를 걱정해 주고,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이 이토록 큰 위로가 될 줄이야.
지금은 주말에 따로 밥 먹을 사람을 찾지 않아도 되고, 금요일 밤 혼술로 외로움을 달래지 않아도 된다. 부모님이 내 옆에 계시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된다. 사람들은 종종 “혼자 사는 게 더 자유롭지 않냐”라고 묻지만, 나는 이제 그 자유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외로움보다 자유가 더 중요한 반면, 나 같은 사람에게는 가족의 온기가 더 큰 위로가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밖에서 먹는 음식이 “집밥 같다”라고 좋아하고, 집밥이 “외식 같아”야 칭찬한다고. 멋진 풍경을 보면 “그림 같다”라고 말하고, 그림을 보면 “진짜 같다”라고 감탄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것일까? 내가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 이유도 비슷한 마음에서 온 것 같다. 혼자 사는 동안 놓쳤던 소소한 일상들이 돌아왔을 때, 나는 비로소 따뜻함과 안정을 되찾았다. 부디 나의 주인댁 부부인 부모님도 내가 옆에 있어 그렇게 느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