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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 Oct 27. 2024

리모컨 쟁탈전의 끝

거실을 둘러싼 눈치게임






우리 집 거실은 한때 격렬한 채널 쟁탈의 전장이었다.



TV는 단 하나, 소파도 하나. 엄마, 아빠, 그리고 막내딸인 내가 각자 원하는 프로그램을 보려다 보니 늘 눈치 싸움이 치열했다. 엄마는 막장 드라마의 광팬이었다. 나 역시 드라마를 보긴 하지만 온갖 배신과 불륜 살인까지 등장하는 아침 드라마에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도대체 이걸 왜 보는 걸까...' 싶지만, 그건 엄마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엄마는 내가 즐겨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나는 솔로'나 '하트 시그널' 등의 연애 리얼리티부터 '일박이일'이나 '나 혼자 산다' 등의 리얼리티를 좋아하지만 나와 함께 TV를 보는 엄마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다. 엄마의 질문이 주로 "쟤는 왜 저러는 거니?" "저기서 누가 누굴 선택해야 하는 거야?" 등인 걸 보면 그녀는 아마도 '리얼리티 바이브'를 이해하지 못했던 게 분명하다.



한편 아빠는 주로 뉴스와 역사 프로그램을 즐기셨다. 그는 특히 현대사에 빠삭한데, 그건 그가 우리는 미처 모르는 피 튀겼던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 중심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아빠는 박정O와 전두O 등의 정치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흥분하셨는데 나는 그럴 때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런데 이런 TV 전쟁이 갑자기 끝나버렸다. 어느 날부터인가 거실에 이상한 평화가 찾아왔다. 그 이유는 바로 유튜브와 넷플릭스 때문이었다. 아빠는 유튜브에서 자신의 맞춤형 역사 채널을 보느라 바쁘고, 엄마는 스마트폰으로 드라마 몰아보기를 즐기신다. 나는 내 방에 틀어박혀 넷플릭스에서 예능을 한 번에 정주행 한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거실에서 벌어지던 신경전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갑자기 찾아온 이 평화가 섭섭하다. 예전엔 채널을 차지하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면서도 나름의 대화가 있었다. 엄마의 드라마를 보면서 “엄마, 진짜 이런 게 재밌어?” 하고 놀리기도 하고, 아빠가 고리타분한 역사를 설명하실 때는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왜 그러세요~”라며 장난도 쳤다. 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예능을 보며 “요즘 애들은 참 별 걸 다 한다...” 며 끌끌 혀를 차시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TV 한 대를 사이에 두고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가족 간 눈치싸움 속에도 소소한 정과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매체는 단순한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적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서비스는 사용자로 하여금 상대방과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멀어지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자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는 동안, 우리 가족은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다른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스트리밍은 우리 집 식사 시간도 바꿨다. 예전에는 식탁에서 나누는 대화가 많았는데, 요즘은 엄마가 부를 때조차 우리는 "잠깐만, 이거 다 보고 갈게!"라고 말하며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특히 아빠는 나보다 더 하다. 그는 정말 '유튜브 광'인데 하루 일하는 시간 외에 대부분을 유튜브 보는데 할애한다. 심지어 식사 시간에도 휴대폰에 빠져있어 엄마의 잔소리 폭격을 듣는다. "얘들처럼 밥 먹으면서 무슨 유튜브에욧!!"



심리학자 마샬 맥루한은 그의 저서를 통해 미디어의 발전이 인간의 감각과 인식을 변화시키며, 이는 사회적 상호작용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만 해도 확실히 예전보다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안부는 주로 sns로 묻고 감정 또한 이모티 콘 하나로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는가? 그건 더더욱 아니다. 집에만 오면 또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가족끼리 보낼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편리함과 개별화가 가져온 단절은 우리가 서로 더 깊이 연결되지 못하게 하는 벽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사용하는 매체는 단순한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적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서비스는 사용자로 하여금 상대방과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멀어지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자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는 동안, 우리 가족은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다른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시끌벅적한 거실이 그립다. 서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두고 티격태격하면서도, 그 안에는 나름의 따뜻함이 있었다. 엄마의 드라마를 놀리던 장난스러운 대화, 아빠의 역사 강의에 지쳐 도망치던 순간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예능을 보며 들려오던 아빠의 투덜거림까지. 그 모든 순간은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소통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시끄럽고 어수선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각자 스마트폰에 고개를 묻고 있는 대신, TV 한 대를 두고 웃고 다투며 어설프게 연결되어 이는 가족이 되길 꿈꾼다.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자체가 애정이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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