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반항해 본 건 딱 한 번이었다. 중 2 때 친구 따라 가출을 시도했던 것.
그마저 현관을 나서기도 전 오빠에게 붙잡혀서 미수에 그치고 말았지만. 엄마는 늘 내가 알아서 컸다고 했다. 굳이 잔소리하고 억지로 하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잘했다고. 생각해 보니 부모님은 나에게 한 번도 뭘 하라고 시킨 적이 없다. 다니기 싫은 학원을 억지로 다니게 하거나 공부를 억지로 시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내가 인생 최대 반항을 하고 있다. 부모님이 하라는 결혼도 안 하고 이 나이에도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 '결혼한 가정', '독립한 1인 가구' 보통 이것이 요즘 사회에서 말하는 가정의 가장 흔한 형태다. 그런데 나는 남들이 말하는 ‘흔히들’의 범주에서 벗어나 은퇴가 가까운 노부부를 모시고 사는 미혼 자녀다.
언제부터 남들이 모두 해야 하는 걸 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시험, 수행평가 등 공통의 과제를 할당받고 그걸 제대로 끝내지 못한 사람은 이상한 취급을 받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길을 가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일이 정신적으로 껄끄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은 아마 훨씬 전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흔히들' 범주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 아닐까. 들어가는 것만으로 자기 증명이 어느 정도 끝나니까.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아이큐를 인정받고 대기업 직원이 되면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듯, 우리는 끊임없이 정상 범주에 들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써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풀장에서 아예 멀어지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더 편하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해’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해’
그때는 이 말이 전부 사실인 줄 알고 살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 가도 떡이 나온다’는 말을 신봉했고 그래서 그들이 하는 말을 잘 들으려 노력하며 살아왔다. 나는 너무 어렸고 세상은 두려운 곳이었으며 이제껏 이뤄온 걸 잃을까 무서웠으니.
그런데 살아보니 이런 말들이 꼭 다 맞는 건 아니었다. 안정적인 직장은 정말 안전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능력 있는 남자는 돈 버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거의 없더라니까. 결국 인간이란 자기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걸 왜 그때는 왜 몰랐던 걸까?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렇게 모범생만은 아니었다. 작정하고 비뚤게 나간 적은 없지만 나름의 오기 같은 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의 기대가 싫어서 일부러 시험을 망친 적도 있고 대학시절 친구들이 대기업이나 공무원을 준비할 때 잡지사에 들어가서 온갖 고생을 다 했다.
엄마는 이런 날 '모범 청개구리'라고 불렀다. 얘가 모범생인 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순간 꼭 삐딱선을 탄다며. 그러고 보면 나의 청개구리 기질은 어쩌면 예견되어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심부름은 죽어도 안 하고 설날엔 세배하기 싫다고 하루 종일 숨어 버렸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후로 현실에 순응하는 법을 배웠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결국 남들의 기준을 따랐다. 잡지사를 그만두고 결국 안정적인 직장을 택했고 미지의 길을 골라 멀리 돌아가기보다 남들이 말하는 가장 빠른 길을 갔다. 도전적인 일보다 안정적인 일이 더 쉬워 보였고 비주류보다는 주류의 품이 더 아늑해 보였다. 그렇게 현생에 치여 먹고 사느라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일에 시들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지점을 기점으로 다시금 남의 말을 듣지 않게 됐다. 그 기점은 바로 결혼적령기를 지나면 서다. 나 역시 결혼을 위해 소개팅도 하고 선도 보고 열심히 노력했다. 맞선과 헌팅, 소개팅을 포함하면 100번은 족히 넘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시기를 놓쳐버렸다. 막차를 놓쳤으니 뛰지 않고 걷게 됐달까. 주변 경치도 좀 보면서, 하고 싶은 것도 좀 하면서.
그즈음 자기 확신이란 것도 생겼다. 나이가 드니 자연스럽게 경험과 연륜이 쌓였다. 사람도 만날 만큼 만나봤고 일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남들에게 물어보는 빈도가 줄었고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남이 아닌 내 목소리를 내게 됐다. 사람들의 참견도 서서히 줄었다. 아아, 나이 드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주변의 오지랖이 알아서 사라지는 걸 보니. 보기에 그럴듯한 일이 진정 나에게 좋은 일은 아니듯, 겉모습만 번지르르 한 사람이 나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인생을 바꿨던 일은 남들의 목소리를 쫓지 않고 오롯이 혼자 했던 선택들이었다. 여자 혼자 위험하다며 말렸던 세계여행은 인생 최고의 경험이 되었고, 엄마가 반대했던 남자친구는 내 연애사에서 길이길이 남을 사랑으로 남았다. 반대로 주위에서 절대 놓치지 말라고 했던 부잣집 아들은 여자친구에게 돈까지 빌려 가며 도박을 하는 사기꾼에 마마보이였다.
어른들이 했던 충고나 조언은 모두 그들 인생의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진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 역시 해보지도 않은 것을 해본 것처럼 말하거나 남들에게 들은 걸 전달했던 것일 뿐 정작 아는 게 없었던 것이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비난하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쓸 뿐 정말로 이뤄낸 사람들은 언제나 타인의 고생을 응원한다.
30대에 다들 결혼, 결혼해서 안 하면 큰일 날 줄 알았는데 안 해보니 큰일 안 난다. 그때는 안 하면 죽을 것만 같던 일도 지나가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시기를 놓치자 더 많은 기회들이 찾아왔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우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머리채 잡아채듯 쫓아오는 ‘적령기’라는 망령에서 해방되어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행복하기까지 하다. 남이 하라는 것에 목매달지 않으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이제 남의 숙제를 내 인생으로 끌고 들어와 끙끙대는 짓은 하지 않게 됐다.
결혼은 나의 선택이지 반드시 치러내야만 하는 숙제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에 쫓겨 맞지도 않는 사람을 만나 되돌아오는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고 아직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만약 평생 반쪽을 못 만난다고 해도 괜찮다. 이제는 혼자도 잘 사는 법을 터득해서 아쉬울 것도 없으니.
그러니 뭐든 겪어봐야 한다.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하는 말들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변명일 뿐.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면 큰일 날까, 주류에 속하지 않으면 도태될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걱정할 것 없다고. 그래도 죽지 않는다고. 어차피 내가 원하는 인생은 그들에게 없고, 내가 갖고 싶어 하는 걸 그 사람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당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당신의 인생이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