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엄마에게 하는 역잔소리
“어휴, 엄마, 드라마 좀 그만 봐. 저건 현실과 완전 다르다니까”
요즘 부쩍 잔소리가 늘었다. 엄마가 아니고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잔소리쟁이였다. “양치했어? 깨끗이 닦아야 충치 안 생겨!”로 시작해, 밤이 되면 “씻고 자라, 안 그러면 피부 다 뒤집어져!”로 하루를 마감했다. 학교 숙제가 쌓일 때면 “공부 안 하고 뭐 하니?”라는 말에 등도 떠밀렸고 어지러운 방 안에서 뒹굴거리던 내게는 “방 좀 치워라, 이러다 발 디딜 데도 없어지겠다”라고 포효했다.
그때는 그렇게 엄마 잔소리가 싫더니, 지금은 웬일인지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는 내가 엄마보다 잔소리를 더 한다. 드라마 광인 엄마에게 드라마 좀 그만 보라고 잔소리를 퍼붓거나 정리가 늦은 정리에 관해서도 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엄마, 이런 건 바로바로 정리해야 신선해”. “엄마, 모르는 사람한테 말 걸지 마. 젊은 사람들은 그런 거 싫어한다니까”라며 마치 어린애를 다루듯 말한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런 걸까?
부모님과 함께 사는 요즘 나는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최근 들어 부쩍 엄마가 나이가 들었다는 걸 느낀다. 뭐 하나를 말하면 자꾸 까먹고 했던 말을 또 하거나 잘 기억하지 못한다. 가게 일도 힘에 부쳐 보이고 나나 아빠가 화를 돋울 때면 사자 같이 우렁차게 포효하던 목소리도 이제는 많이 사그라졌다.
예전의 엄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맨이자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녀보다 아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나에게는 일상인 핸드폰도 인터넷도 엄마에게는 점점 어려워 보이고 힘도 더 세다. 그런데 이 사실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어릴 적 엄마는 나의 우상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일찌감치 워킹맘이었던 엄마는 늘 멋져 보였다. 여유도 별로 없고 매일 일만 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엄마는 늘 씩씩했다. 집에 힘든 일이 생기면 앞장서서 해결하고 말썽쟁이 두 남매와 마음 여린 아빠를 데리고 정말 열심히도 살았다. 아빠가 사고를 치면 앞장서서 수습하고 오빠나 내가 곤경에 처하면 언제든 나타나서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엄마의 모습은 마치 미래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유튜브도 없고 SNS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멋진 여자라고 생각했다. 물론 머리가 크고 사춘기를 겪으며 엄마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했지만.
그러던 그녀가 언제부터인지 변했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다'는 생각은 나이가 들며 점차 변했다. 그녀의 삶은 내가 어릴 때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고되고 현실적이었다. 그 변화는 아마도, 내가 성장하면서 엄마와 나를 동일시했던 기대와 맞닿아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변한 건 엄마가 아니라 나일 것이다. 내가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되었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엄마는 왜 내가 바라는 세련되고 우아한 여자가 아닐까' 하고 반문하게 됐다. '왜 더 여유롭고 멋진 모습으로 나이 들지 않았을까, 왜 더 편하고 고상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들을 축적하며.
어쩌면 내가 그녀를 통해 내 미래를 상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엄마가 곧 나의 미래였기에, 나도 그녀처럼 될까 봐 두렵고, 그래서 더 이상 내 이상형으로 바라볼 수 없었던 걸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대가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 엄마가 얼마나 많은 희생과 현실을 견뎌내야 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깨달은 건, 엄마가 멋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멋을 표출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자식 때문에, 가족 때문에. 엄마는 일찍부터 고된 현실에 부딪혀야 했다. 젊은 시절에는 결혼과 육아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틈조차 없었고, 매일같이 가게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데 온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늘 웃으며 우리를 챙겼지만, 그 미소 뒤에는 끝없는 현실적 고민과 번뇌가 숨어 있었다.
엄마의 희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그녀가 얼마나 많은 꿈을 포기했는 지다. 엄마라고 식당 아줌마가 되길 원했을까. 그녀 역시 남들처럼 우아하게, 편하게 살고 싶었지만 결국 생계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했다. 꽃 다운 시절 아빠를 만나 직장을 그만두고 주부가 되었고 애들이 걷기 시작했을 땐 아빠와 식당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일을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던, 화려하게 살고 싶던 꿈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했을 것이다.
지금 엄마는 나에게 안쓰러움의 대상이자 애증의 관계다. 그녀를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티가 나게 굽은 어깨와 부쩍 늘어난 흰머리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잔소리를 퍼붓게 된다. 고된 그녀의 삶이 애처로워서, 그럴수록 내가 더 미안해서. 이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쉽지 않고, 멋지게 나이 드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힘든지를.
사랑이라는 감정은 참 묘하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아끼고 또 원망한다. 그녀의 삶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고 그녀의 삶을 알 것 같다가도 또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엄마가 어릴 적 나에게 왜 그렇게 많은 잔소리를 했는지이다. 엄마는 나를 아끼고 또 보살펴 주고 싶었겠지.
엄마 마음이 다 그렇듯 딸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이를 먹으며 부모에게 느끼는 감정의 미묘한 변화와 파동들은 사실 부모의 그것과 닮아있다. 우리는 때로는 어른처럼 부모님을 걱정하지만, 여전히 아이 같은 마음으로 부모님께 기대고 싶기도 하다. 부모님이 점점 연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지는 시기가 있다가도 여전히 마음 한 켠으로는 부모님을 미워하고 원망한다.
그래서 딸의 잔소리는 사랑이다. 어릴 적 엄마가 그랬듯, 지금의 내가 그렇듯. 엄마의 그것도 내 것도 모두 같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씩 엄마에게 따뜻한 말을 더 해보려 한다. “엄마, 요즘 뭐 힘든 건 없어?” 같은 말이나 “사랑해” 같은 짧고 솔직한 표현들을 어설프게나마 연습하는 중이다. 약해진 엄마가 더 강해진 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사진 Unsplash_Dominik L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