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나이 들다
프롤로그 : 우아함이라는 뜻밖의 칭찬
얼마 전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를 보며 놀라듯 말했다.
“몰라보겠다. 너무 멋지고 우아하게 나이 먹었구나. 사람은 외모로 살아온 과정을 말한다던데, 너 정말 우아하고 예쁘다.”
부끄러우면서도 뭉클했다.
쓰러질 듯 약했던 아이, 존재감 없이 그림자처럼 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그 말은 단순한 외모 칭찬이 아니었다.
이 글은 ‘엄마 젖 더 먹고 와'라던
말을 들었던 수줍은 꼬마가 ‘우아하다’는 말을 듣기까지의 조용한 성장 기록이다.
쓰러질 듯 약했던 아이
나는 어린 시절,
세상의 기준에서 한참 모자란 아이였다.
통통한 얼굴에 긴 생머리, 눈만 큰 작은 아이.
누군가와 부딪히기라도 하면 픽 쓰러질 듯
약해 보였고, 또래보다 키가 작아
친구들에겐 늘 어린 동생 같은 존재였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잠 못 이루고,
새벽이면 다리에 쥐가 나 울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내 다리를 주물러 주시며
“네가 거꾸로 태어나서 그런가 보다” 하고는 당신을 탓하셨다.
엄마의 잘못이 아닌데도 그 죄책감 섞인 한숨이
어린 나에게 아프게 스며들었다.
친구들 눈에도 나는 언제나 동생 같았다.
공기놀이를 해도, 고무줄놀이를 해도
나는 참여자보단 구경꾼이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내 손을 꼭 잡고 다니며
나를 보살폈다.
성인이 되어 친구들에게 “그때 기억나?” 하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이랬다.
“쪼끄맣고 조용한 애, 눈 큰 애.”
그게 나의 전부였다.
교무실 문을 열어젖힌 용기
하지만 그 조용한 겉모습 속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꺾이지 않는
심지가 숨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걸스카우트 단체복이 너무 멋져서 꼭 입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선생님께 말했다.
“저 걸스카우트에 들어가고 싶어요.”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엄마 젖 더 먹고 와.”
작은 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저학년 꼬마가 교무실까지 찾아온 게
재미있었던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교무실을 나서던 그 순간의 씁쓸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돌이켜보면 그 어린아이가 교무실 문을 스스로 열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용기의 증거였다.
누룽지 속의 책임감
나의 당찬 성격은 뜻밖의 순간에도 드러났다.
어느 날, 부모님이 밭일을 가신 사이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셨다.
분명히 부모님과 약속을 잡았을 텐데
내 기억으로 그날 집에는 나 혼자였다
텅 빈 집에서 손님을 맞이한 나는 무언가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에 누룽지를 꺼내 선생님께 드렸다.
밭에서 돌아온 부모님 앞에는 선생님과 내가 마루에 나란히 앉아 누룽지를 먹고 있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민망하셨다지만,
그날의 나는 제법 의젓한 ‘작은 어른’이었다.
우아함이라는 성장의 증거
동창회에서 친구가 했던 그 말.
“너무 멋지고 우아하게 나이 먹었구나.”
그 말은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쓰러질까 봐 걱정하던 아이,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던 아이가
이제는 ‘우아하다’는 말을 듣는다니.
‘엄마 젖 더 먹고 오라’ 던 말을 들었던 꼬마는
결국 스스로를 키워냈고,
그 긴 여정의 끝에 ‘우아함’이라는 단어를
얻게 된 것이다.
스스로를 과장하거나 미화하는 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외모의 변화가 아니라,
시간을 견디며 단단해진
내 마음의 빛깔이었기에.
이제 나는,
세상 앞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다시 중심을 잡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도 우아함이란 타고난 기품이 아니라,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다듬어진 삶의 결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