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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우 Nov 17. 2023

서로 다른 기억, 그녀가 화내는 이유

정확한 기억은 없다. 중요한 건 상대의 마음이다. 


서로 다른 기억, 다툼의 시작


명동대전의 서막이 열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 정말 오랜만이다. 우리 전에도 여기 왔었는데. 기억나?" 여자친구가 방긋 웃으며 말한다.

"당연하지. 그때 더울 때라 둘이서 해질 때까지 카페에서 놀았잖아." 


순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럴리가 없는데... 반신반의하며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본다. 

웃음기는 온데간데 없고 축 처진 입꼬리만 남았다. 어쩐지 불길하다.

"언제 여름에 여길 왔어. 그때 추울 때라 대만 음식점까지 벌벌 떨면서 갔는데.. 

샤오마이 세트랑 우육면 먹었던 거 기억 안 나?"

"그건 기억나는데 그 전에도 왔었잖아. 너 또 기억 못 하는구나?"

"또? 기억을 못 하는 거라고? 오빠야말로 누구랑 온거랑 헷갈리는건데?" 

그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옥신각신 해봐도 소용없다. 증거를 들이밀어야 한다. 여름에 명동에서 결재한 카드내역이 어디있더라?

핸드폰을 붙들고 결재내역을 찾고 있는데,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분통을 터뜨리며 가버린다. 


대체 왜... 뭐가 잘못된거지?



불완전한 우리의 기억


기억에 관한 연구를 위해 모인 실험 참가자들에게 

2001년에 펜실베이니아 들판에 추락한 비행기 사고에 대해 기억나는 것을 말해달라고 했다. 

참가자의 46%는 그 사고에 대해 자세하게 답변한다.


여기서 문제는? 

2001년에 펜실베이니아 들판에 추락한 비행기는 없었다는 거다.

있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 누군가 답변을 요구한 것만으로 없는 기억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우리의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기억이 다른 것도, 그래서 싸우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인거다. 


기억이 다른 이유 3가지


기억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기억이 만들어지고, 저장되고, 다시 떠올리는 복잡한 과정에서 변형되기 때문이다.


우선, 기억이 만들어질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인지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상황에서 관심을 기울인 한정적인 정보만을 기억한다.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건 아예 머릿속에 집어넣지도 못한다. 


또한, 기억을 저장하는 과정에서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 머릿속에는 이미 세상에 대한 나만의 '렌즈'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원래 가지고 있던 기억, 추측이나 상상, 어떤 일에 대한 의견 등 

다양한 생각과 지식, 기억들이 만들어 낸 나만의 필터를 통과한 뒤에 저장된다. 

그 과정에서 왜곡과 변형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억을 떠올릴 때도 영향을 미친다. 

친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야기를 극적으로 꾸며낼 수도 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 우연히 얻게 된 추가정보를 덧붙여놓곤 사실이라 믿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과거 운동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가정해보자.

이어달리기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일에 대해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맞아, 그때 상대편에서 바통을 놓치지 않았다면 이기기 어려웠을 거야."라고 말한다.

사실 그런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냥 넘어긴다. 

다음번에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 바통을 떨어뜨린 내용이 추가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기억의 실체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리사 제노바는 <기억의 뇌과학>에서 "우리의 기억은 틀렸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한치의 의심없이 굳게 믿는 기억도 사실은 왜곡되고 변형된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보다 중요한 건 상대의 마음


그러니 서로 맞고 틀리고를 따지기보단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생각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기억 자체가 불완전하다면, 누구의 기억이 맞는지 따지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그녀가 잘못 기억할 수도 있지만, 내 기억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거다.   

그 상태에서 누구의 기억이 맞는지를 따지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게다가 그녀는 자신과의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지가 궁금한 거고,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녀와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 것이니 말이다. 




참고: 리사 제노바, <기억의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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