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신년 다이어리가 갖고 싶어서 꾸역꾸역 적지 않은 가격의 커피를 매일 마셨던 때가 있다. 스타벅스가 지금의 제법 대중적인 이미지를 갖기 전, 커피전문점 중에서도 단연 '힙하고' 동시에 고유한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로 절대적인 인기를 얻던 때로 기억한다.
201X년 당시 20대 중후반의 사회초년생이던 나는 그야말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았다. 그 월급이면 메가커피는커녕(당시에 저가커피는 이디야 정도가 유일했다.) 카누로 만족해야 하는 처지이거늘... 나는 감히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갖고 싶었다. 스타벅스가 뭐라고... 'starbucks'와 브랜드 로고만 없으면 1만 원에 팔아도 안 살 것을 그렇게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매장에서 다이어리를 받으려면 크리스마스 시즌 음료 3잔과 14잔의 음료를 마시고 받은 스티커를 모아야 했다. 10여년 전이라 해도 스타벅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소비자가 느끼는 가격대가 비싼 편이었고, 더군다나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 나로서는 자주 찾지 말아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뭐랄까. 적게 버니까 '벌어서 뭐해' '저축해서 뭐해' 같은 패배주의적인 감상에 흠뻑 젖어있었고 이 정도 고생하는데 '스벅 커피도 못 사먹냐!' 같은 반항심 따위로 회사 1층 로비의 스타벅스를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그래도 스티커 17개를 받아서 다이어리로 교환할 생각이었으니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만 마셨을 것 같다고? 일리 있는 추측이고 상식적인 판단이다.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는 사회초년생 신분으로 마땅히 필요한 태도이고. 그러나 나는 쥐꼬리 월급을 받는 와중에도 맛에 대해서 만큼은 확고한 고집이 있었고,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맛이 없다는 매우 타당한(!) 이유로 바닐라라떼를 즐겨 마셨다. 그 시절 스타벅스 바닐라라떼 가격은 5천원 대 초반?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보다 두 배 이상 버는 지금도 출근길 커피는 무조건 메가커피로 타협하는데 하여튼 그때는 그랬다. 이유는?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필요해서!
이제 나는 '필요'와 '욕망'의 차이를 안다. 무언가가 없음으로 인해서 나의 삶이 불편해진다면 필요한 것이고, 무언가가 없어도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면 욕망하는 것이다. 무언가 있음으로 인한 상황과 없음으로 인한 상황을 비교했을 때 전자의 상황이 여러모로(경제적, 환경적으로) 이득이라면 역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때의 나에게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욕망이었다. 다이어리가 없어서 잠을 잘 못잔다 거나 통근 시간이 늘어난다 거나, 걸을 때 불편해서 발이 아프거나 하진 않았지만 다이어리가 있음으로 인해서 '있어보일' 수 있었으니까.
그 시절엔 왜 그렇게 욕망하는 것이 많았는지... 부족한 벌이와 불안정한 생활을 물건과 그것을 소비하는 행위로 보상받으려는 듯 참 열심히도 사재꼈다(?). 그러고 보면 정말 '과시는 결핍'이라는 표현이 그냥 만들어진 건 아닌가 보다. 쥐뿔도 없어서 모방 소비와 과시용 소비, FOMO에 잠식되었던 20대 때의 나와 쥐뿔보다 좀 더 가진 상태로 마음의 안정과 풍요라면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된 30대 때의 나를 비교하면 정말 그렇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렇게 사재끼던 욕망의 20대를 보냈으니 필요에만 반응하는 합리적인 30대의 내가 될 수 있었겠지.
그래도 아주 가끔은 필요하지 않아도 마음껏 욕망하는 감각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일상을 필요한 것으로만 채우는 건 단순하고 깔끔하지만 낭만이 없다.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낭만 있다는 게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무언가를 열렬히 갖고 싶어 애닳아하고, 그것을 마침내 가졌을 때 마음이 몽글몽글 부풀어오르는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삶에 찌들 때로 찌든 어른들에겐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