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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Oct 21. 2020

코로나 속에서 배운 '나'와 친해지는 법

나 자신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


학생 때까지만 해도 "넌 누구랑 제일 친해?"라는 말에 고민 없이 1초 만에 튀어나오는 친구의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8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이후의 삶에서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바로 내가 되었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평소 각자만의 생활 영역이 있던 두 사람이 코로나로 인해 장시간 붙어있게 되면서 갈등이 깊어진단다. 문득 엄마랑 며칠을 꼼짝 앉고 집에 붙어있는 상상을 하다 이내 수긍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는 여행도 못 가게 만드는 불청객임이 틀림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값비싼 서울 살이 중 반강제적 집콕으로 인해 강남 한복판에 살고 있는 이점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게 됐다. '코로나만 아니었더라면, 막차 걱정 없이 밤늦게까지 서울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을 텐데'라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코로나로 인해 한 가지 배워나가고 있는 게 있다.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 친해지는 법이다.


코로나 이전의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상당히 못 견뎌하는 성향의 사람이었다. 외로움을 많이 타기도 했지만, 주로 모임을 주도하는 편이다 보니 나의 하루하루는 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반면 일정이 없는 날이면 혼자 남겨진 시간에 대한 강박으로 동네 카페라도 가서 책을 읽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터지면서 의지와는 다르게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났고, 거기에 홀로 서울 살이까지 시작하면서 내 삶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혼자만의 시간을 채우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브런치였다. 하루 4만 원이나 하는 서울살이가 더 값질 수 있도록 소소한 에피소드를 기록해두자는 의미로 시작한 글쓰기 습관. 첫 발행 글인 '하루에 4만 원짜리 서울 살이를 하고 있습니다'에 대한 반응이 예상보다 좋았고, 여기서 얻은 자극과 동기부여 덕분에 브런치에 일상을 남기는 것이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하루 일과 끝에 글로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과정에서 나는 나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반성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궁극적으로 나는 나 자신에게 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시작한 것은 운동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데다가 회사도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살이 찌기 시작했다. 거기에 회사 근처로 등록해 놓았던 필라테스도 일시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온전히 내 의지만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강력한 다이어트 동기부여를 위해 나는 체중 감량의 니즈가 있는 친구 둘을 모았다. 그리고선 본인의 목표 체중에 각 10만 원씩을 건 체중 감량 내기를 시작했다. 지난 한 달 동안 '다이어트를 성공하겠다'라기 보단 '이 내기에서 지지 않겠다'라는 굳은 의지로 고강도 홈트와 러닝을 병행했고, 그 결과 무려 -3kg 감량에 성공했다! 외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더 나은 내가 되겠다는 목표로 고통을 인내하며 운동하는 내 모습은 내가 봐도 멋있었다. 더 뿌듯한 사실은 내기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본인의 목표 체중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이번만큼 스트레스받으며 살 빼 본 적은 없는 것 같아. 확실히 돈이 무섭긴 무서워."


다음으로 나만의 시네마에서 다양한 영상 콘텐츠들을 소비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의 나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콘텐츠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틀에 한 번 꼴로 약속이 있다 보니 온라인 콘텐츠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편이 더 익숙하고 즐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약속이 줄어들었고, 자연스레 유튜브 콘텐츠나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특히 우리 집 벽면을 한가득 채워주는 빔 프로젝터 덕분에 5분짜리 영상이라도 마치 영화관에서 보는 듯한 기분을 낼 수 있다. 언제든 준비되어있는 나만을 위한 단독 상영관이라니!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의 주요 영화관 부럽지 않다!

강유미 언니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한창 활발하던 20대의 나는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 내 능력치 이상의 약속과 일정을 만들었다. 그 결과 외부에 에너지를 몽땅 쏟느라 정작 나를 이해하고 내 마음을 살피는 데는 소홀했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친구와 친해지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면서, 정작 나 자신과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쏟지 않는다. 혹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나'로 사느라 나와 친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 바로 몇 달 전의 내 이야기다.


오늘의 나는 약속이 없거나 일정이 없는 순간을 지루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 타인과 보내는 시간뿐 아니라 나와 보내는 시간도 즐길 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유례없이 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비로소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날 2020년도 어느덧 연말을 향해 달려간다. 누군가가 내게    어떻게 보냈냐고 묻는다면,  가지의 고통 속에도  가지 수확이 있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바로  자신과 친해지는 방법을 배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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