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며느리의 요리 솜씨
10년 전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요리 프로가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들이 당신의 냉장고를 탈탈 털어드립니다! 처치 곤란! 천덕꾸러기 냉장고 재료의 신분 상승 프로젝트~ ". 냉장고를 여는 순간 최고의 요리 쇼가 시작된다! 냉장고 주인의 고민을 타파할 푸드 카운슬러! 토크와 요리가 있는 격조 높은 요리 토크쇼!
이 프로를 보면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방송 전날 게스트로 나온 사람의 집에서 냉장고를 실어온다.
방송 당일 냉장고를 개방하고 냉장고 속에 들어있는 식재료를 확인한다.
두 명의 셰프가 정해진 시간 내에 요리를 만들어 시식단의 평가를 받는다.
이 프로의 하이라이트는 두 셰프의 요리과정이다.
준비된 재료로 정해진 조리과정을 설명하는 방법에 그쳤던 요리프로가 새 장을 연 것이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면서는 '나라면 이런 요리를 할 텐데' '나라면 저런 요리를 할 텐데'라는 생각으로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창의성 순발력 기술을 넘어 과학적인 조리과정까지 요리의 모든 것을 단 2~30분 내에 보여주는 프로였다. 어지간히 요리에 내공이 있지 않으면 시간 내에 완성품이 나오기 힘들다. 여기에 맛의 평가까지 받아야 하니 셰프가 느끼는 긴장감을 시청자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이 프로 요리 초점은 창의성과 속도다.
요리에 있어 '창의성과 속도'
그것은 내가 자신 있는데....
대가족에서 훈련된 며느리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요리에 대한 이야기다.
첫째 요리의 속도가 빠르다. 한식 집밥을 차리려면 국이나 찌개 몇 가지 반찬 구성이 있어야 상이 차려진다. 동시에 몇 가지 반찬을 만드는 훈련이 충분히 되어 있다. 머리로 생각하는 동시에 손은 이미 음식을 만들고 있다. 순간순간 나 자신도 놀랄 때가 있다.
둘째 창의적이다. 식구들은 같은 반찬이 계속 상에 올라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재료로 다른 반찬 만들기, 재료의 조합에 대한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하다.
셋째 계획이 없다. 무슨 요리를 하기 위해 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제철 많이 나는 것을 사놓은 재료나 일가친척들이 방문하면서 사 온 재료가 많기 때문에 있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주부들은 항상 오늘 저녁 무슨 반찬을 할 것인지 머릿속에 뱅뱅 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으로.... 이런 환경에 트레이닝이 가장 잘 된 사람이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맏며느리인 내가 아닐까 생각하며 시청했다.
우선 부모님이랑 살면 삼시 세끼를 해야 한다. 또 예정에 없던 손님이 많이 온다. 손님들이 올 때 음식 재료로 쓸 뭔가를 사 온다. 손님이 가기 전에 뭔가 먹여 보내야 한다. 그러려면 요리의 속도가 빨라지고 창의적(?)인 요리가 탄생한다.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를 보면서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아 흥미진진했다.
부모님을 포함해서 가족과 일가친척 다른 사람들 식사를 위해 음식을 만들었는데 '창의성과 속도'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거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요리실력? 내가 했던 일은 요리라 할 것도 없는 부엌일이었다. 부엌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분명 내가 만든 음식을 많은 사람들이 맛있게 먹었는데 정작 나는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없었다. 누군가 맛있다고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으면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왜 묻는지가 더 궁금했다. 돌아보니 나의 부엌일(?)은 분명 요리를 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요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엌일을 주로 하던 주부들의 문제일지 모른다.
부엌일을 요리로 생각할 수 없을까?
그러면 요리가 즐거워질 텐데....
오래 길들여진 타성(오래되어 굳어진 좋지 않은 버릇, 또는 오랫동안 변화나 새로움을 꾀하지 않아 나태하게 굳어진...)을 깨는 계기가 있었다.
두 딸이 결혼했다. 둘째 사위의 취미가 요리라고 한다. 집에 올 때 요리 한 두 가지를 만들어 오거나 재료를 사 와서 뭔가 만들었다. 아들 없는 집안에 사위 둘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터였다. 우리는 남자는 부엌 근체에도 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세대다. 큰 키의 남자가 부엌 주변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이제껏 나는 요리를 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가족은 먹는 사람이었다. 나 이외의 사람이 내 부엌에서 요리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생소했다.
손녀가 태어나고 사위들과 허물없이 지내면서 작은 사위에게 부엌을 내어주는 시간이 많아졌다. 옆에서 보니 한 단계 한 단계 최선을 다했다. 이것저것 넣고 육수도 제대로 끓였다. 재료 하나하나 깨끗이 씻어 물을 빼고 도마에 가지런히 놓고 칼로 하나하나 썰었다. 카레에 넣을 양파는 갈색 빛깔이 날 때까지 낮은 온도에 오래 볶았다. 처음에는 저렇게 만들다가는 밥 굶겠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손이 빠르다. 항상 몇 가지 요리를 동시에 한다. 손은 나물을 무치고 머리는 다음 요리에 가 있다. 벌써 몇 가지 음식을 해 낼 시간에 사위의 모습이 답답해 보였다. 하지만 사위는 음식 만드는 일을 즐거워했다. 자신이 좋아서 음식을 만들었기 때문에 요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은 것 같았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남자일 여자일 구별 없어졌다. 바깥일 부엌일 집안일 어느 일이든 잘하는 사람이 한다. 참으로 합리적이다. 먹을 것이 풍족한 세상이다. 마음만 있다면 재료도 풍부하고 핸드폰에는 레시피가 무궁무진하다. 모두가 취미만 있으면 요리하는 세상이다. 상이 차려지고 사위가 만든 음식을 식탁 가운데 놓는다. 가족 모두가 모여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한다. 만드는 사람도 즐겁게 만들고 음식을 먹는 사람은 더 즐겁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했던 그 누군가가 모두 곁을 떠나고 부부만 남았다. 우리 두 사람이 먹기 위한 요리는 단출했다. 음식을 많이 만들 필요도 없어졌고 빨리 만들어야할 이유도 사라졌다. 요리 환경을 바꾸기 시작했다. 우선 양을 줄이려 노력했다. 사실 많은 음식을 만드는 것에 익숙한 머릿 속을 적은 양의 음식 만드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냄비나 프라이팬 볼과 같은 요리도구를 작은 것으로 바꿨다. 요리의 단계 단계를 확실하게 구분했다. 도마에 재료를 반듯하게 놓고 천천히 썰었다. 숨을 고르고 요리에 집중했다. 뭔가 만들려면 머리보다 손이 먼저 갔던 버릇이 하나하나 고쳐지기 시작했다.
가을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라는 서정주 시인의 '국화옆에서'가 생각난다.
나의 나이를 계절로 말하면 가을에 해당한다.
느린 시간, 천천히 천천히
요리뿐 아니고 뭐든 그렇게 할 나이다.
오늘도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냉장고에서 꺼내고
잘 씻어 도마 위에 재료를 올리고
천천히 칼질을 한다.
아주 천천히.....
우주의 기운이 칼 끝에 모인다.
이제 요리가 더 이상 힘든 부엌일이 아니다.
요리는 나에게 삶의 즐거움이다.
요리는 나에게 행복과 자부심이다.
내 요리의 자부심은 40년 내공과 직접 키운 채소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하지만 열기 가득한 요리프로는 언제나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