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이름을 붙이니 마음이 풍요로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했을 때 월급봉투라는 것이 있었다.
봉투 앞면 맨 위쪽에 큰 글씨로 이름이, 이름 아래에는 직사각형의 칸이 있다. 칸 안에는 내가 이번 달에 받을 월급의 액수가 아라비아 숫자로 적혀 있다. 전체 금액 아래 작은 칸이 여러 칸이 있는데 가장 위에 기본급을 선두로 각종 수당란이다. 수당이 끝나면 다음칸은 각종 세금란이 몇 칸 있다. 기본급에 수당을 더하고 세금을 빼면 이번 달 내가 받을 월급이다. 모든 숫자의 계산이 맞아야 하고 위에 적혀 있는 금액과 봉투 안에 현금이 정확하게 일치해야 한다. 월급을 받으면 봉투 안의 돈을 꺼내 확인한다.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월급봉투가 없어졌다. 월급을 직접 개인통장으로 보내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누런 봉투가 쌓인 부산하던 총무과의 풍경도 봉투를 나누어 주던 부장님의 위엄도 기대에 차서 두 손으로 받던 직원들의 모습도 사라졌다. 월급날이면 금액이 찍힌 종이 한 장을 받는 것이 전부였다. 시스템이 바뀌자 결혼한 남자들이 너무나 서운해했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꺼내 부인에게 줄 때의 그 기분이 사라졌다고 한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받은 월급봉투를 부인에게 줄 때 가장으로서 자신감 뿌듯함이 얼마나 컸는데 그 기쁨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월급쟁이는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반 가정에서 월급은 곧 생활비였다. 그 안에서 식비가 얼마고 교육비가 얼마고 교통비가 얼마라고 대강 정해져 있다. 결혼 전이어서 생활비를 세세하게 구분하지는 않았지만 나 또한 월급을 받으면 돈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부모님께 드릴 돈을 따로 떼어 놓고 어디에 얼마를 쓸 것인지 대강 나누어 봉투에 넣고 봉투 앞에 이름을 써 놓았다. 월급봉투를 받던 시절이 지나고 월급이 통장으로 들어오면서 돈을 쓰는 행태가 달라졌다. 은행에서 그때그때 쓸 만큼 목돈을 찾아 전철표 버스표를 사고 친구와 밥을 먹고 책방에 가서 책을 사고.... 지출 내역을 적어놓지 않으면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돈에 붙인 이름이 사라졌다.
분가하는 날이었다. 챙기는 짐 한쪽에 제사용품이 수북했다. 제사는 이제 맏며느리인 내가 지내야 한다는 책임이 확 느껴졌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어깨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했다. 지금까지는 음식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는데 이제부터는 그 많은 음식을 차리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역시 어머님은 현명하셔서 비용은 물론 명절 전날 동서들이 와서 나를 도와줘야 한다는 법칙을 만들어 놓으셨다. '명절에는 20만 원을 형님에게 드리라'라고 시어머님께서 동서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동서들은 명절이면 봉투에 20만 원을 넣어 나에게 주었다.
돈이 오가는 것이 불편해서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처음에는 망설였다. 이 돈은 모두를 위해 쓰면 되지 않을 까하는 생각이 미치자 나도 동의했다. 거기에 더해서 동서들이 차례 비용으로 내는 돈을 모두 합한 것 만큼 나의 돈을 보태 봉투에 넣어 놓았다. 100만 원은 명절을 준비하기에 적은 돈이 아니었다. 무기를 충분히 장전한 군인같이 뒤가 든든했다.
평소 장볼 때 정육점에 가면
- 소고기를 살까? 돼지고기를 살까?
- 국거리로 양지머리가 좋은데...
- 사태가 좀 싼데... 질기니까 오래 삶아야 하겠지...
고민하게 된다. 머리가 복잡하다.
명절장은 달랐다.
- 국거리는 양지머리 한근, 소고기 적거리, 돼지고기 적거리로 통삼겹살, 홍해삼 고명에 들어갈 간소고리....
- 적거리는 세 조각씩 세 켜를 쌓는다면 아홉 조각에 산소에 가져갈 것까지 열 조각..
- 좀 두껍게 잘라주세요.
- 어느 부위로 할까요?
- 좋은 고기 주세요. 등심이나 채끝살...
명절 봉투에 들어있는 돈을 다 쓰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자신감이 뿜뿜 넘친다. 명절은 조상님에게 제를 올리는 행사지만 사람들 간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행사다.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은 어느 시대나 어느 지역이나 사람들 간에 보편적인 풍습이다. 오랜 시간 우리나라는 유교국가였고 그 풍습이 내려와 일가친척 형제가 모여 제사를 지냈다.
종교적인 문제로 아니면 더 중요한 많은 핑곗거리로 제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명절의 차례는 우리의 오랜 전통이다. 요즘 형제가 모이지 않고 각자 명절을 보내는 것이 편히기도 하지만 여럿이 모여 함께 하는 시간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명절에도 모이지 않는데 특별히 다른 날 모이기는 더욱 힘이 들다. 하지만 모두 그만그만하게 사는 상황에서 한 집에서만 많은 책임을 떠 안는다면 명절이 짐이 된다. 모든 일은 즐거워서 해야지 짐이 되면 하기 싫어진다.
나는 그동안 마음 가볍게 명절을 준비했다. 옛날부터 어른들은 제사 음식을 장만할 때 가장 좋은 재료를 깎지 말고 사라고 하셨다. 이것은 제를 지내러 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파는 사람들에게는 이문을 남길 수 있도록 이타적인 마음이라고 나는 알아 들었다. 평소 소심하게 아끼며 물건을 사더라도 명절 장만큼은 편하게 장을 봤다. 재벌이 백화점에서 명품을 살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하는 정도로.....
명절 이름이 붙은 봉투가 있었기에 장보기가 수월하고 행복했다.
'명절에 느끼는 제행무상'이라는 제목으로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이들이 출가하면서 명절에 많은 식구들이 모이지 않게 되었다. 코로나 시절이 지나고 우리가 전원주택으로 이사 가면서 명절은 점점 위축되어 갔다. 형제들 부부와 결혼하지 않은 조카 몇몇이 참석하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더구나 요즘은 많은 음식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밖에 나가서 먹는 것을 더 좋다.
나는 동서들에게 장을 많이 보지 않으니 명절비용을 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형님이 준비하는 노력의 비용으로라도 받으라고 하였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차례를 지내러 와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생각이다. 형제들이 모여 함께 했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지독한 더위가 물러갔다. 더위를 견디는 것이 이렇게 힘들었던가 돌아보게 된다. 앞으로는 여름이 더 길고 더울 것이라는 보도가 있다. 비교적 시원한 우리 동네도 올해 더위는 견디기 힘들었다. 찬바람이 불면서 더위는 물러갔다. 시원한 바람과 파란 하늘은 단 며칠일 뿐 여름에 더운 것만큼 겨울이 춥다고 한다. 기후가 종잡을 수 없다. 요즘 지은 건물들은 기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을 만큼 두껍다. 건물 안에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해서 오히려 걸칠 옷 하나는 가지고 다녀야 한다. 밖에 볼 일이 있어 나가면 뛰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오곤 한다. 요즙 짓는 건물은 인텔리전트 건물이라 하여 습도 미세먼지까지 조절되도록 만들어 건물 안은 쾌적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날씨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고통스럽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셨던 우리 부모님들은 가을이면 광에 쌀포대와 연탄을 쌓아놓으셨다. 김장은 한 해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쌀과 연탄 김장김치만 있으면 겨울을 배 부르고 등 따습게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 하지만 요즘에도 한 겨울 배 부르고 등 따습다는 것이 먼 나라 이야기인 사람들이 있다.
매년 11월 말에서 12월 초 김장을 한다. 김장이 끝나면 한해 큰 짐을 덜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여유롭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어려운 사람들이 생각난다. 남편이 은퇴하고 전원주택을 구입하면서 기부를 시작했다.
연탄 기부라는 이름을 붙여 10년을 계획했는데 올해가 9년째다.
처음 시작할 당시 연탄값이 600원이었다. 한 해 겨울 한 집에 1000장이면 족하지 않을까 계산해서 두 집 정도 나로 인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몇 년 전부터 연탄값이 800원으로 오르더니 올해는 850원이라 한다.
올해도 연탄은행에서 “연탄 나눔이 시작됩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마당 가득 가을 낙엽이 쌓였다.
나는 10년의 계획을 실천할 것이다.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어제 같은 일상에서도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마음을 다지기 위해 돈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돈에 이름을 붙이면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