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편수 조랭이떡국 개성약과
개성편수는 내가 처음 시댁에서 먹었던 개성음식이다.
결혼 며칠 전 시댁에 들렸다.
어머님은 따뜻한 안방 아랫목에서 막내 시누와 만두를 빚고 계셨다. 준비물도 도구도 단출했다. 어머님은 반죽된 밀가루를 밀어 피를 만들고 대학생 막내시누는 어머님이 만드신 만두피에 속을 넣으며 '엄마 이렇게 만들면 돼요?'라며 계속 물었다. 어머님은 '배를 볼록하게 속을 넣어야 예쁘다' '속을 넣고 꼭꼭 마무리를 잘해야 터지지 않는다' 등등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밀어 놓은 만두피가 어느 정도 모아지자 직접 모양을 만드셨다. 금방 한 판이 완성되었다. 어머니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님은 부엌으로 나가시더니 작은 소반을 내 오셨다. 소반 위에는 방금 만든 만두 10여 개를 맹물에 깨끗하게 끓여 담은 대접과 보쌈김치, 식초를 한 방울 떨어뜨린 초간장이 전부였다. 그 옆에는 빈 작은 접시가 놓여있었다. 만두가 담긴 대접은 무심한 붓터치의 그림이 그려진 묵직한 도자기다. 보쌈김치는 가장 밖에 있는 푸른 잎 연두색잎 노란 잎까지 걷어 김치보시기에 담았다. 하얗게 썰은 밤채, 붉은 실고추, 흰 잣 몇 개와 싱싱한 고수잎이 살포시 얹혀 있다.
개성에서는 만두의 크기를 검지와 장지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작게 빚는다. 국물은 아무것도 넣지 않은 맹물에 깨끗하게 삶아 동동 띄운다. 이렇게 만든 만두를 개성에서는 만두라 하지 않고 개성 편수라고 부른다. 작고 통통한 만두가 물에 끓으면 다소 커지기는 하지만 그 양이 많다고 할 수는 없다.
소반 앞에 앉으면 우선 보쌈김치의 화려함이 눈에 들어온다. 다음은 독특한 고수향과 잘 익은 김치의 시큼한 향이 어우러져 입맛을 돋운다. 어머님은 개성편수 먹는 방법을 설명하셨다. 우선 만두 하나를 옆에 놓인 작은 빈 접시에 놓고 숟가락으로 속이 보이게 반을 자른다. 그리고 그 안에 초간장을 두어 방울 넣어 국물과 함께 입에 넣는다. 입 안에 퍼지는 담백한 맛이 개성편수의 맛이다. 중간중간 보쌈김치를 입에 넣으면 쨍~ 하는 맛이 입 안을 톡 쏜다. 보쌈김치의 상큼한 맛이 심심한 편수맛을 입 안에서 화려하게 만든다.
개성편수는 한 끼 깨끗하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고급스러운 음식이다.
결혼을 하고 나는 명절마다 명절이 아니라도 특별한 날이면 개성편수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개성편수는 다른 만두 재료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고기 야채 두부가 들어간다. 고기는 소고기 돼지고기를 섞어 반죽한다. 소고기만 넣으면 속이 너무 딱딱하다. 돼지고기의 기름기가 어느 정도 들어가야 속이 부드럽다. 돼지고기만 들어가면 맛의 고급스러움이 떨어진다. 채소는 색과 맛을 고려해서 숙주 시금치 채친 당근을 넣는다. 채소를 더하면 편수 속이 화려해진다. 끝으로 물기를 제거한 두부를 으깨 양념을 해서 넣는다. 이 두부는 모든 재료를 엉기게 하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에 날계란을 넣는 것도 재료가 어우러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두부의 양이 너무 많아지면 전체적인 맛이 텁텁해진다. 모든 재료는 물기를 제거하고 각자 양념을 해서 함께 섞는다.
만들어 놓은 편수는 편수만 깨끗하게 먹을 수도 있지만 조랭이 떡국을 끓이면서 떡국 한 대접당 2~3개씩 넣는다. 설날에는 편수가 든 조랭이 떡국을 한 그릇 먹는 것이 개성사람들의 가장 대표적인 설날음식이다.
건넌방에 작은어머님들이 모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셨다. 한 집안으로 시집온 며느리라는 공통점을 지닌 어머님들은 하실 말씀이 많으셨다. 나는 어머님들께서 드실 한과나 마실 것을 들고 방을 드나들었다. 이야기하시는 중에도 내가 들어오면 '아휴~ 바쁜데... 신경 쓸 거 없다.'라고 하시며 손사래를 치시기도 하고 우리 시어머님께 '형님 이제 며느리 보셔서 좀 편해지셨죠?'라고 며느리 봐서 좋으시냐는 덕담도 오가고 '큰어머님 건강이 좀 더 안 좋아지셨나 봐요.'라고 집안의 어른들 소식을 공유하시는 등 여기저기서 대화내용이 들려온다.
서울에 사시는 작은어머님께서 이번 설에도 오시는 길 개성조롱이떡을 무겁게 들고 오셨다.
- "수고 많았네. 무거워 어떻게 들고 왔어?"
- "형님, 무거워 들고 올 수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년에도 사 올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이제 연세가 많이 드셔서 떡 만드는 것이 버거우셔요."
- "그럼. 나이가 있는데 쉬운 일인가?"
작은 어머님 덕에 우리는 매년 설에 조랭이떡을 먹을 수 있었다. 피난 오신 개성분이 가게도 없이 집에서 만들어 파는 조랭이 떡이다. 개성사람들끼리 아름아름 사 먹던 조랭이 떡을 작은어머님이 사 오셨다. 만들어 파시는 분이 연세가 드셔 일이 버거워 오래도록 사 먹을 수는 없을 거 같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몇 년 동안은 조랭이 떡국을 먹을 수 있었다.
조랭이 떡국떡의 모양은 마치 눈사람 같아 떡국을 끓여 놓으면 특히 아이들이 좋아했다. 방앗간에서 해 온 가래떡국은 끓여서 바로 먹지 않으면 불어 손님이 올 때마다 다시 끓여야 했다. 하지만 조랭이 떡국은 좀 늦더라도 전에 온 손님 때 끓였던 것을 상에 올려도 많이 불지 않아 대접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조금은 편했다.
시댁 어른들은 조랭이떡국을 개성에서부터 드시던 음식이다. 해방 전에는 동네에서 떡메를 쳐서 떡을 하고 집집이 한 덩어리씩 가져가 만드셨다고 한다. 지금은 떡메를 칠 수 없으니 방앗간에서 해 온 떡을 덩어리째 가져와 하나하나 만드신다고 한다. 큰 덩어리를 한쪽에 놓고 왼손으로 문질러가며 작은 굵기의 가래떡을 만들고 오른손에 대나무 칼로 한 번은 완전히 자르지 않고 한 번은 완전히 자르면 눈사람모양의 조랭이떡이 된다. 방앗간에서 기계로 가래떡을 뽑는 것보다 얼마나 공이 많이 드는 일인가?
모양이 귀엽다고 생각하던 차에 작은 어머님 한 분이 말씀하셨다.
- 이성계 목을 자르는 모양이야.
깜짝 놀랐다. 자세히 들어보니 이런 모양이 나온 것은 태조 이성계의 목을 자르는 의미로 개성사람들이 이와 같은 모양으로 떡을 해 먹었다는 것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하면서 개성사람들은 울분이 있었던 거 같다. 조랭이떡의 가운데 부분을 잘록하게 해서 그 울분을 조금이라도 삭였을 것이다. 개성사람들은 조선의 건국에 얼마나 부정적이었으면 개성에서는 욕을 할 때 '양반보다 못한 놈'이라 한다고 한다. 철저한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이름만 중요시하는 양반들을 보면서 얼마나 한심했으면 이렇게 말할까 생각하게 된다. 개성사람들이 조선의 수도 한양보다 고려의 수도였던 자신들의 지역을 존중하는 다른 표현도 있다. 우리나라 어디서건 서울을 향해 갈 때 올라간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개성사람들은 개성에서 한양에 갈 때 올라간다고 하지 않고 내려간다고 한다고 말씀하셨다. 개성사람들의 자부심을 알 수 있다. 실용적이고 부지런하고 계산적인 기질이 개성상인을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전주 이 씨 양반인데....
양반의 덕목을 최대의 가치로 교육받고 자랐는데...
실리를 추구하기보다는 명분에 얽매인 조선양반을 비웃는 개성사람들에게
조랭이 떡국으로 손님을 대접하다니...
아이러니하다.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정서와 역사가 담겨있는 생활문화다.
명절음식으로 개성 편수와 조랭이 떡국을 먹는 풍습과 함께 개성 사람들의 정서까지 생각해 봤다.
거실 가운데 브루스타 두 개를 놓고 그 위에 약과를 튀길 기름냄비를 올렸다.
밀가루 참기름 소주 잣과 꿀이 재료의 전부다.
도마와 밀대 계량을 할 밥그릇과 소주잔...
약과를 만들기 위한 준비물로 이 정도가 전부인 것으로 기억된다.
아버님은 개성음식을 좋아하셨다. 명절이면 조랭이떡국과 개성편수는 항상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개성약과는 만들어보지 않았다. 차례상에 놓는 약과는 가게에서 사는 찹쌀약과였다. 10여 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1주년 되는 첫 기일에 어머님은 개성약과를 만들고 싶어 하셨다. 시어머님은 거동이 불편하셔서 직접 뭔가 하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고 어머님을 모셔왔다. 그리고 어머님과 함께 약과를 만들었다.
개성약과는 모양이 네모다. 재료는 참기름과 소주가 들어가는 것이 특이하다. 서양식 과자 버터 대신 참기름을 넣고 소주는 이스트나 베이킹파우더를 대신해서 과자를 부풀리는 역할을 한다.
약과를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계량을 하는 밥그릇으로 밀가루를 덜어 체에 친다.
밀가루 위에 분량의 참기름을 넣는다.
밀가루와 참기름을 섞어 손으로 비빈다.
밀가루와 참기름이 잘 섞어지면 소주로 반죽한다.
반죽을 도마에 놓고 민다.
네모모양으로 등분한다.
약과 하나하나에 젓가락으로 여러 개의 구멍을 낸다.
기름에 튀긴다.(첫 번째 기름냄비는 낮은 온도 나머지 기름냄비는 높은 온도)
튀긴 약과는 바로 꿀에 넣는다.
꿀에서 꺼낸 약과 위에 잣가루를 뿌린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개성약과 만드는 법의 전부다.
밀가루를 박력분이나 중력분으로 한다. 많이 치대지 않는다. 끈기가 생기면 안 된다. 완성품을 옆에서 보면 켜가 생기게 잘 튀겨져야 잘 된 것이다. 빵으로 말하면 마치 프랑스 빵 크루아상 같다. 먼저 낮은 온도에서 튀기고 다음 높은 온도에서 튀겨야 켜가 잘 형성되고 속까지 익는다. 젓가락으로 찔러 구멍을 내는 이유는 속까지 잘 익게 하기 위해서다. 튀긴 약과를 꿀에 넣으면 '차지직 ~~' 하면서 꿀이 약과 속까지 스며들어간다. 그 위에 잣가루를 뿌리면 약과는 완성된다.
몇 번에 걸쳐 꽤 많은 양을 만들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저녁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어머님은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도록 계량밥그릇을 잘 두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후 약과를 만들어보지 않았다. 명절이면 다른 음식을 만드는 것도 분주한데 약과를 따로 만들 수는 없었다. 잘 보관해 두었던 계량 그릇도 이사를 다니며 없어졌다. 어머님도 돌아가셨다.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 개성약과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명절 차례가 간소해지고 특히 이번 추석의 차례는 직접 산소에 가서 성묘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 약과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한두 단계 생략하였기 때문에 어머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다음에는 더 잘해 볼 생각이다.
개성약과의 특징을 다음과 같다.
첫째 모양이 네모다.
둘째 재료에 참기름과 소주가 들어간다.
셋째 처음에는 낮은 온도로 다음은 높은 온도에서 튀긴다.
넷째 완성품은 켜가 살아 있어야 잘 됐다고 할 수 있다.
요즘과 같이 먹을 것이 흔한 세상에 대단할 것도 없지만 먹어보면 참기름향과 꿀의 달달함 때문에 계속 당기는 맛이다. 참기름 향이 싫을 수도 있다. 꿀이 없을 때는 조청에 담가도 된다. 조청이 없으면 물엿도 무방하다. 품질은 약간씩 낮아진다. 이번에 만든 약과를 요양원에 계신 엄마에게도 허리수술로 힘들어하는 시동생에게도 손녀들에게도 갖다 주었다. 10년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먹었다. 의외로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