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와 목축
'지구상에서 인간은 인간 이외의 동물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 말한다.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가?
식물은 스스로 광합성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활동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동물은 자연에서 먹이를 얻는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완성된 뭔가를 취해서 생활했다. 인간이 자신이 먹을 것을 직접 키워서 생활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식물을 키우는 것이 농사고 동물을 키으는 것이 목축이다.
인간은 어떻게 식물과 동물을 키우기 시작했을까?
하루 종일 사냥하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동물을 들고 돌아오는 남자를 여자와 아이들은 맞았다. 모두들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동물을 바라봤다. 대부분 피를 흘리며 죽은 동물이었지만 가끔은 겁 많은 양새끼라든가 아직 뿔이 돋지 않은 연약한 송아지를 산채로 데리고 왔다. 사냥군은 이들 동물들을 금방 죽이지 않고 울타리에 가두었다.
사람들은 동물이 클 때까지 먹이를 주며 돌봤다. 동물은 우리 안에서 잘 자랐다. 집 주위에서 송아지와 양새끼가 우는 소리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 설령 사냥에 실패하더라도 울 안의 고기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냥할 수 없는 시기 우리 안의 동물을 식량으로 잡아먹었다. 남아 있는 동물들은 우리에서 스스로 자라고 살찌며 새끼까지 낳았다. 동물을 잡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의 수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불어났다.
처음부터 목축이 갖는 이익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사냥군들은 자신이 잡은 짐승은 자신의 노획물이기 때문에 사냥한 동물은 죽이는 것이 관습이었다. 소를 잡으면 단번에 먹어치웠다. 소나 양을 죽이기보다 살려 두는 편이 이익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소를 우리에 가두니 몇 해동안 계속 우유를 짜서 마실 수 있었다. 소는 점점 자라 더 많은 소고기를 얻을 수 있었고 더우기 해마다 새끼를 낳으니 사냥군은 동물을 잡는 대신 동물을 돌보기 시작했다.
양을 잡으면 죽여 가죽을 벗기고 고기는 먹고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었다. 한 장의 가죽으로 만들 수 있는 옷은 많지 않았다. 다시 사냥하고 가죽을 벗겼다. 전에 남긴 가죽과 함께 옷을 만들었다. 어느날 양을 죽여 가죽을 벗기는 대신 살아있는 양의 털을 깎았다. 죽여서 가죽을 벗기는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살아있는 양은 털을 깎는 대로 다시 새 털이 자라났다. 깎은 털을 모으니 한 마리 양에서 몇 십장의 옷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네 발 가진 짐승들을 죽여 버리기보다 목숨을 살려 두는 편이 이익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동물에게 생명을 주고 그 공물 취하게 되었다.
남자들이 사냥하러 간 동안 여자들과 아이들은 바구니나 단지를 들고 땅에 떨어진 먹을 것을 찾아 다녔다. 바닷가에서는 조개류를 줍고 숲속에서는 버섯과 딸기를 땄다. 도토리를 주워 빻아 뭔가 만들어 먹었다. 야생 꿀벌을 찾아 그 맛을 보았을 때 그들은 미칠 듯이 기뻐했다. 여자들은 아이들과 딸기와 꿀을 야생에서 찾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음식물이 충분해지면서 사람들은 남은 음식물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채취한 음식물은 항상 풍부할 수만은 없었다. 언젠가 채취할 수 없어 음식물이 부족한 시기에 보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딸기와 과실과 더불어 야생의 보리와 밀의 낟알도 주워왔다. 그 낟알을 저장할 때 우연히 땅 위에 떨어졌다. 떨어진 낟알 중 일부가 땅에서 싹이 텃다. 자연의 파종이 행해진 것이다.
처음에는 낟알이 땅에 떨어지면 낟알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낟알에서 난 싹과의 연관관계를 알지 못했다. 떨어진 낟알에서 싹이 트고 점차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인간은 계획적으로 낟알을 뿌리기 시작했다.
인간이 채집에서 파종으로 발전하는 순간이었다.
원시인들에게 낟알은 부활이었다. 신화나 전설은 말하고 있다. 기적에 의해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 낟알을 기념하기 위해 인간은 마지막 다발을 땅에 놓고 그 둘레에서 춤 추고 노래를 불렀다. 낟알의 부활을 축복하면서 언제까지나 인간에 대하여 이렇게 깊은 자비로움을 베풀어 줄 것을 대지에게 빌었다.
호전적인 사냥군이 양순한 목자가 되지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다. 목축과 농사로 인해 인간은 한층 자유로와지고 자연의 영향도 덜 받았다. 하지만 잡아 온 동물이 자라 몸집이 커지고 우유를 짜고 그 동물이 다시 새끼를 낳기까지 인간은 기다려야 했다. 나무의 씨가 땅에 떨어져 싹이 나서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따서 먹을 수 있을 때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했다.
사냥 대신 뭔가 키우는 일은 직접 동물을 잡고 식물을 채취할 때와는 다른 노동과 지식이 필요했다. 우리에 있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어야 했고 씨를 뿌리기 전 땅을 고라야 했다. 언제 해가 뜨는지 비는 언제 오는지 자연을 이해해야 했다. 효율면에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확량이 늘었다. 수확량이 늘어난 만큼 인간의 인구도 많아졌다.
사냥과 채집의 일 대신 목축과 농사는 또 다른 노동이 요구되었다.
목축과 농사는 인간의 일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생각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사람들은 자신의 먹이가 되어 준 들소나 곰에게 빌었다. 곰이나 들소가 자신들을 위해 희생된 것이라 생각했다. 곰이나 들소가 자신들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죽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고마워했다. 희생된 동물들이 자신의 정령이라 믿었다. 인간 스스로가 동물이 되어 춤을 추는 축제를 벌였다.
목축과 농사를 지으면서 인간은 새로운 신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인간은 대지와 하늘과 태양과 물에 풍작을 빌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신에게 새로운 이름이 붙여주었다. 그 이름은 자연에서 가져 온 것이다. 어떤 것은 '태양'이라 불렀고 어떤 것은 '땅'이라 불렀다.
이들 신들은 빛과 어둠을 베풀어 주고 비와 가뭄을 내려주는 자연이었다.
인간은 자연을 숭배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