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인정하는 나라에서 직장을 다니면 좋은 점
캐나다는 이민자의 나라라고 말한다. 실제로 캐나다 정부에서 실시하는 통계 조사인 인구센서스 결과 토론토에 거주하는 인구의 절반이 캐나다가 아닌 다른 나라 출신이라고 한다. 그만큼 다인종, 다국가, 다문화가 말 그대로 섞여 있다.
외국인인 내가 여기에서 살아가는데 이런 점은 플러스 요인이다. 스스로 느끼는 자격지심을 제외 하면 겉보기엔 이질감이 덜하다는 것. 한국에서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구분이 너무 쉽다. 그러다 보니 딱 선이 그어져 있다. 한국에서 10년을 살았다 한들 외부인이라는 편견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선 길을 걷다 마주치는 누구라도 외국인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 사람들의 피부색이 뭐든 어떤 옷을 입고 있든 무슨 언어를 사용하던 상관없다. 물론 나의 어설픈 영어를 보면 단박에 티가 나지만 이런 점은 확실히 초기 이주자에게 유리하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이 나라, 이 도시가 재미있다. 먹고 마시고 배우고 즐길게 무궁무진하니까. 거의 1년 내내 각 나라와 문화권의 축제가 돌아가면서 열린다. 서울은 이태원이라는 일부 지역이라고 하면 여긴 도시 전체라 그러하다. 이런 걸 가장 극적으로 느낄 수 있을 시기가 바로 전 세계적인 스포츠 경기가 열릴 때다. 나는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데 여기서 본 월드컵과 아시안컵은 어떤 경기보다 인상 깊었다. 왜냐고? 대회에 출전하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 출신이 한 데 모여있어 응원하는 재미가 있거든.
스타벅스에서 일할 때도 이런 대회는 주요 대화 소재가 된다. 월드컵 때 한 손님에게 한국이 어제 경기에 져서 슬프다고 하니까 괜찮다고 자긴 독일이라고 나라 망했다고 위로를 건넸다. 포르투갈 출신 친구와 경기 전에는 서로 눈치 보며 남모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결승전 때 하필 근무가 있었는데 내가 언제 아르헨티나 출신이랑 같이 경기를 보겠는가. (매니저가 폰으로 실시간 중계 틀어줘서 커피 만들면서 봤던 건 비밀). 워너비 팀이 레알이기에 메시의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대놓고 응원한 적이 없었지만 그래 오늘은 너를 위해 아르헨티나 사람 한다고 같이 웃고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진행되고 있는 유로와 코파도 마찬가지다. 캐나다는 의리로 다 같이 응원하는 것에 가깝고 각자 백그라운드 컬처에 속한 국가에 힘을 싣는 목소리를 낸다. 한민족이 자부심인 대한민국 출신에게는 이런 게 생소하면서도 정말 즐겁다. 이탈리아 출신 파트너와 튀르키예 출신 손님이 옥신각신 할 때 너네들이 우승하긴 힘들 거라고 웃으면서 약 올려 주기도 한다. 코소보 출신 친구가 스위스 국대에 자기 나라 사람들이 많다고 알려줘서 유럽의 복잡한 국가사를 처음 배우기도 했다. 잉글랜드 국기를 차에 달고 온 손님과 함께 한숨을 푹푹 내쉬며 경기력을 한탄하기도 하고 멕시칸 단골에게 너네 우승할 것 같다고 했는데 폭망해서 다음날 민망하게 웃기도 했다. 참고로 콜롬비아 출신 친구가 집으로 초대해 아마 결승전은 다 같이 바베큐 먹으면서 보지 않을까 싶다.
캐나다라는 나라가 지닌 이런 특징은 일 할 때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각 나라의 명절이 되면 서로 축하하고 세계 각국에 안 좋은 일이 발생하면 동료들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내가 근무하는 매장에도 나와 같이 외국인 신분이 서너 명 있고 대다수 시민권자지만 그들의 배경국가는 한 스무 개 국가 정도로 다 다른 것 같다.
스타벅스에서는 내부 교육이 주기적으로 진행되는데 가끔은 매장 전체 파트너들이 한날한시에 모여서 전체 교육을 하는 날이 있다. 으레 그렇듯 이런 날엔 업무를 대하는 태도 등을 서로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곤 한다. 조를 구성해서 대화하며 토론수업처럼 이어지는데 질문 중 하나가 '스타벅스의 어떤 점이 좋아서 여기서 일하는가?'라는 것이 있었다. 나는 그때 답을 ‘Diversity’라고 말했다.
“나는 스타벅스의 다양성이 좋아. 그래서 영어를 못하는 외국인인 내가 여기서 일할 수 있었지. 우리 매장엔 수많은 파트너가 있어. 이들은 백그라운드 컬처도 다 다르잖아. 종교나 성 정체성도 모두 제각기지. 그런데 다 같이 일하고 있고 아무 문제가 없어. 나는 그런 점이 좋아.”
너무 교과서적인 대답이지만 나는 정말로 그렇게 느낀다.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는 기업 리스크가 있긴 하지만 이 부분은 말단의 파트너들의 몫이 아니기에 제외하고자 한다.) 30년 넘게 다름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문화권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책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이렇게 살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된다.
실제로 출신 지역과 국가, 문화권에 따라 차별이 없다. 히잡을 쓰고 일하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종교나 건강의 이유로 식문화가 서로 달라도 아무도 눈을 흘기지 않는다. 나만 빼고 타투 한 두 개씩은 모두 있고 그게 노출되더라도 반사회적이지만 않다면 그 누구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불려질 수 있으며 성별도 마찬가지다. 주기적으로 LGBTQ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표할 수 있고 기업과 동료들도 이들을 지지한다. 난민 국가 출신 친구들도 동등한 대우를 받고 나 같은 외국인도 동일 임금을 받고 일하며, 은퇴 후 재취업을 한 분들도 있다.
일하는 직원뿐만 아니라 매장을 찾는 손님들도 다양하다. 장애를 갖고 있더라도 서비스견과 함께 하더라도 공사장에서 일하거나 조금은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고 있더라도,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라도, 어린아이를 동반하거나 나이가 많은 노인이라도, 오랫동안 앉아서 업무를 처리하거나 여럿이서 몰려와 회의를 하는 무리들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도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다.
이는 단순히 스타벅스라는 하나의 대기업의 문화만은 아니다. 사회적 시스템과 법규가 존재하고 이를 지키는 것이 의무인 나라이니 모든 사람에게 당연하게 여겨질 뿐이다. 다양성의 존중으로 인한 혜택을 받는 입장이 되니 나도 다른 사람의 다양성을 당연히 귀하게 여겨줄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커피를 마음껏 마시고 돈을 버는 것을 떠나 이런 사회문화 안에서 일하고 어울릴 수 있는 것 자체가 나는 참 좋다.
내가 한국에서 캐나다 이주를 고민할 때 참석했던 이민유학 관련 세미나 경험으로 마무리해볼까 한다. 워킹홀리데이 관련 주제를 다루면서 진행자가 이렇게 말했다. “서울의 스타벅스에 누가 봐도 티가나는 동남아 사람이 일하는데 그 사람이 한국말도 잘 못해서 주문도 제대로 못 받으면 손님들이 화가 많이 날 테고 그러면 그 사람은 아마 해고를 당하지 않을까요? 외국 가서 카페에서 일하며 현지 문화를 배우고 즐기면서 사는 낭만은 없어요. 영어 준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가서 고생만 하고 무시만 당하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랍니다”
언어가 중요하다는 의미의 그 말이 그땐 다 맞는 줄 알았다. 근데 그건 일부 한국인의 관점이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곳에선 서로의 다름에서 오는 약간의 불편함도 충분히 상쇄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있다.
캐나다에 대해서 물어보는 많은 분들께 영어나 영주권이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문화나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더 빨리 적응하고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꼭 말씀드린다. 그게 장기적으로 사회 안에 녹아들기 더 쉽고 그러면 좀 더 긍정적인 이민 생활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분이 수용 가능한 다양성은 무엇인가요? 어쩌면 그 다름의 인정만으로도 더 넓고 많은 경험을 하고 삶이 달라질 수 있을 거라면요?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꼭 캐나다에 한번 와보시길. 언제나 환영입니다. 오시면 말씀 주세요. 제가 커피 한잔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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