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론토 케빈 Jun 17. 2024

카페 일이 좋지만 커피 만드는 기계가 되고 싶진 않아

'열심히'와 '잘한다'의 기준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걸 배우면 바뀌는 것

캐나다는 한국에 비하면 뭐든지 참 느리다. 특히 공공기관의 일처리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한 가지 예로 정부부처의 온라인 서비스 이용을 위해 회원가입을 했는데 그 비밀번호를 우편으로 보내주는 나라다. 아니 분명히 인터넷에서 가입을 했는데 왜 비밀번호를 집으로 정성스레 보내주냐고요.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아왔던 나에겐 이러한 느림이 오히려 불편함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서의 거의 모든 순간들은 분주함과 바쁨의 연속이었다. 지하철을 타도 환승이 가장 빠른 칸을 골라서 타고 일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친구들을 만날 때도 항상 합리적이고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도록 특히 서로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이런 점은 카페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문하고 커피를 받는 그 찰나의 순간까지 1초라도 뒤로 미뤄지지 않길 바랐다. 점심시간에 오피스가 가득한 서울의 도심에 카페에 가면 항상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커피 곧 나오겠지. 지금 나올 타이밍인데. 혹시 주문이 안 들어갔나.' 불과 몇 분이 그렇게 초조했다. 왠지 나보다 늦게 주문한 사람 커피가 먼저 나오면 괜히 억울하기도 했다.



버릇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캐나다에 와서도 카페에서 주문과 기다림은 초조함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제 반대로 내가 일하는 역할이 됐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득 아닌가. '여기 사람들이 그러하듯 바쁘게 안 움직이고 내 페이스대로 하면 될 거야. 그래 좀 느리면 어때. 나도 맨날 커피 엄청 오래 기다렸는데. 캐나다 사람들은 아무도 재촉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지.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항상 엉망진창이다. 러시 타임 근무땐 우리는 음료를 찍어내는 기계와 다를 바가 없다. 시퀀스! 시퀀스! 시퀀스! 샷을 추출하고 스팀을 치고 그 사이가 아까워 기다릴 시간이 없다. 다음잔 준비. 또 준비. 얼기설기 절묘하게 엮어서 빈틈없이 착착착. 바쁜데 혼자 바 포지션을 볼 땐 머신 두 개 돌리고 콜드바 왔다 갔다 하면서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들기.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쁘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가끔은 진짜 생리 현상까지 참아가며 일을 할 때도 있었다. 일 이란 게 다 그렇지라고 생각하고 허덕이고 있을 때 몇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우선 같이 일하던 동료가 너무 힘들다고 잠깐 쉬고 싶다고 말하고 휴식시간을 갖는 거 아닌가. 어? 지금 주문이 스무 잔은 밀린 거 같은데? 아니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그런데 매니저는 또 오케이를 하고 그 자리를 자기가 메꾸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닌다. 갑자기 한 명은 화장실 간다고 하고 쓱 빠져나가더니 한참 후에 왔다. 나는 갑자기 혼란해졌다. 이 친구들이 절대 게으르거나 고의적으로 일을 회피한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왜냐면 진짜 누가 봐도 친절하고 손도 엄청 빠르고 내일 너일 안 가리고 열심히 하던 친구들이었으니까. 이러면 매니저한테 찍힐 텐데 혹시라도 인사평가에 불이익일 당하는 거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건 캐나디안이 아닌 나만의 걱정이었다. 그들은 다시 복귀했을 땐 누구보다 또 밝고 힘차게 일을 했고 아무도 그 전의 상황에 대해서 되묻지 않았다.


나는 한국에서 정말 짧게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데 휴대폰을 들고 매장에 들어가지 말라는 지시와 화장실은 근무 전에 가야 한다고 단단히 배웠다. 연말연시라 매일 손님은 가득 찼고 다들 휴식 시간이 뒤로 밀리고 조금씩 퇴근시간도 늦어지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 방식대로 캐나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너무 바빠서 매니저가 내 쉬는 시간을 깜빡했던 것 같다. 나는 당연히 바쁘니까 다 같이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동료가 갑자기 매니저한테 소리쳤다. "케빈 지금 이 포지션 맞아? 시작한 지 꽤 오래됐어!" 야 괜찮다고 원래 바쁠 땐 다 그래. 너도 일하고 있잖아. 나는 곤란한 표정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걸 들은 매니저가 호들갑스럽게 다가오더니 엄청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했다. "쉬는 시간 놓치면 안 돼. 그러니까 슈퍼바이저한테 얘기하고 꼭 챙겨! 지금 바로 얼른 쉬러 가!" 엥? 이 밀린 주문을 그대로 두고요? 그래 그랬다. 그들은 자신의 일은 최대한 열심히 하고 또 주어진 권리 또한 당연하게 이용하는 것 일뿐이었다.


시간제 근무자의 경우 근무를 펑크내면 그만큼 남은 인원들에게 과부하가 몰리고 그래서 아프거나 몸이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정말 큰 일 아니면 쉴 수 없는 구조로 돌아간다. 그런데 여기는 아픈다는 말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물론 내부 규칙은 있다. 일정 퍼센트 이상 근무에 빠질 경우 제재가 가해진다. 이 선을 넘지 않으면 특별한 이슈는 없다. 특히 아프다고 빠진 친구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일부러 자기 편의를 위해 그랬다고 넘겨짚지 않는다. 왜냐면 평소에 충분히 성실했으니까. 그리고 나도 아프면 쉴 수 있으니까.


그러면 갑자기 근무자가 빠질 경우 어떻게 대처하냐고? 우선 자발적으로 근무 가능한 다른 직원을 급하게 찾는다. 이것도 여의치가 않다면 매니저와 슈퍼바이저가 상의를 하고 주문 라인을 하나 닫아버린다.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을 막을 순 없으니 모바일이나 드라이브스루 중 하나를 차단하면 주문량이 줄어들고 남은 인원으로 최대한 소화할 수 있는 양만 감당한다. 심지어 내가 손님으로 간 다른 매장은 오늘 근무할 직원이 부족하다고 문을 빨리 닫는 경우까지 봤다. 한국사람 입장에선 이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안된다고 다른 사람들까지 다 안되라는 법은 없나 보다. 오히려 이들에겐 이런 조치가 'make sense' 할 뿐이다.   


한 번은 치과에서 잇몸치료를 꽤 심각하게 한 날이 있었다. 그다음 날까지 잇몸이 부어서 힘들었는데 나는 기어코 출근을 했다. 매니저가 그걸 보고 기겁하는 표정으로 힘들면 집에 가라고 하는데 나는 끝까지 일했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이 당연한 거라 생각했는데 이 친구들에겐 반대로 얼음찜질까지 해가며 일하는 내가 충격이었나 보다.


노동에 대한 몸의 반응은 나라를 바꾼다고 쉽게 변하진 않았다. 회사원 시절 매일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주말 근무도 자주 하고 남들 쉴 때 일하다 보면 법정 휴가에 대체 휴무까지 포함해서 차곡차곡 쌓여갔고 한 해는 그걸 다 합치니까 12월을 통째로 쉬어도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치켜세우고, 한편으론 독하다며 진저리 치고, 또 한 명은 미련하다고 혀를 차고 다른 이는 불쌍하다고 위로했다. 그때 나는 누가 뭐라 하든 그렇게 해야 내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 다른 나라에 와서도 그 방식대로 일했다. 이건 누가 시킨 게 아닌데 말이다. 내가 지레 단정 지으며 일한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매우 바쁘게 일한다. 하루에도 혼자서 수도 없는 커피와 음료를 만든다. 짧게는 4시간 길게는 8시간 넘게 일할 때도 있다. 그러면서 나는 여기서 또 하나를 배운다. 우리는 커피를 만드는 기계는 확실히 아니다. 솔직히 일을 시작하기 전엔 편견도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뭐든 느리고 대충 한다고. 그런데 이제는 ‘열심히’와 ‘잘한다’의 해석 차이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오버타임을 해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다. 전국 1등 바리스타만 잘한다고 평가받는 것이 아닌 그런 세상이었다. 이제는 나도 내 휴식시간을 찾아서 먼저 얘기한다. 매니저가 가끔 연장근무를 요청해도 오늘은 안된다고 단칼에 거절해 버린다. 근무 시간에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화장실을 후딱 다녀올 때도 있고 가끔은 급하게 걸려온 전화도 받고 사정이 있어서 조금 일찍 퇴근한다고 말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일을 대충 한다고? 그건 절대 아니다. 그 바쁜 와중에 손님들에게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묻고 처음온 손님들에게 음료를 추천해 주고 단골들의 저녁 메뉴를 골라주기도 한다. 동료들끼리 레시피 확인도 해주고 서로 놓치는 것 들은 없는지 서포트해가며 하루하루 바쁘고 살아가는 중이다. 

  

문득 떠오른 옛날의 기억 하나로 마무리 하려 한다. 한국에서 직장동료와 함께 카페에 간 적이 있었다. 역시나 초조하게 내 커피가 빨리 나오기만 기다리는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이렇게 바쁜데 저 많은 바리스타 분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움직이는 것을 보면 너무 프로페셔널하고 완벽한 합을 맞춘 예술 공연을 보는 것 같아서 오히려 더 차분해지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아요?” 나는 이해가 안 갔다. 그 당시에 나는 스스로를 일 하는 기계로 생각했으니 직장 동료의 눈처럼 카페 직원들을 바라볼 수 없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커피 한잔이 조금 늦게 나와도 덜 화가 난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던 것처럼 그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어차피 카페에서 이삼십 분 쉬다 갈 생각이었다면 내 커피가 조금 늦게 나왔다고 그 절대 시간은 변하지 않을 테니 조금 여유가 생겼다. 일을 대하는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진지하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고 잘 해내갈 거다. 다만 달라진 것은 나 스스로 나를 잘하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에서 오는 편안함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가열차게 하지만 조금은 평온하게 또 커피를 만들러 가야겠다. 


글과 함께 게재된 사진은 스톡 이미지를 사용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바리스타 이야기와 캐나다 일상은 인스타그램 @kevin_daybyday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전 04화 영어를 못하는 바리스타는 초과근무를 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