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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론토 케빈 Jun 03. 2024

영어를 못하는 바리스타는 초과근무를 합니다

30년 영포자의 좌충우돌 영어 이야기, 세상에서 영어가 제일 어려워요.

나의 캐나다 생활을 단어로 표현하면 ‘우당탕탕’이랄까. 처음 출발부터 딱 짜여진 점이 하나도 없었기에 경험하고 부딪히며 어렵지만 어떻게든 굴러가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래서 가끔은 더 느리고 여기저기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 요소 중 가장 큰 것을 뽑자면 아무래도 언어라고 할 수 있겠지. 모국어가 아닌 말을 사용하며 사는 건 정말 힘든 일 중 하나다. 그런데 반대로 말하면 이렇게 영어를 못해도 살아진다. 이것 또한 참 신기하지 않은가.


물론 영어를 잘하면 잘할수록 캐나다 생활에 엄청난 이득이 된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기회의 폭이 넓어지는 것. 외국이란 곳에서 움츠려 들고 폐쇄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언어일 텐데, 이 부분에서 자유를 얻으면 사람의 활동반경과 생활의 질이 변한다. 그래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영어가 무조건 첫 조건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왜냐면 내가 그랬으니까. 가족과 친구들 모두 나의 영어 실력을 걱정했다. 나 조차도 내 삶에 영어가 큰 자리를 차지할 줄 예상도 못했거든. 외국 나가보면 한국 사람 영어 못한다는 건 다 거짓말이라고 누가 그랬다. 여기서 만난 사람 중에 나보다 영어 못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진짜 엉망진창, 소위 말하는 영포자가 확실했다. 


내 인생에서 영어라는 벽이 생긴 결정적인 계기가 한국에서 다닌 첫 직장에서였다. 채용 단계 중 영어 그룹 면접이 있었는데 대본을 외워서 벼락치기로 준비한 나와는 다른 차원의 그들을 보면서 영어는 내 영역이 아니란 걸 뼈저리게 알았다. 나도 십 년을 넘게 영어를 공부했는데 이건 따라잡을 수 없는 갭이 존재한다는 걸 체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차라리 영어는 확실히 피하고 다른걸 더 잘하자고 마음먹게 된 듯하다. 그렇게 영어는 점점 나에게 더 멀어져 갔다. 하지만 나는 지금 캐나다에 와있고 이곳에서는 적당히 피하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기호에 따라 선택하는 옵션이 아닌 무조건 디폴트 값으로 설정된 세상에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다.   


아쉽지만 해야지 방법이 있나. 스타벅스 바리스타가 되면 현지 문화와 영어를 더 빨리 배울 수 있을까란 기대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러분 영어는 공부를 해야 발전합니다. 외국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절대 그냥 늘지 않습니다. 자꾸 듣고 익숙해지면 된다고 누가 그래. 다들 머리 싸매고 공부한 거 다 알아요. 그래서 제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네요.


한 번은 근무가 거의 끝나갈 무렵 매니저가 나에게 무엇이라 얘기를 하는 거다. 하루에도 몇 번씩 괜찮니, 도움 필요하니 이런 걸 물어보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대충 오케이와 예스를 외쳤다. 토요일 오후였고 점심시간을 걸쳐서 일하는 시간대였기에 빨리 끝내고 돌아가서 밥 먹을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났는데도 퇴근하라는 말이 없어서 계속 눈치를 보고 있는데 아뿔싸 왠지 느낌이 싸했다. 근무표를 보니 내 이름 옆에 연장근무 표기가 있는 것 아닌가. 아마 나에게 몇 시간 더 일을 해도 괜찮은지를 물어봤었을 테고 난 또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웃으면서 오케이를 한 거겠지. 그렇다 영어를 못하면 원치 않는 초과 근무를 할 수도 있다. 그 이후로 무조건 이야기는 끝까지 듣고 모르면 다시 물어본다. 그러면서 점점 쌓인 노하우는 영어를 똑바로 하는 것이 아닌 흘려듣고 그냥 지나쳐도 되는 것과 그랬다간 큰일 나는 것 정도의 구분 정도.


영포자에게 역시 언어는 스타벅스 생활 중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었다. 성격상 진득이 앉아서 공부할 타입은 아니니 우선 부딪히며 돌파구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영어를 잘 못하는 걸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하루아침에 내 발음이 원어민으로 될 순 없을 테니 금방 밑바닥이 들통날 텐데 애매하게 아는 척하기보다는 솔직하게 잘 못한다, 천천히 말해달라, 다시 말해달라, 이럴 땐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단어와 문장을 알려달라고 계속 그들 앞에 나섰다. 그러니까 오히려 내 뒤에서 의사소통이 안된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동료들 사이에서 유행어 중 하나가 Why인데 내가 궁금해도, 신기해도, 힘들어도, 어이없어도 맨날 와이? 와이?라고 하면서 동료들을 붙잡고 물어보니까 이제 친구들도 뭔가 자기 할 말들 다 하고 꼭 뒤에 와이를 붙인다. 이런 점이 참 재미있다. 아직도 친구들이 랩 하듯이 수다 떨 땐 하나도 못 알아 들어서 정신줄을 놓게 되지만 그래도 또 궁금하면 와이 와이 하면서 쫓아다니면 되지. 역시 무식하면 용감하단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 가 보다. 

혹시 나와 같은 수준의 영어구사자에게 작게나마 희망을 드린다면 어떤 영역이든 일 처리를 위한 영어는 반복 학습이 되기에 일반회화보단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는 점. 하나의 예로 손님들과의 대화는 70~80%는 비슷하게 흘러가 패턴화가 가능하다. 입력값이 예측이 되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백 번 똑같이 얘기하면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가끔씩 불만이나 예상 밖에 것을 요청하는 기출변형이 나오면 당황스럽지만 그땐 주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하고 거기서 표현 하나 정도 또 배워두면 나중에 써먹을 일이 생긴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시길.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수준으로 준비하고 캐나다에 오는 게 최상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지 못해도 뒤로 숨지 않길 바란다고 조심스레 말씀드리고 싶다. 이곳 생활에 대해 내게 물어보는 많은 분들에게 매번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어느 직종이든지 어렵더라도 현지업체에서 일해보길 추천한다는 점이다. 일단 뽑혔으면 당신을 책임지는 것도 회사의 역할이니까 영어를 못한다고 함부로 자를 수 없다. 스타벅스는 매니저와 정기적으로 업무 관련 면담을 하는 직원 관리 절차가 있다. 나는 혹시나 손님들이 나와 의사소통 문제로 더 좋은 서비스를 받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고 고민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그때 매니저가 처음으로 내게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우리 중에 음료를 가장 잘 만들고 손님들이 그걸 제일 좋아하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서비스가 뭐냐고 오히려 나를 다그쳤다. 그리고 네가 도전하고 우리와 함께 어울리며 즐거워하는 그 인생 스토리 자체에 항상 감동하고 있고 언제든지 너 편이 되어 줄 거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오히려 한국 회사에 머물렀다면 이런 귀한 경험을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나는 주로 말과 글로 돈을 벌고 살았다. 숫자나 도면으로 이야기하는 직업이었다면 오히려 언어의 한계를 인정하는데 좀 더 수월했을까. 수도 없이 써 내려간 기획안, 보고서, 홍보 문구들과 기사문. 남들 앞에서 내 주장을 발표 하고 언쟁하고 설득하고 그런 걸 업으로 삼고 살았다. 그런 내가 내 뜻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니 그 자괴감은 상당히 컸다. 너무 답답해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도 왠지 이것 때문에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쉬운 길로 갈 거면 한국에 남았을 텐데 어차피 어려운 거만 골라서 하는 인생, 이 또한 언젠간 지나가겠지 하며 버티고 버티는 중이다. 0에서 시작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 나가다 보면 1이 되고 2가 되고 또 평생 10점 만점은 못해도 중간은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구보다 크게 Hi How are you라고 인사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는 대신 내 마음을 전하려고 말 이외의 모든 것으로 표현한다. 그 들이 내 진심을 알면 발음 좀 구리면 어떠한가 그거면 된 거지. 그래도 공부는 계속해야 한다. 언젠가는 그들과 이런 과거를 웃으면서 편하게 술술 얘기할 수 있을 수 있는 날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이제 캐나다 온 지 3년 좀 넘었다. 캐나다 나이 이제 겨우 세 살인데 내가 아이를 키워보진 않았지만 원래 이 맘 때면 문장 구사능력이 아직 떨어지는 시기가 맞지 않는가. 영어 그까지 껏 좀 더 나이 먹으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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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kevin_daybyday 

- 생활정보: @kevin.toronto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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