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동화 <페퍼와 나>
제목: 페퍼와 나:나의 작은 딱지 이야기
글/그림: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어렸을 적 크게 넘어져 무릎에 어마어마한 상처와 피, 긁힌 자국이 난 적이 있다.
당시 통증이 상당해서 엉엉 울고, 그런 나를 붙잡고 엄마 아빠는 상처 난 무릎에 연고를 발라 주려 했다. 어린 나는 너무 아파 제발 만지지 말라며 손도 못 대게 했다. 그렇게 무릎에 상처와 끈덕진 연고가 섞인 채 울면서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상처 난 무릎에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었다. 일단 상처가 보이지도 않고 피도 멈췄으며 시간이 지나니 아프지도 않았는데, 문제는 그 붕대를 풀 때 일어났다. 제대로 씻어내지 못한 피와 연고가 붕대 헝겊과 달라붙어 비명을 지르며 떼어 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상처는 점점 아물고 붉은 새살이 나며 거대한 딱지가 단단히 엉겨 붙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상처와 딱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보았을 상처와 그 상처가 아문 과정의 이야기 말이다.
여자아이는 길을 가다가 넘어져 상처가 나고 만다. 피도 줄줄 흐른 채 집에 가자 아빠가 상처를 치료해 주며 곧 있으면 예쁜 딱지가 생길 거라 다독여 준다.
하지만 난생처음 생긴 딱지는 전혀 예쁘지도 않고 흉측해 괴물같아 보인다. 소녀는 자신에게 접착제처럼 붙어 있는 딱지가 떨어지길 바라지만, 녀석이 쉽게 사라지지 않자 이름을 붙여 준다. 페퍼라고.
그러고 어느 날, 그 딱지는 소녀에게 말을 건다.
“내가 떨어져 나갔으면 좋겠지?”
“당연하지. 제발 그래 줘.”
“미안하지만 기다려. 그런데 나한테 왜 그런 바보 같은 이름을 지어준 거야?
크리스탈이라든지 재지라고 부르면 좋잖아?….”
“네가 떨어져 나간다고 약속하면 네 마음에 쏙 드는 이름을 지어줄게.”
소녀는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딱지와 대화한다. 상처가 아무는 과정에서 생긴 못생긴 딱지에게 예쁜 이름을 지어 줄 테니 그만 떨어져 달라고. 하지만 역시 딱지는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다. 그리고 곧 그런 괴상해 보이는 딱지가 자기에게만 붙어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친구들에게도 크고 작은 딱지가 한두 개쯤은 달라붙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딱지가 붙어 있는 위치는 다양했다. 팔꿈치, 무릎, 허벅지, 얼굴 등등. 그렇지만 소녀는 여전히 자신에게 붙어 있는 딱지가 제일 흉측하고 무서워 보인다.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며 이상하게 공감되었던 부분 중 하나였다. ‘소녀가 자신에게 붙어 있는 딱지가 제일 흉측하고 무서워 보였던 일’ 말이다. 나 역시도 내가 받은 상처의 기억이 더 서글프고 서운했던 때가 있었나? 아이 방을 나와 불현듯 꺼내기 싫었던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대학생 시절,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갑자기 몸이 너무 안 좋고 어지럽고 아팠다. 다행히 아빠가 학교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편하게 자가용을 타고 집에 가게 되었다.
몸이 안 좋았던 나는 뒷자석에 누워 아빠가 운전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네, 여보세요?”
(사장님, 지금 어디세요?)
“아, 나 지금 여기 안성 쪽에 있다가 가는 길이야.”
(아, 안성에는 무슨 일로 가셨어요?)
“아… 그냥 여기 볼일이 좀 있어서… 잠시 들렀어.”
별것 아닌 업무 대화에, 당시에는 그저 그런 이야기로 넘겨버리긴 했지만 오래도록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건 왜였을까.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아주 작은 에피소드였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빠는 내가 다녔던 학교에 대해 약간은 창피한 마음이 드셨던 것 같다. 하지만 가장 꺼림칙했던 건, 말 한마디도 남기지 못한 채 스스로도 동조해 마지않는 나 자신을 향한 침묵 때문이었다. 제대로 씻어내지 못한 상처에 붕대만 칭칭 감아 봉합한 흔적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이상하게 걸리적거렸다.
결국 딱지라는 것도 제대로 치료가 되었을 때 덧나지 않고 생길 수 있는 친구라는 걸, 페퍼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야 주인공 소녀처럼 페퍼를 마주하며 이름도 붙여줄 수 있고, 마음껏 떨어지길 바라며 미워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서 페퍼는 어떻게 되었을까? 할머니와 할아버지 댁에 놀러 온 소녀는, 함께 따라와 붙어 있는 페퍼를 성가셔 하지만 딱히 친구가 없어서인지 페퍼에게 이런저런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일부가 되어 있는 페퍼가 익숙해지는데…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자고 나서 보니 늘 붙어 있던 페퍼가 없어져 있다. 소녀는 놀라 황급히 페퍼를 찾는다. 그때 침대 이불 틈에 떨어져 나간 작은 조각을 발견한다. 오랫동안 엉겨 붙어 떨어질 것 같지 않았던 딱지는 그렇게 살에서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는 조금은 다른 색으로 뒤덮인 맨들맨들한 새살이 돋아난다. 그렇게 페퍼는 제 역할을 다하고 소녀와 안녕한다.
상처는 흔적을 남기고 오랜 시간 우리를 성가시게 한다. 그렇지만 꼭 모든 상처가 나쁜 것일까? 우리는 반드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 아닌가. 정말 중요한 건 상처받은 뒤 우리가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아프다고 외면하지 말고 제대로 치료해야 하며, 딱지가 생기고 떨어질 때까지 잘 보살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우리가 받을 상처를 마주하고 새살을 맞이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지금도 나의 곁 어딘가에 떨어지지 못한 채 붙어 있는 딱지 조각이 있다면, 그 녀석에게 대화를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아프다고 회피하지 말고, 제대로 치료하고 새살이 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딱지를 마주해 보자. 슬그머니 말을 거는 나만의 페퍼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