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와 테디 임금>
출판사: 아가월드
글: 가브리엘레 키퍼
그림: 유르크 오브리스트(Jürg Obrist)
우리 딸에게는 애착인형이 없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에는 쪽쪽이를 16개월까지 애착인형처럼 물고 다녔는데, 쪽쪽이를 때고나서 애착인형 하나쯤은 생기지 않을까 했던 나의 생각은 빗나갔다. 우리 딸은 그 어떤것에도 애착을 갖지 않았다. 엄마로서는 왠지모르게 조금 아쉬웠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아이가 조금 불안해 하거나 울거나, 힘들어 할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역할이 애착인형이라고 생각했기에 때문이다. 혹은 또 다른 아이들을 볼때 몽실몽실하고 퐁당거리는 부들한 촉감의 인형을 들고 다니는게 어찌나 귀여운지, 우리 아이도 그런 귀여운 것을 들고다니면 얼마나 귀여울까 싶어 내심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육아란 언제나 그렇듯 엄마의 기대감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는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기에 스스로 원하는 대로 애착인형 따위는 관심조차 주지 않은 딸래미였다.
어쩌면 이 그림동화책은 그런 엄마의 마음에 약간의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제목은 <발레리와 테디 임금님>이다.
발레리는 처음으로 혼자서 할머니댁에 놀러가기로 한다. 엄마와 인사를 하고 자신의 가방에 잠옷과 칫솔, 좋아하는 그림책을 챙겨들고 당당하게 길을 나서는 것이다.
그렇게 집을 나서는데 길목에 임금님 옷을 입고 거만하게 앉아있는 테디를 만나게 된다. 테디는 발레리가 가지고 놀던 곰인형이다.
발레리는 테디에게 말을 건다.
"어이, 테디. 여기서 뭘 하는 거야?"
"널 기다리고 있었지. 설마 날 두고 혼자 갈 생각은 아니겠지?"
테디는 자신을 할머니 댁에 데리고 가라고 말한다. 발레리는 자신은 혼자서 할머니댁에 갈 만큼 컸지만 테디는 성에 사나운 늑대가 있을지도 모르고, 혹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데리고 가라고 설득한다. 발레리는 늑대나 성같은건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것이라 말하며 거절하지만, 계속되는 테디 임금의 제촉에 혹시 몰라 함께 하기로 한다.
할머니 집에 도착한 발레리와 테디. 테디는 빗자루를 들고 있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마녀라고 하면서 발레리에게 조심하라고 한다. 또는 식사를 준비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마녀가 우리를 오븐에 넣어 구우려고 한다며 말도 안되는 말로 할머니를 마녀취급 한다. 발레리는 그런 건 없다며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는 테디를 핀잔주고 나무란다.
급기야 지하실에 있는 세탁기를 보자 테디는 괴물이라며 조심하라고 언질하기도 한다. 발레리는 오히려 테디를 안심시키며 세탁기니 걱정 말라고 타이른다.
그렇지만 발레리는 테디 덕분에 심심하지 않다. 목욕을 하는 동안 알리바바와 사십마리의 테디 이야기를 들려 주는 등 발레리의 말동무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자 잠자리에 드는 발레리는 왠지모르게 무서운 생각이 든다. 방 안에 있는 물건들 모두가 괴물로 변해 달려들 것만 같은 착각이 일기 때문이었다. 그런 발레리를 향해 테디는 말한다.
"괜찮아, 발레리. 내가 여기 있잖아."
"맞아! 테디임금님이 있었지!"
잠이 든 발레리 침대 아래에는 대단한 전투가 벌어진다.
테디 임금님은 일곱개의 먼지 산 뒤에 숨어있는 일곱 마리의 커다란 쥐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렇게 발레리가 잠든 동안 테디는 용감하게 발레리를 지켜준다.
테디임금님은 옷만 임금님 옷을 입은게 아니라 정말 듬직한 왕처럼 발레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그 어떤 위협으로부터 발레리를 보호한다.
그리고 잠들기 전 물건들 사이사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그 어둠조차도 무서워 하는 발레리를 향해 단순히 두려움을 억압하는 것이 아닌, “괜찮을거야, 내가 네 옆에서 널 지켜줄게” 라고 말하며 두려운 감정 그대로를 수용해 주고 안도감을 심어준다.
발레리와 테디임금님은 어쩌면 아이들에게 읽히기 좋은 아주 평범한 동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한번쯤 애착 인형을 소지해 봤고, 또 이제 막 그 인형과 작별을 해야하는 과정을 겪는 어린 아이들에게 도전과 용기를 주는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는 어른 독자로서 발레리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웠던건 그림이었다. 신비롭지만 어딘가 그늘진 어둠속에 무언가 나올것만 같은 어두움이 공존하는 일러스트는 여러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어둠 속 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운 존재가 고개를 내밀 것도 같고, 홀로 할머니댁에 가려 했던 집 안의 어둠은 아직 맞딱드리지 않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묘사하는 것 같다. 이제 막 처음 나 홀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아이와 또 이를 읽어주는 어른 독자를에게도 두려움과 맞써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주는 테디 임금님을 기대하게 하기도 한다.
마치 나 역시도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앞서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잘 해내지 못하면 어떡하지”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 일어난 일이 테디 임금님을 더욱 생각나게 했다.
운이 좋게도 프리랜서 일을 집에서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기 앞서 아니 일을 시작해서도 나의 걱정과 두려움은 계속 되었다. 두 아아의 연이은 출산휴과와 육아휴직이 이어지면서 3년 넘게 멈추었던 일을 다시 시작하려니 좀처럼 손이 풀리지 않았다. 세상도 많이 변해서 새롭게 익혀야 할 툴과 AI를 다루는 방법도 터득해야 하는게 좀처럼 익숙하지 않기도 했다. 적잖은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일하는 내내 배도 고프지 않고 약한 위 장은 바로 비상신호를 받아들였는지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경우가 빈번해 졌다. 몸무게도 2kg이나 빠져있었다.
여전히 나는 성장하지 못한 아이처럼 두려워 했고, 그런 나를 지켜주고 응원해 줄 테디 임금님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는다면 의지해야할 애착의 대상은 내려놓아야 한다. ‘안녕’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의지하지 말란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성장해야 하니까. 의지의 대상이 인형에서 더 큰 존재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건 자신이 믿는 신앙일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일수도 있고, 또 내가 존경하는 멘토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의지의 대상을 통해서 나아가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일 것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발레리와 테디는 할머니 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목에 테디는 이렇게 말한다.
“발레리, 난 이제 떠나는게 좋겠어. 넌 많이 컸잖아. 하지만 걱정마. 네가 잠들면 언제나 침대 밑에서 널 지켜줄게.”
테디는 이제 많이 커버린 발레리에게 심심한 인사를 건낸다. 이제는 네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며 안심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늘 돌아올 자리를 남겨둔 것처럼 네가 필요할때 언제나 네 옆에서 널 지켜줄 것이라 당부한다.
우리에게도 테디 임금님과 같은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 무섭고 두려운 일이 닥쳐도 우리를 지켜주고 지지해주고 돌봐줄 테디 임금님 말이다. 어딘가 숨어 있지만 우리가 필요할때 나타나 “내가 항상 옆에 일을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켜 주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하는 사람은 애착인형에만 갖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발레리가 홀로 집으로 돌아갔듯이, 우리 모두 결국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믿어야 한다. 홀로서는 힘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모든 어려움과 두려움을 이겨낼 힘이 우리 안에 숨어 있을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그것을 알기 전까지, 그래 그때까지만 테디 임금님의 도움을 받자. 그림자에 드리운 어두움을 마주 볼 용기를 얻게 되기까지 딱 그때까지만.
나의 영원한 테디 임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