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때굴짱 Mar 27. 2024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3화>

덜 먹음으로 인해서 건강을 되찾기

아내는 종종 말하곤 했다.

"당신은 남 얘기를 참 안 들어. 그리고 참 고지식한 사람이야."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건  바로 아픔이 지속되고 나서면서이다.


24시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지속된다 건 불편함에서 불안함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설마?'라는 의심에서 '혹시나?' 라며 구체화되었고, 대놓고 죽음까지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자식들과 전업주부인 아내가 살아가는 미래에는 내가 없는 상상을 종종 하기도 했다. 죽었을 땐 걱정을 하지 않을 테니 살았을 때 미리미리 걱정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가끔 농담조로 아내에게 말하는데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해야 하지 않겠어? 나 없으면 당신이 아이들 책임져야지?" 답변은 어김없이 "그때 되면 내가 알아서 할게!"  


듣기 싫다는 답변이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걱정을 걱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아내가 고맙기도 하다.

걱정되지 않도록 건강을 챙기면 될 것을 말이다. 



내가 고지식하다는 아내의 말을 곱씹게 되면서 일부는 부연설명이 필요한데, 한창 공부한다고 다들 바쁜 학창 시절에 세상에 무관심한 채로 살아가다가 군대 전역 후, 세상에 내동댕이 치듯 나와보니 나 자신은 쪽팔림 투성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한창 밑바탕이 부족했던 내가 남들을 따라잡으려면 그동안 허송세월을 보낸 시간만큼이나 더 뛸 수밖에 없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동료들보다 절반의 노력을 더했던 결과는 빠른 진급과 보수로 대우받았다. 그렇게 10년 20년을 지나오면서 굳어진 믿음이 아니었을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고지식에 둘러싸인 나를 말한다면 보는 시각에선 조금 차이가 있을 것이나 할 말은 없다. 그래도 누군가는 말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노력해야 한다는 말, 노력하게끔 잔소리도 하고, 혼내기도 하고, 그래야 나 자신도 허투루 살지 않게 될 것 같고 말이다. 


놀 것 다 놀고 즐길 것 다 즐겨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믿음이 나를 고지식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통증은 잔소리와 달리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려버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멈추게 만들고 싶었다.

당시 아내는 만보 걷기와 물 1.5리터를 마시기 실천하면서 나에게도 권유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만보 걷기는 좋은 걸 알겠고, 물은 목이 마를 때 마시는 거 아닌가? 커피와 녹차 자주 마시는데." 라면서 답했다가 역시나 카페인이 위 건강에는 최악이라는 잔소리를 계속해서 듣는 중이었기에 끊지 않을 수가 없는 시점이었다. 더 중요한 조언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가짜 배고픔"이란 말이었다.


우리 뇌는 지속적으로 영양분을 흡수하도록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낸다는 말을 들었다. 육체 노동자가 아닌 이상, 삼시 세 끼를 꼬박 잘 챙겨 먹는다면 굳이 간식을 먹지 않아도 되며, 아내의 말처럼 배고픔 알람이 울리면 맹물을 두 세 컵 마셔보라는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삼시세끼 정해진 식단 // 식사 이외에는 일체 음식을 중단 // 하루 1만 보 걷기 // 술 금지 등등


해야 할 것보다 오히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많아서 큰 부담은 없었는데, 술자리에서 음료수만 마시는 건 정말 곤욕이었다. 당분간 술자리를 피하게 된 건 상대방 역시 불편함을 갖는다는 걸 인식하면서이다. 친구들은 술 안 먹는다면서 오히려 화를 내었고 "위궤양은 알코올로 소독해야 한다"는 되지도 않는 말은 혀가 꼬여, 헤어질 때까지 반복했다.


그렇게 식단관리 1일 차를 시작하면서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혼자 하면 실패할 것 같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알리면 나 역시 오래도록 붙잡아 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1일, 10일, 20일, 30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적어 내려갔다.


한 달이 되어갈 즈음 위통증은 놀라울 만큼 줄어들었고,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었다. 바로 블로그 포스팅! 즉. 글쓰기였다. 아내는 10년 넘게 블로그를 운영한 전문가였고, 이제 막 시작한 나는 아내에게 스파르타 1:1 교육을 받기도 했다. 부부끼리는 운전 연습 가르치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조금은 이해가 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그렇게 40대 중반에 아픔을 통해서 나의 습성을 알아가며 새로운 취미까지 갖게 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끝>

작가의 이전글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나 여러 검사는 죽을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