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시움이란 영화가 있다.
황폐해진 지구에는 돈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돈많고 권력있는 사람들은 엘리시움이라는 우주정거장같은 새로운 유토피아에서 살아간다. 엘리시움에서는 쾌적하고 풍요로움이 넘치며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주인공인 맥스는 로봇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데 팔이 불편하다고 임금을 깍고 사람대접을 해주지 않는 환경이다. 특히 작업판때문에 기계작동이 멈추자 잘리기 싫으면 들어가서 직접 치우라는 지시를 받는다.
작업판을 치우던 맥스는 방사능에 노출되고 5일 후 죽을 운명에 처한다. 그러나 회사는 그동안 수고했다며 진통제만 처방하고 해고해버린다.
이 영화의 배경은 2154년이지만 벌어지는 일들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도 닮아있다.
최근 낮은 임금과 인력부족으로 2인1조 작업 대신 혼자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다 젊은 청년이 사망한 사고나 특성화고 실습생들이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가 사망하는 사고들이 발생했지 않나.
직업 특성상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데 취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씁쓸할 때가 꽤 있다.
학교에서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일터에 아이들을 취업시키는 경우가 많아 불만이라고 했다. 심지어 같은반 친구가 취업나갔다가 구타를 당해 그만둔 회사에 일주일 후 다른 친구를 보내기도 한단다. 물론 모든 학교가 그렇지는 않지만 원치 않게 안전하지 않은 열악한 일터에 내몰린다는 그 자체가 문제다.
심지어 빠른 취업을 위해 특성화고를 선택한 적지 않은 친구들이 가정형편이 어려워서였다.
한 편에서는 돈이 없으면 생존권마저 빼앗기고 더 열악하고 더 위험한 일자리로 내몰린다. 안전장치조차 갖춰지지 않거나 생산량을 위해 절차를 생략하고 위험으로 내몰린다.
다른 한 쪽에서는 돈이 많아 갑질을 하며 그 권력과 재력을 세습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돈이 많고 부유할 수는 없다.
모두가 같은 일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누구든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곳에 내몰리게 해서는 곤란하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는 공장가동을 멈춰달라는 유족의 주장은 묵살된 채 공장은 다시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물건을 찍어내고 있다는 기사가 씁쓸하다.
물건은 다시 찍어내면 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인생을 노동과 맞바꿔
삶을 살아내려는 성실한 누군가이고,
월급을 받아 키워준 부모님께 적지만 용돈봉투를 드리고픈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 딸이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밤낮 마다하지 않고 일터로 나온 누군가이다.
그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누구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인간은 교체해 버리면 그만인 소모품이 아니니까.
심장이 뛰고 행복을 추구할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