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남부 중소도시였다.
랭킹 좋은 대학도 있고 아닌 대학도 있고 이런저런 종류의 대학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도시였다.
그 도시에 있던 어느 대학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혹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각기 다른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와이나 알래스카에서 온 학생도 있었고 중국, 남아공, 심지어 지도 어디쯤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는 나라의 '난민' 출신의 학생도 있었다.
일 년에 한 번이던가 학기에 한 번이던가 '인터내셔널데이'라고 이름 붙여진 행사가 열렸는데
이런 행사를 너무너무 싫어하는 나로서는 행사 자체만으로도 두통이 일어난다. 심지어 이날엔 각자 자기 나라의 고유 음식을 하나씩 가져가야 하는 룰이 있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나는 냉동만두를 거의 튀기다시피 바삭하게 구워 큰 트레이 하나 가득 가져갔다. 언제나 내 만두(시판용 냉동만두)가 가장 빨리 동이 났고
다른 한국 학생들이 가져온 그들의 야심찬 잡채(촌에 사는 미국 사람들은 참기름 냄새 싫어함)나 야심찬 소불고기(촌에 사는 미국 사람들은 'x'처럼 생겼다고 싫어함) 또는 야심찬 김치(촌에 사는 미국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냄새) 등은 거의 인기가 없어서 파티 막판엔 한국 학생들끼리 모여서 열심히 처리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런 행사나 팟럭 파티에서 가장 빨리 음식이 팔려 나가려면 뭐니 뭐니 해도 '마트에서 구입한 음식'을 가져오는 게 제일 안전하다.
그 누가 팟럭 파티에 내가 가져갔던 음식이 인기가 없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꼴을 보고 싶겠는가.
이런 행사의 끝은 꼭 몇몇 학교 관계자들의 연설로 막이 내리게 된다.
글의 서두에 밝혔듯 이 학교는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동과 남이 섞인 위치.
뉴욕이나 보스턴 같은 말을 쓰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플로리다나 앨라배마 같은 말을 하지도 않는 그런 악센트를 쓰는 동네였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악센트의 영어를 들으며 절반은 알아듣고 절반은 날리고 혹은 통으로 못 알아듣기도 하고 그러면서 앉아 있었는데 그때!!!
청중석에서 누군가가(남자였음) 정말로 외계언어 같은 말을 코맹맹이 소리로 엄청 크게 하면서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껄껄껄 웃었다. 그 남자의 주변에 있던 두어 명이 같은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는 그 남자가 한 말을 단 한 단어도 알아듣지 못했다. 솔직히 영어인지 아닌지도 분간하지 못했다.
그때, 보았다. 그리고 들었다. 내 앞줄에 앉아있던 두 여자- 미국 중년 아줌마-들의 대화를.
"뭐야? 왜 저래? 뭐라는 거야?"
"워워. 쟤네 텍사스 출신이래. 그래서 그래."
두 여자는 나름대로 목소리를 낮춰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지만 남 흉보는 이야기는 내 나라 말이 아니어도 얼마나 잘 들리던지. 나는 똑똑히 들었다.
부산 사람이래요
광주 사람이래요
이런 것과 비슷한 말을 미국에서 생생히 듣고 있자 하니 사람들은 사는 게 다들 거기서 거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