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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Aug 15. 2024

기도할 때 손에 쥐는 호두

prayer nut

‘nut’ 이라고는 이름 붙었지만 진짜 호두는 아니다. 나무다. 조각이다.

크기도 호두보단 조금 크다. 그러나 아주 약간만 크다.

그 작은 공간에 예수님 일생을 담아 조각을 해놨다.

반으로 또각! 열면 한쪽엔 탄생, 한쪽엔 십자가와 부활, 승천까지 새겨 놓았다.

피에타. 마리아의 표정이라든가 옆에 선 사람들의 콧대, 옷주름 등등을 보면 넋을 잃게 된다.


과연 이것을 기도할 때 열고 하는 건지 닫고 하는 건지.  

내가 저것의 주인이라면 열고 하련다. 너무 경이로워서 기도가 술술 나올 지경이다.

기도가 끝난 후 다시 또깍! 맞물려 닫으면 손바닥 안에서 또는 호주머니 안에서 언제나 만지작만지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이 언제나 내 손바닥 안에서 내 주머니 안에서 나와 함께 하면서 나를 지켜줄 거라고 굳게 믿을 수도 있었을 것만 같다.

13-4세기 옛날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2024년 지금도 저런 물건은 매혹적이다.

혁신의 대표주자인 '아이폰' 보다도 이런 것이 몇백 배 놀라운 인간의 창작물이라고 생각한다.

몇 날을 몇 달을 공들여 조막만 한, 호두만 한 조각을 거의 완성하던 중 글자 하나가 똑 빗나갔거나 부러졌다고 상상을 해보자. 이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아픔이다. 상상하기도 싫다.

하지만 분명히 저걸 만들던 중 누군가는 겪었을 아픔이었을 것이다.


올 초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저것을 보았다.

박물관 안에는 더더더 대단한 물건(남의 나라에서 아예 통채로 떼어온 건물들)들도 많았지만 내가 가장 긴 시간 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본 물건은 바로 저 '기도자의 호두'였다.

저 호두(?)는 기도할 때 쥐고 하는 사람에게 은혜로운 물건이라기보다 저것을 만들어낸 목공 장인의 조각도 끝, 머리털만큼 가느다란 톱날 등에  목공의 떨림과 조마조마함과 기도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저것을 지체 높으신 어느 귀족이나 성직자가 구입하지 않더라도 만드는 과정 자체로 prayer의 본분 자체를 완수한 그런거 말이다.

세상엔 참 신기한 물건이 많다.

나도 하나 갖고 싶다. 갑자기 호두과자도 몇 알 먹고프다. 결말 참 저렴하다.


조각하다가 또깍! 부러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아... 저렇게 잡는 거구나
기도자의 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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