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을 묵힌 책
나는 작년 가을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마치 내가 잘 아는 어떤 사람의 일처럼 기뻐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물론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에 기뻐하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나는 이상하리만큼 그녀의 수상이 기뻤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한강의 책은 '채식주의자'였다. 2016년이었을 거다.
나에게 작가 한강에 대해 알려준 사람은 30대 초반 미국여자였다.
나는 그녀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주일에 이틀 정도 만나는 사이였다.
그녀는 나에게 맨부커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며
'올해는 한국 여자가 상을 받았다던데, 그 작가가 한국에서 유명해?'라고 물었다.
작가 한강에 대해 금시초문이었던 나는 솔직하게, 조금 뭐랄까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난 그 작가에 대해 아는 게 없어.'라고 대답했었다.
나는 채식주의자를 냉큼 구해서 읽었다. 그리곤 또 한강이라는 작가를 잊어버렸다.
2024년 가을.
한강의 '소년이 온다' 노벨상 수상에 한껏 들뜬 나는 결심했다.
올해 고마움을 전할 분들에게 드릴 땡스기빙 선물은 '소년이 온다' 한글판과 영문판을 세트로 묶어서 하는것으로 정했다.
나는 크리스마스 때는 선물하지 않고 땡스기빙 때 선물을 하는 걸 좋아한다.
한글판은 어차피 한국에서 배송을 받아야 하니 온라인으로 주문을 해서 기다리기로 했고
한국에서 배송받을 때 한강의 다른 책들도 같이 주문했고 심지어 한강이 썼다는 동화책도 주문했다.
영문판은 직접 서점에 나가서 실물로 구하기로 마음을 먹고 미국판 교보문고 'Barnes and Noble'로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날 반즈 앤 노블에서 'Human Acts'를 단 한 권도 구입하지 못했다.
뉴저지 주변 고급 쇼핑몰 안에 위치한 반즈 앤 노블이었으나
작가 한강으로 검색되는 책은 채식주의자밖에 없었다.
실망을 안고 40분 떨어진 다른 반즈 앤 노블로 갔지만 (거기도 유명 주립대 근처) 거기도 없었다.
나 대신 검색을 해주겠노라 자청하던 서점 직원은 "한? 성이 한이란 말이지? 음... 중국인인가?"라고 말해서 나의 심기를 더더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는 Human Acts를 그냥 아마존에서 주문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배송받은 '소년이 온다'와 결합을 시켜서 몇몇 분들에게 선물했다.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도 한국어책을 선물했다. 한글은 이렇게 생겼어. 알려주고 싶었다. 그들은 나에게 고마워했다.
그리고 나와 내 아이를 위해 한 권씩 남겼다.
야무지게 12월에 읽어야지 생각했었다.
혼돈의 12월. 그리고 이후 혼돈의 6개월.
나는 소년이 온다만 빼고 다른 책들은 다 읽었다. 까닭은 설명할 수 없다. 이 책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러다가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집중해서 다 읽었다.
책의 절반은 동네 퍼블릭 도서관에서 읽었고
나머지 절반은 집에서 에어컨 바람이 가장 시원하고 상쾌한 아이의 방에서 읽었다.
몇 날 며칠 질질 끌지 않고 이틀 만에 집중해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읽고 작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적이 별로 없는데 나는 왠지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깨끗하고 조신하게 잘 읽고
얌전하게 아이의 책선반에 올려 두었다.
제 6장. 꽃 핀 쪽으로. The Boy's Mother.
그 부분의 영어 번역이 너무너무너무너무 아쉽다.원문인 한글에서 주는 그 지방 언어색이 드러나질 않으니. 얼마나 원통 절통한지 모르겠다.
텍사스 사투리나 버지니아 사투리로 쓸 수도 없잖은가.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