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소장 Apr 19. 2023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도시, 스트라스부르

쁘띠 프랑스 그리고 노트르담 대성당

 로맨틱했던 파리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몽마르뜨 언덕, 센강, 오르세 박물관, 에펠탑, 야경 그리고 맛있는 요리 등 기억에 남는 모든 것이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파리를 떠나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드넓은 초원과 맑은 하늘이 펼쳐졌습니다. 파리에서 켜켜이 쌓인 추억을 그 위에 그리며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프랑스 동부지역에 위치한 ‘스트라스부르’로 갑니다. 유럽 여행에서 만난 첫 번째 나라, 프랑스의 마지막 하루를 보낼 곳입니다.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 도시는요. 우리나라에선 <꽃보다 할배> 촬영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그램에서 이순재 선생님이 ‘노트르담 대성당’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웅장한 대성당의 모습과 아기자기한 장식물이 아름다웠거든요. TV로만 봤던 노트르담 대성당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 숙소까지 4시간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장거리 이동으로 온몸이 찌뿌둥했습니다. 숙소에 들어가 눕는 순간, 다음 날이 될 것 같아 캐리어만 던져놓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지친 몸으로 만난 스트라스부르는 파리와는 다른 세계였습니다. 화려했던 파리 시내와 달리 스트라스부르의 거리는 한적하고 조용했습니다. 숙소 앞에 흐르는 강과 평화로운 공원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줬고요. 바쁜 여행 일정에서 한 템포 쉴 수 있는 안락한 도시였습니다.

 대성당으로 가는 길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강변을 따라 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초록초록한 공원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았습니다. 땀 흘리는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산책하는 강아지도 만났습니다. 잔디밭에 앉아 책을 보는 주인 옆에 엎드려 달콤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조용하고 안락한 마을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잠을 자는 개를 보니 너무 부러웠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스트라스부르에 사는 개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모든 개가 이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세상에 나쁜 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쁘띠(Petie)’는 프랑스어로 작고 귀여운, 혹은 예쁜 것을 뜻합니다. ‘쁘띠 프랑스’는 작고 귀여운 프랑스라고 이해하면 되겠네요. 골목에 들어서자 동화에 나올법한 마을이 나왔습니다. 스트라스부르의 명소 쁘띠 프랑스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운하가 마을 중심을 지납니다. 운하를 따라 산책하기 좋다는 글을 보고 실천하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멈춰서 운하를 향해 휴대폰을 들이밀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살펴봤더니 건너편 다리가 옆으로 열렸습니다. 그 사이로 유람선이 미끄러지듯 통과했습니다. 진귀한 풍경이었습니다. 파리 센강과 비슷하죠? 센강처럼 유람선을 타고 마을을 누빌 수 있답니다. 말 그대로 ‘작은 프랑스’였습니다.

 만약 ‘아기자기’라는 단어가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면, ‘쁘띠 프랑스’가 되었을 것입니다. 벽돌로 만든 건물들은 작고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각 건물마다 색상이 다르고, 저마다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고 귀여운 모습이 마치 조각상을 보듯 했습니다. 지붕도 특이했답니다. 각기 다른 모습을 한 건물에 맞게 이국적인 감성을 자아냈습니다. 붉은 지붕과 흰 벽돌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작품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보던 나무 창문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양한 건축 양식들이 어우러져 있는 풍경은 한국에서 느끼지 못한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쁘띠 프랑스’는 이름값에 걸맞은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이 모든 것이 모여 골목을 형성했고요. 하나의 골목을 지날 때마다 하나의 미술관을 지나온 것 같았습니다. 작은 마을의 아름다움은 세계적인 작품 속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쁘띠 프랑스의 아름다운 건물과 동네 모습을 배경으로 제작됐습니다. 작품에서 나오는 건물의 색감, 지붕,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운하 등 많은 부분이 애니메이션 속 장면과 닮아 있습니다. 자신이 찍은 쁘띠 프랑스 사진과 애니메이션 장면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많은 작품에 영감을 줄 수 있는지, 또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서 그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는지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마을에서 받은 감동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냉장고에 붙일 수 있는 자석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름답고 아기자기했던 건물과 달리 뭔가 조잡한 느낌이었습니다. 치킨집 전화번호만 가득한 우리 집 냉장고와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인형도 있었지만, 제 감성이 아니었습니다. 쁘띠 프랑스라고 적힌 에코백도 눈에 차지 않았습니다. 구석에 뜬금없이 걸려있는 한 용품에 눈길이 갔습니다. ‘이게 왜 여기서 나와?’라는 생각으로 집어 들었는데, 다름 아닌 피임용품 ‘콘돔’이었습니다.

 16세기 초, 유럽 전역에 성병이 창궐합니다. 알자스 지역 또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성병 환자들은 강물에 둘러싸인 병원에서 격리되어 치료를 받는데, 그 병원이 있던 자리가 쁘띠 프랑스입니다. 추측건대, 이런 연유가 있어서 매대에 걸려있는 거 아닐까요? 어차피 저는 쓸 일이 없어서 가게를 빠져나왔습니다.

 대성당을 찾는 일은 간단했습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면 뾰족하게 솟은 건물이 보입니다. 빅토르 위고가 극찬한 바로 그곳, ‘노트르담 대성당’입니다. 건물이 높아서 어디서든 성당 꼭대기가 보입니다. <파리의 노트르담>이란 빅토르 위고의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 속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쁘띠 프랑스를 내려다보고 있는 성당도 노트르담 대성당입니다. 서로 다른 곳입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스트라스부르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알고 있으면 혼동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이어나갈 이야기 속 ‘노트르담 대성당’은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대성당입니다.


 골목 사이로 노트르담 대성당이 훤히 보였습니다. 거대한 대성당은 마치 골목을 열고 나오는 듯 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붉은 사암으로 만든 벽면에서는 금색 빛줄기가 춤추는 듯했습니다. 웅장한 모습과 금빛이 어우러져 신비한 느낌이었습니다. <꽃보다 할배> 장면처럼 대성당을 올려 봤습니다. 위엄 있는 자태가 시선을 사로잡고요. 자연스레 두 손을 모으게 만들었습니다.

 멀리서 대성당을 바라보면, 선이 굵고 장엄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가까이서 보면 외벽에 있는 섬세한 조각과 무늬가 눈에 들어옵니다. 정문 스테인드글라스 위에 있는 조각상은 서로 다른 모습입니다. 쁘띠 프랑스에서 만난 건물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각각의 조각상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맞이해 줬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바탕으로 조각상과 스테인드글라스를 구성했습니다. 성당을 비추는 햇빛과 만나 몽환적인 느낌이 났습니다.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쏟아지는 햇살이 스테이드글라스를 통과하여 사람들 머리에 내려앉은 모습을 보니 성령이 충만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성당에서 예배를 하면 어떤 기분일지, 저도 잠시 자리에 앉아 기도했습니다. ‘프랑스 여행이 더욱 풍요로워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잘 보살펴주세요.’라고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대형 시계 앞이었습니다. 12시 30분이 되면 종이 울리거든요. 이때 예수와 제자들 인형이 나타납니다. 저는 오후 늦게 입장해서 아쉽게 보지 못했어요. 숙소에 들어와 유튜브로 찾아보니 앙증맞은 인형극이 펼쳐집니다. 또 다른 정보를 알려드리자면, 성당 내부에 ‘강아지’ 조각이 있습니다. 이 강아지를 만지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합니다. 꼭 찾아서 인증샷과 함께 소원도 빌어보세요. 구석구석 돌아다녔지만 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름다운 도시에서 많은 감동을 받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굳이 강아지를 찾지 않아도 스트라스부르에서 이뤘습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또다시 노트르담 대성당을 마주했습니다. 낮의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환상적인 야경으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어둠이 대성당을 가로막아도, 그 안에 담긴 놀라움과 아름다움은 언제나 빛나고 있었습니다. 스트라스부르에겐 미안하지만, 큰 기대 없이 잠깐 쉬어 가는 도시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트라스부르에서 만난 모든 것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일찍 자고 내일을 준비하려 했는데, 야경까지 보게 만든 감동적인 도시입니다. 프랑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을 스트라스부르에서 보낼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프랑스 여행의 마무리를 행복으로 매듭지었습니다.

Au revoir France.

이전 03화 에펠탑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