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사수

by 스윗스윙

2012년 입사해서, 4년 좀 더 넘게 회사를 다녔다. 지금도 취업난이 심하지만 이 힘든 취업난에 대기업에 들어갔으니 어깨에 힘이 잔뜩 실렸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월급에 상여금 성과급까지 학생 때 만져보지 못한 돈이 통장에 꽂혔다. 애사심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열심히 일하고 차도 사고 집도 사고 효도도 해야겠다는 목표도 생겼다. 동기들이 생기면서 간간이 만나서 모임도 가지고 점심 먹고 카페 가서 커피도 한잔 마시고, 회사생활이 너무 즐거웠다. 정규 교육과정을 잘 마치고 취업까지 했으니 딱히 걱정이라고는 없었다. 일하면서 받는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다.


사수가 좀 특이한, 괴짜이긴 했다. 야망에 이글거리는 이 사수는 사장이 꿈이다. 신입 한 달 차,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는데 어느 날 나를 조용한 회의실로 불렀다. "여기 사람들 다 일하는 거 보이지. 그렇게 혼자 가버리면 다들 안 좋게 봐." 난 정말 내 일을 다 끝내서 가는 건데, 왜 눈치를 주는 거지? 더군다나 다른 선배들은 잘 가! 하고 쿨하게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은데. 짜증이 좀 났다. 자기가 내 월급 주는 것도 아니면서 별꼴이다. 하루는 칼라로 보고서를 출력해야 하는데 프린팅이 잘못되어 다시 출력을 해야 했다. 그걸 보더니 사수는 말한다. "이거 칼라 프린트 돈이 얼만데, 월급에서 까야겠네." 이걸 들은 비서 언니들이 저 사람도 다시 출력 많이 하는데 왜 저러냐고 뒤에서 말해준다. 회사생활이 좋았는데 점점 짜증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사수는 곧 다른 나라로 파견근무를 간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참자고 위안을 삼고 지내는데... 나도 같이 파견을 가게 되었다.



중동으로 파견 가서 한 달은 적응을 위해 주 7일을 일해야 한다고 했다. 뭐 재수할 때도 했는데 못하겠어. 주 중에 12시간 정도 사무실에 있다가 주말에 5-6시간 또 나가려니 정신이 몽롱했다. 어릴 때부터 한약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체력은 오히려 괜찮았는데, 계속 루틴 한 생활패턴을 집약시켜서 몰아치다 보니 뭐랄까 그냥 멍-했다. 그렇게 한 달 의무기간을 보내고 맑은 정신을 찾기 위해 일주일 중 하루는 나가지 않는 것을 택했다. 대신 주 중에 맑은 정신으로 효율성 있게 일해야지! 하지만 이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주 중에 매일 12시간 딱 채우고 퇴근하려는데 또 사수가 회의실로 부른다. "여기 사람들 다 늦게까지 일하잖아. 윗사람들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안 좋게 보고 있어. 고과에도 반영될 거야" 난 입사 1년 차에 내 롤은 12시간 안에 끝나서 갈 뿐인데, 자꾸 눈치 보고 남으란다. 사실 나에게 고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 시간이 더 소중했다. 의미 없이 사무실에 눈치 보고 앉아있는 시간은 고과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내 시간이다. 도대체 이 사수는 12시간 동안 무엇을 하길래 그렇게 남아 있는 것이지? 출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네이버로 기사를 쫙 훑는다. 댓글도 보는 것 같다. 올림픽 기간이 되니까 빙상경기를 회사에서 유튜브로 보고 있다. 축구 시즌엔 옆에 화면 띄워놓고 축구도 본다. 꼼꼼하게 하이라이트까지 챙겨본다. 간혹 인터넷 쇼핑도 하고 있다. 휴가 기간이 다가오면 여행지를 알아보고 비행기랑 호텔을 검색한다. 한 3-4시가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일을 하려고 준비를 한다. 저 사수은 보통의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나 보다.


다행인 것은 부장님은 내가 일하는 방법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셨다.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 주의셨다. 그래서 나는 내 일을 마치면 바로 퇴근할 수 있었다. 그래도 12시간 이상은 사무실에 있었지만, 숙소 가서 충분히 쉬니 다음날 또 맑은 정신으로 일할 수 있었다. 몇 개월 지났을까. 사수도 갑자기 나랑 같이 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퇴근해서 쉬고 에너지 충전해서 다음날 일하는 것이 확실히 좋은 것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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