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처음으로 연차 사용 계획을 올렸다. 사실, 외국계 회사가 아니라 외국에 있는 회사를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연차' 때문이다.
삼성에서도 늘 초일류 기업을 외치며 외국의 스탠다드를 많이 따라가려 했기 때문에, 일하는 것은 고만고만, 오히려 외국회사나 삼성에서 했던 업무 내용과 큰 차이가 없어서 심드렁했는데, 한국 회사와 다른 외국 회사의 휴가 제도는 아주 마음에 든다. 막연히들 가지고 있는 환상들 ‘1-2주씩 여름휴가를 상사 동료 눈치 안보도 쿨하게 떠나고, 그래서 한 곳을 오래 여행하기도 하고, 연말에는 한 달 가까이 쉬면서도, 월급은 나오는, 진정한 워라벨이 이루어지는 나의 휴가’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내 윗 상사 들은 감사 하게도 (?) 눈치를 덜 주는 편이어서, 동기들에 비해 길게 휴가를 가는 영광을 종종 얻었다. 그래 봐야 연휴 껴서 3-4개 붙이는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일 년에 15개뿐이니 아끼고 아껴야 하고, 한 번 아파서 쓰게 되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는데. 어쨌든 이번에 대충 계획을 세우고, 조심스레 휴가 일정을 라인 매니저에게 말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쿨하다. “너 언제 쉴지 미리 알려만 줘.” 혹시 몰라서 유관 부서에 미리 인폼을 했는데, 뭐 신경도 별로 안 쓰는 것 같다. “휴식은 정말 중요하지.” 다들 자기네 휴가 계획 때문에 더 바쁜 것 같다. 소심하게 (?) 8일 정도 올렸는데, 2주 쓰는 사람도 많고, 옆에 사람은 가족끼리 한 달 동안 디즈니랜드를 간다 한다... 자신의 권리이니 야무지고 당연하게 다들 쓴다.
여기서 당연히 드는 생각, 그럼 일은? 대화의 흐름은 이런 식이다. ‘이거 이때까지 할 수 있니?’ ‘저 2주 휴가 가는데요?’ ‘음.. 대체자가 있으면 일부 하고 일정을 미뤄야겠네.’ 약간 신기하면서도, 개인의 ‘쉼’에 대한 권리가 정말 보장이 잘 되어 있구나 싶다. 일도 일이지만 한 인간의 삶, 권리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나도 더 이상 내 쉼에 터치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아주 당연한 권리가 생긴 것이다. 정착하고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던 와중이었는데, 남편과 둘이 앉아서 한국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연차 소진을 잘 따져보니, 한국처럼 아끼다가 생각보다 정말 많은 연휴가 나중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차도 써본 놈이 쓴다). 연말엔 한 달 가까이 놀 수 있는 것, 더 이상 환상이 아니다. 심지어, 2주 동안은 회사문을 잠가버리니, 이리 신날 수가! 베짱이 같은 나로서는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시간은 금이다. 평상시에 금=돈이라 생각하지, 시간의 가치에 대해서는 바쁜 삶 속에서 망각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시간에 대한 가치를 더 깨닫게 된다. 그래서일까 "시간은 돈 주고도 못 산다'라는 말이 더 이상 귓등으로 들리지 않는다. 너무 소중한 나의 '시간'들, 이곳에서 쟁취하게(?) 된 나의 이 값진 연차들이, 한국에서의 연차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