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의 점심시간은 정말 생각보다 너무 심플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맛을 모르고 사는 민족이라 안타까운 사람들이라고 혼자 자주 생각한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는 비 오면 칼국수 한 그릇에, 더울 때는 냉면 한 그릇, 점심 메뉴 고르는 재미가 하나의 낙이었는데, 이곳은 그런 식당도 없지만 점심이라는 개념이 너무 심플하다 보니 저런 거창한 ‘요리’는 생각도 못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이곳 점심 문화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이를 겪지 않고, 일하면서 빵으로 점심을 때워야 한다는 현실에 갑자기 부딪혔다면, 분명히 나에게 큰 멘붕을 일으켰으리라.
하루는 도서관에서 친구와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는데 당근 몇 개와 풀떼기 그리고 넛트를 먹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저것으로 배가 찰까?’ 추측하건대 수업 시간에 꼬르륵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을 보면 배가 잘 차지는 않는 것 같다.
회사에서의 점심도 학교 다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사에서의 점심시간은 회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30분에서 1시간 정도. 점심이 워낙 심플하다 보니 그 이상을 주는 회사는 사실 보지 못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하면서 점심을 대충 때우고 빨리 집에 가는 것을 선택한다. 대부분 간단히 사 먹거나 도시락을 챙겨 오지, 식당에 찾아가서 먹는 경우는 드물다. 일반적으로는 샌드위치+음료+작은 감자칩 정도를 먹는 것 같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집에서 샐러드나, 과일 등을 싸오기도 한다. 더 정성을 부린 사람들은 카레라던가 파스타를 싸오기는 하지만, 점심이라고 하기엔 (우리나라 기준) 비교적 적은 양이기 때문에 10분 정도면 후딱 해치울 수 있다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정말 한 끼 적당히 때우고 배 채우는 느낌?) 그러니까 모니터 보고 일하면서 자기 자리에서 밥 먹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점심 문화 덕분에 뜻하지 않게 점심값을 아끼고 있긴 하지만, 이따금씩 한국의 북적거리는 맛집이 그립긴 하다.
영국에 처음 와서, 뭔가 도시락을 거창하게 싸가는 것이 신경 쓰여서 빵을 싸갔는데 아무리 맛있는 빵이라도 이것을 매 점심마다 계속 먹다 보면 정말 입에서 밀가루 분내가 나는 느낌이다. 그래서 논문 준비할 때부터, 각종 비빔밥, 주먹밥, 볶음밥을 만들어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냄새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나부터 살고 봐야지…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여전히 점심 메뉴는 그 전날 밤의 고민 중 하나이다. 그래도 저녁을 느긋하게 풍성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