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산 자들
자본주의 시대에 신분은 없어졌지만, 물질을 바탕으로 한 계급은 존재한다. 사업가, 투자자, 그리고 근로자. 안타까우면서 다행히도 나는 근로자다. 안타까운 이유는 자본주의의 상위계층이라 할 수 있는 사업가와 투자가가 아니기 때문이고, 다행인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취업난이 심각한 와중에 백수가 아닌 돈을 벌 수 있는 근로계층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한국에서의 근로와 환경에 대한 기억을 잊고, 영국의 근로 시스템에 적응하며 지내는 와중이었는데 최근에 장강명의 '산 자들'이라는 소설을 읽고 다시금 한국에서 근무하는듯한 아찔한 간접 경험을 하고 말았다.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자세한 상황 묘사, 그것은 나의 이야기였고, 내 주변의 이야기였다.
영국은 자본주의가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스며들어왔기 때문에,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계층 구분이 참 뚜렷하다. 이미 고착화되었다. 심지어 여왕까지 있는 국가니, 왕족, 귀족, 프로페셔널, 일반 근로자, 노동자 등으로도 클래스 구분이 있다. 유산이나 가족의 배경에 따라 결정된 로열이나 왕족은 이미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특히나 범접할 수 없는 성역과 같다. 심지어 많은 정치인들이 여기서 배출된다. 이들을 제외한 전문직을 비롯해 일반 직장인은 대부분 근로자 계층의 일부이니 노동자 (블루 컬러)와 하는 일의 종류와 소득이 조금 다를 뿐 사실 그 안에서 선을 나눈다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다. 더구나 고연봉자는 세금으로도 많이 떼이니 (월급의 평준화?), 크게 보면 대부분 피고용인으로서 한 배를 탄 고만고만한 계급(비 로열)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내에 더 수평한 문화가 형성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똑같이 월급 받는 처지에, 내 상사가 나에게 야근을 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상사도 결국 피고용인이지 사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대부분이 '동료'의 개념이다. 이런 시스템이 물론, 한 번에 생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백 년간의 투쟁 끝에, 수많은 희생으로 그들의 권리를 하나하나 채워나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근로자의 권리가 충분치 않다고 하는 이들이 영국엔 많다. (적어도 내가 봤을 땐 한국과 비교해) 근로 계약서를 보고 있자면,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내줄 것은 준 나름 깔끔하고 공정한 계약서이다. 회사도 근로자의 권리를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대신, 근로자도 계약대로 일을 성실히 업무에 임한다 (확실히 업무 중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담배 피우러 왔다 갔다 하는 등의 딴짓하는 비율이 월등히 적다). 분명 한국에 비해 근로자들의 천국이다. (이보다 더 천국이 프랑스라던데, 궁금하다.)
후배 동료나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마인드셋도 신선하다. 내 밑에 직원, 나보다 늦게 들어왔으니까 까라면까가 아니다. 대화를 하다 보면, 나이 든 사람들이 정년퇴직하고 앞으로 이 일을 '이끌어'갈 사람, 미래를 이끌어 가고 발전시킬 '다음 세대'를 교육해 준 다는 느낌이 강하다. 대화중에 이런 말을 한 번씩 들으면, 솔직히 혼자 속으로 감동을 할 때가 많다. 뭔가 사람대접을 해주는 느낌이랄까?
한 번은 아빠가 안부 차 전화해서 이곳의 근무환경에 대해 묻길래, 휴가라던가 병가 수평 한 문화나 보고 업무 로드 등을 간단히 언급했는데, 첫 번째 반응은 세상에 그런 회사가 어디 있냐. 그렇게 하는데 어떻게 회사가 돌아가냐가 두 번째 반응이었다. 선진국에는 이런 곳이 많기도 하고, 너무 당연한 권리들이라는 것을 아빠는 몰랐다. 부모님 세대야 시대가 시대였으니 뭐 이해한다 치지만, 지금 우리 세대도 아마 근로자의 권리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을 것이라 감히 추측해본다.
장강명의 소설 제목인 '산 자들'은 정리해고나 경쟁에서 살아남은 근로자, 노동자들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 말은 곧 슬프게도 살아남지 못하고 죽은 자들도 있다는 말이다. 한국에서의 회사생활을 돌이켜 보면, 고졸/전문대졸/대졸로 나누고 또 나중엔 공채/경력/계약직으로 나누어 근로자끼리 촘촘히 계층을 만든다. 솔직히 말하면, 어차피 한 배를 탄 사람들의 입장인데, 뭐 이렇게 선을 나누고 구분 짓고 싸우는지 모르겠다. 거기에 회사가 어려워지면 '나만 아니면 돼' '반드시 살아남겠어'라는 마인드셋으로 정신무장을 한다. 상황이 다급해지니 선배고 후배고 뭐도 없다. 한 번은 워킹맘 겸 사내 커플이던 선배가 구조조정 우선순위 대상이라는 소문에 생명 연장을 위해 노사 위원회 출마까지 감행을 했다. 직원을 위한 출마라기보다는 철저히 본인 자리보전을 위한 것이라 뭔가 씁쓸했었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미래 세대 교육? 남의 얘기다. 일단 직장에서 사회에서 내가 ‘산 자’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와중에 한국의 회사들은 항상 위기라 하니, 도대체 호황인 회사가 있긴 한 건지 궁금하다. 그러다 보니, 모두들 생존의 마음가짐으로 계속 살아가게 된다. 안타까운 예로 지인의 회사에서 인원 감축과 정리해고를 지휘하던 인사팀 과장은 몇 달 뒤 자기가 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회사의 충성스러운 개처럼 일했지만, 그도 결국 특권층이 아닌 근로자였던 것이다. 영국의 근로자들이 누리는 권리들을 보면, 한국에서도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오히려 근로자의 권리를 하나하나 찾아 나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이런 면은 영국과 비교가 많이 돼서 참 씁쓸하다. 일제 치하에서도 친일이 있었듯이, 사측이나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딸랑이들이 항상 일정하게 존재해 온 것을 보면 이것은 그냥 종 특이인 것일까?
영국 생활과 회사생활이 적응돼서 약간 루틴 해진 와중이었는데, 동시에 한국에서의 씁쓸한 경험이 무뎌진 와중에, ‘산 자들’ 소설을 읽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과, 가슴이 답답해짐을 다시금 느꼈다.
“자기 권리는 자기가 찾아야 한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