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그 후, 동기들과의 통화

by 스윗스윙

오랜만에 모였다는 동기들이 나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반갑기도 하고 근황도 궁금해서 약간 이른 오전 시간이었지만 전화를 받았다. 퇴사한지는 2년이 넘었고 영국에 온 지도 1년 반이 넘었고, 나도 많이 변했지만 동기들도 많이 변했다. 예전 연수원 때 사진을 보니 입사 초반에는 다들 대학을 막 졸업한 앳된 모습의 사람들이었는데, 다들 많이 변했다.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내가 있던 계열사는 그룹 내에서도 제법 경쟁률이 높았다. 그 당시에 다른 곳보다 성과급을 엄청 많이 주었기 때문에 취준생들이 많이 몰렸다. 그렇지만 나를 비롯해 동기들이 입사하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회사가 어렵다며 모든 성과급이 중단되었고, 이런 시기가 계속되면서 회사에서 직원들을 조여오자 하나둘씩 퇴사하기 시작했다. 회사 차원에서는 사람들을 내보내기 위한 전략이었겠지만, 어쨌든 가정이 있는 연차가 높은 직원들보다는 젊은 직원들이 아무래도 나이도 어리고 기회도 더 있으니 많이 나갔다. 윗사람들은 경력직이 아닌 한, 거의 나가지 않았다. 임원들은 더 악착같이 잘 버텼다. 밑에 사람들을 피곤할 정도로 쥐어짜면서. 인간의 권리가 존중받지 못하는데도 누구 하나 쓴소리 안 냈다.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라면서, 이만한 월급 주는 곳도 많이 없으니 납작 엎드려 있으라 했다. 언제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왔으니 자부심을 가지라면서,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기까지 하니 무슨 사람을 이런 식으로 대하나 짜증도 났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 회사 덕에 나도 유학자금도 모을 수 있었고, 이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토대 그리고 강한 멘탈 능력을 키워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퇴사한 동기들 중 일부는 나처럼 유학을 가기도 했고, 전문직을 하려고 방향을 틀기도 했고, 고시공부를 시작하기도 했다. 무엇인가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기엔 짧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여전히 대부분 공부 중이다. 회사 다녔을 때는 정해진 일만 하면 되고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 편했던 반면에, 뒤늦게 공부하니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정신이 더 편해서일까. 아직 불안정한 상황이니, 불안한 마음은 있지만 내 주변에서는 아직까지 본인의 선택에 후회하는 사람은 없었다. 회사 안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였던 것이 회사 나오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일까?

Freedom is not free


물론 계속 일하고 있는 동기들 대부분은 대리, 또 누군가는 과장 진급 케이스지만 여전히 막내는 거의 없다 한다. 어렵다고 사람을 더 이상 뽑지 않아 몇 년째 막내다. 여자 동기들은 육아 휴직으로 인해 가까스로 대리를 달거나 아직도 사원인 사람도 있다. 커리어는 둘째 치고, 유치원 보조금에 학자금 지원 혜택 등이 있으니 다니는 데까지는 다녀본다 한다. 뉴스에서 회사 사정이 나아졌다는 것을 얼마 전에 본 적이 있는데, 여전히 직원들을 괴롭히고 있나 보다. 아슬아슬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수화기 너머로 전해준다. 화가 나면서도 안타깝다. 만만한 게 가장 밑에 사원 대리다. 이직을 하고 싶은데, 마땅히 할만한 곳이 없고, 대부분 결혼해서 아기가 생기니 섣불리 결정도 못 한다고 한다. 언제 올 거냐고 묻던 동기들에게, '글쎄, 나도 언제 갈지는 모르겠어'라는 대답을 했더니, '미세먼지도 많고, 여긴 힘드니까 최대한 늦게 와'라는 대답을 들었다. 영상통화 화면 속에서 그들의 수심이 이곳까지 전해졌다. 이런 현실에서 출산율이 저조하다고 난리 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회사를 나와도 불안하고, 다녀도 불안하다. 둘 다 불안하다면, 자유라도 찾고 불안한 것이 낫지 않을까? 월급으로 부분적 자유를 얻는 것일까? 아니면 내 자유를 월급과 맞바꾸는 것일까? 과연 그 월급, 나이 들어서도 안정된 소득이 될 수 있을까? 너무 빨리 세상이 변해서,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는데, 동기들과 이렇게 통화를 하고 나니 생각이 조금 더 많아졌다. 세상살이 힘들지 않은 것이 어딨겠냐마는... 그래도 모두에게 건승을 빌어본다.


어느 시대건 권력의 앞잡이는 힘이 세다. 그들을 두들겨 때려 보아야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우리 쪽이다. 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싸움이다. 지겨운 사람들에게 나의 웃음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싸움을, 나는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69, 무라카미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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