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비가 내렸다. 날이 흐려서 인지 몸이 아팠다.
무리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밀린 집안일을 건드리며 더 날뛰어도 봤지만 이내 기절했다. 앉아서 잠이 들다니. 70대 노인도 아니고. 결국 두손을 들고 포기한 채로 드러누웠던 사나흘이 지났다.
오랜만에 새벽예배를 나섰다. 아침바람이 꽤나 선선했다. 이 즈음에 비가오면 가을이 올거라는 사실은 30년간의 데이터가 쌓여 알고는 있었지만, 꽤나 쾌적해진 아침 공기가 피부에 닿으니 실감하게 됐다.
가을이 왔다!
며칠간 식은땀을 흘리며 앓아누웠던건 환절기였던 탓도 있었나보다. 합리화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상쾌해졌다. 아직은 아기인 것 같은 9살의 아들내미 살결이 유난히 보들보들 해보여 쓰다듬다가 꾸뻑 잠이 들었다.
왜 안깨웠어?
투정아닌 투정에 너를 끌어안고 있는게 너무 좋았어. 라고 하니 싫진 않았는지 볼멘소리는 듣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곧 3학년이 될 아들은 척척 자신의 옷을 알아서 꺼내입는다. 패션센스도 나름 괜찮아 졌다. 아침은 이렇게나 선선하지만 대낮이 되면 땡볕에 더워질테지. 그렇게 생각하고 아들의 반팔 반바지를 시정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기분이 더 좋아보였다.
8시 17분. 학교가는 데에는 10분이면 족하니까 지각은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엘레베이터를 타며 자연스럽게 아들의 보드라운 손을 잡았다. 날이 선선해서인지 두 손이 버석거리며 맞닿아 있었다. 해가 맑게 떠서 볕이 창창해졌는데도 바람이 변하지 않았다. 옷 밑으로 땀이 비죽이 나오지도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며칠 간 아팠던 몸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집에 오자마자 온 사방의 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렸다. 한참 청소기를 돌리며 집안을 종횡무진 다녀도 머리속이 쾌적했다. 드디어 지겨운 여름과 장마가 끝났구나!
사계절이 뚜렷한 이 나라가 나는 참 좋다. 한 계절이 질릴 즈음에 찾아오는 이 놀라운 변화들은 한번씩 심경을 건드린다. 조금은 새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또한 낭만이다. 계절마다 의례적으로 해야할 행사들. 방학이나 휴가, 운동회 도시락이나 단풍놀이 벚꽃놀이 같은 것.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올해의 행사를 마음껏 즐기리라 다짐하게 된다.
이번 여름은 계곡도 놀러가고 방학도 바쁘게 잘 보낸 것 같은데... 자, 지금 찾아오는 가을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주 오랜만에 설레임이 가득한 계절의 첫 언저리에서 나이듦을 실감하는 오늘.
이래나 저래나 코 아픈 에어컨 바람이 아니고 선선한 자연바람이 불어오니 너무 행복하다. 아침에 도둑같이 내렸던 소나기 덕인지 아직 물기가 가득하긴 하지만 이 정도 온도면 견딜 수 있는 습기다.
게다가 금요일. 남편도 아들도 월요일부터 꼬박 손꼽아 기다려온 날. 매 주 기다리게 되는 우리만의 행사. 오늘 저녁을 위해 쿠팡에서 미리 소곱창을 시켜 놓았다. 이 선선한 날 밤의 소곱창이라니. 생각만해도 행복해진다. 게다가 곱창전문점에 가서 먹는 것의 반값이다. 행복이 두배가 되는 셈.
참 행복이라는 것이 정말 별 것 없다. 8월 말. 느닷없이 찾아온 이 가을의 기색이 반가워 가슴 꽉 차게 행복해졌다.
남편은 가을이 되면 센치해지곤 하는데 헛헛하지 않도록 이 행복을 조금 나눠줘야겠다. 이런 날씨엔 아이유의 가을아침이 딱이지.
여러모로 가을아, 반갑다! 올해도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