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할 줄 알았지, 석사 하나쯤이면..

느리게 출발한 첫 걸음

by 리딩집사

대학원 진학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학부를 졸업한 뒤 곧바로 사회로 나가기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고,

그 시절만 해도 '석사 학위 하나쯤은 있어야 미래가 안정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했었다.


무엇보다도, 여전히 한국 사회는 학벌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입사 지원서 맨 위에 적히는 학력란은,

누군가에겐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였고,

또, 누군가에겐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기도 했다.



...



입학 동기들보다 1년 늦게 복학을 하면서,

이미 자신들의 진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당시 나는 매우 조급한 마음때문에 힘들었었다.

어떤 삶을 선택해야할지 고민하는 것도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그 당시 고민은 단순했다.

선택지는 두 갈래였다.



동대학원에 진학하느냐, 아니면, 조금 더 상위권 대학원으로 가느냐.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히 더 높은 곳을 노렸어야 했다.

젊음이라는 객기 때문이었을까?

조급함이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동대학원을 선택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저 석사만 마치면, 안정적인 자리는 따라올 줄 알았다.


...


평소에 관심있는 분야였기 때문이었을까?

학부때도 그랬었지만,

석사 생활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브1.png




실험실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잦았고,

주말도 집에 가지 않은 채


논문 읽고, 보고서 쓰고, 또 술도 마시며....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지루했었고,

적당히 성과를 내며,

20대의 후반을 보내고 있었다.



나이어린 동기들과 함께하는 그 시절이 추억으로 남아있는 걸 보면,

그때만큼 열정적이었던 순간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



하지만 그런 좋은 날들도..... 졸업을 앞둔 순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다.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은 한국 경제를 뒤엎었고, 채용 시장도 얼어붙었다.

해마다 어렵다고 했었지만, 그 해는 정말 심각했다.




여러 곳에 원서를 냈지만 돌아오는 건 대부분 불합격 통보

그리고 어쩌다 본 면접에선,

'석사 나부랭이 하나 막 데려다 쓸 수는 없지 않겠어요?'라는 그들끼리의 뒷담화를 듣게 되었다.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남았다.



'석사'라는 타이틀이 별 게 아니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브3.png



제때에 취업을 하지 못했던 나는 졸업식 날도 초라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 화려한 대학생활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2009년 2월, 화려했던 20대의 날들이 후회스럽기마저 했다.



졸업을 하고도 실험실에서 머물러 있던 어느 날,

우연히 신재생에너지 관련 분야에 속한 벤처회사에 지원했고,

결국 합격하게 되었다.



실험실보다는 규모가 있지만, 일반 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공장보다는 조촐한 분위기를 가진 그곳에서,

3교대 근무가 시작되었다.



석사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막내였고,

학위도 역시 막내였다.



단 한명의 학사도 없었으며, 무언가 미래지향적인 분야에 나의 지식과 노동력이 투입된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벤처회사였기 때문이었을까?


연봉도 낮았고, 일도 고되었지만, ...

다가올 미래가 두렵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컵라면 하나에 웃고, 퇴근 후 즐겨하던 게임에 행복했고,

고장난 장비를 함께 수리하며 버텼던 그 시절..

입사 동기들과 나눈 농담 한마디로 웃으며 보냈던 그 때 그 시절이

참으로 따뜻했고, 인간적이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에게 녹록치 않았다.

투자 열기가 식고, 회사는 어려워졌다.



얼마 되지 않았던 급여도 밀리기 시작했다.

몇 개월 간격으로 급여가 지급되기도 했지만,

딱히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텅빈 회의실,

떠나는 동료들,

그리고 조용히 이력서를 꺼내든 나.




그리고 그 이력서 한장이 또 다른 미래를 만들어주었다.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