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끝났지만, 인생은 다시 시작이었다
2017년 12월,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한 직후였다.
자격증을 손에 쥐었지만, 기쁨도 잠시.
공부한다고 밤을 지새운 대가가 혹독하게 돌아왔다.
몸은 망가져 있었고, 살은 붓고, 체력은 바닥이었다.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질 시간도 없이
그렇게 둘째를 갖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좀 어긋나는 듯 싶었지만,
나름 계획한 대로 순조롭게 임신이 되었고,
그 해 가을에는 귀한 둘째를 품에 안았다.
그 무렵, 공인중개사 시험이 끝나고 나서의 허전함이 점점 커졌다.
공부를 끝냈다는 성취감보다,
그 다음이 없다는 불안감이 더 컸다.
자격증은 취득했지만, 현실은 그대로였다.
나는 여전히 직장인이었고, 모아놓은 자산도 없었다.
바로 중개업을 시작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영업이라는 전쟁터에 뛰어든다는 건, 그 자체로 두렵기도 했다.
게다가 직장 생활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실적도 나쁘지 않았고, 팀 내에서도 인정받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해보자’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공인중개사 합격자 모임에서 만난
동기들과의 대화가 내 마음을 다시 흔들었다.
다들 말하길,
"뭔가 허무하다. 남는 시간이 아깝고, 해야 할 게 없는 것 같다."
공부가 끝나자 생긴 공허함.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는 또 다른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엔 경매였다.
민법 지식을 썩히기 싫다는 명분으로,
우리는 경매 특강을 함께 들으러 다녔다.
경매 관련 책도 사고, 스터디도 시작했다.
그때 알게 된 인물이 바로 송사무장이었다.
이미 경공매계에서는 유명한 존재였고,
그의 책은 일종의 바이블처럼 통했다.
카페에 가입하고, 책을 읽고,
강의 후기를 찾아보며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내가 꼭 돈을 들여 강의를 들어야 할까?”
나는 무료 강의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사람이었다.
왠지 모르게 유료 강의가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책과 스터디 위주로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경매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낙찰 이후의 명도 과정이 특히 두려웠다.
책에서는 명도가 쉽다며 써놨지만, 나는 그게 너무 두려웠다.
어쩌면 아직 돈에 대해 절실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도저도 아닌, 진척이 없던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공부의 방향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 그 무렵,
우연히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부룡님의 책이었다.
처음엔 흔한 경매서적이겠거니 했는데, 내용은 전혀 달랐다.
명도 과정은 커녕, 부동산 상승 흐름에 따라 투자 방향을 짚는 책이었다.
나는 곧바로 그에게 빠져들었다.
어느덧 정신차려보니 ‘부지런 카페’에 가입했고,
락지니님과 부룡님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투자 강의를 들으며
본격적인 투자 공부에 들어갔다.
이때부터였을까?
독서 모임도 시작했고, 유료 강의도 듣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문제는 자본이었다.
사실 결혼하고서는 모아둔 돈이 거의 없었다.
전세보증금으로 일부 들어가고,
아이를 낳아 기르기전까지 맞벌이를 했었기에
씀씀이가 엄청 늘어나 있었다.
그러다 첫 아이가 태어난 후 외벌이로 전향하고 나니.
커진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 조차 어려웠다.
마음만 앞서고 현실은 늘 제자리였다.
그래도 공부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내 인생에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공부를 계속 해야만 했다.
부동산에 대한 감을 키워보기 위해 직접 발로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까운 서울 근교부터 시작했지만,
점차 범위를 넓혀 천안과 청주까지 다녀왔다.
임장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지만,
막상 가보면 그 지역의 분위기, 교통, 상권, 아파트 단지의 구조까지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사진 찍고, 메모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크루들과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함께 공부하던 이들과 함께 떠난 임장은,
단순히 물건을 보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투자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시간이 되었다.
...
그렇게 하나씩 배우고 익히며 감각을 길러나갔다.
그 무렵은 82대책 이후, 불장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서울과 수도권은 폭등하고 있었고,
나는 너무 늦게 뛰어든 것 같아 조급했다.
경매로 돌아갈까 싶다가도, 여전히 명도가 두려웠다.
반면 오랫동안 유지해온 청약통장은 아깝기만 했다.
선택 장애가 찾아왔다.
수많은 고민 끝에 결국 청약에 눈을 돌리기로 했다.
마지막이라 여겼던 다산 신도시의 청약에 지원했지만,
예비번호가 밀려서 기회를 놓쳤다.
이후에도 넣을 곳을 찾아봤지만,
신축 분양가는 계속 오르고 있었다.
서울이나 왠만한 수도권은 계약금이 20%로 오르면서 나에겐 벅찼다.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해봤지만 돌아온 말은 하나였다.
“눈 낮춰. 니들 돈으로 해결 못하는거면 니들꺼 아니야.”
그렇게 흘러흘러 인천까지 가게 되었다.
특별공급 자격을 이용해 지금의 아파트를 청약하게 되었고,
운 좋게도 나름 RR에 당첨되었다.
그땐 그게 최선의 선택인 줄 알았다.
분양가 대비 수익은 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곧 무너졌다.
입주 시기가 다가오면서 부동산 시장은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서울은 멈칫하다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지방은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뭔가 해보고 싶었지만,
자본도 규제도 발목을 잡았다.
법인 투자도 하고 싶었지만,
정부의 연이은 규제는 꿈도 못 꾸게 만들었다.
결국 남은 전략은 ‘지키기’뿐이었다.
인천 아파트에 세입자를 들이고,
서울에서 월세 살면서 다른 전략을 세워보자는 생각만 가득했다.
....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인근 단지의 대규모 입주 물량,
하락장까지 겹쳐 결국 나는 생각을 바꿔야만했다.
‘직접 들어가자.’
그렇게 편도 2시간의 출퇴근 지옥이 시작되었다.